심각한 데이트폭력, 해법이 없을까요?

밀교신문   
입력 :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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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흔해졌지만, 옛날에는 음식상에 자주 오르지 못할 정도로 아주 귀한 음식이 계란이었지요. 조선 시대에 어떤 양반이 날달걀을 밥에 비벼 먹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몸종이 상을 차려오다가 실수로 달걀을 마루에 떨어뜨리고 말았어요. 인기척에 무슨 일인가 문틈으로 그 광경을 목격한 양반이, ‘저것이 달걀을 어찌하나 보자고 몰래 지켜보았는데, 몸종은 마룻바닥에 흐른 달걀을 고스란히 접시에 담더니 상에 내오는 겁니다.

 

괘씸한 마음이 든 양반이 마치 선승이 화두를 들듯 몸종에게 물었어요.

 

깨끗하다는 게 무얼 말하는 것이냐?”

 

잡티나 먼지가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면 혼쭐을 내줄 요량이었는데 몸종은 이렇게 대답하는 거였습니다. “안 보이면 깨끗한 겁니다.”

 

몸종의 대답에 양반이 크게 공감하여, “과연 네 말이 옳다하고는 용서해주었다고 합니다.

 

몇 해 전 현대판 원효대사의 해골바가지 이야기비스무리한(?) 체험을 했더랬지요. 세계불교도대회 참석차 중국에 갔을 때 저녁 시간에 출출하기도 하여 일행과 함께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시장이 반찬인지라, 뭐가 뭔지도 모르고 대충 주문한 음식이 꽤 맛이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서로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며 그릇을 싹 비웠는데, 순간 테이블 옆으로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게 눈에 띄는 거예요. 시커먼 게 몸집이 어찌나 큰지 처음엔 두더쥐라도 되는 줄 알았어요. , 그때부터 속이 얼마나 울렁울렁 하던지......

 

일체는 유심조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만든다는 얘기지요. ‘모르는 게 약이란 말이 있잖습니까? 때로는 차라리 몰라야 행복한 일도 있는 법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도시락 반찬통에 어묵이 자주 들어있었는데 어느 날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너 이 어묵, 어떻게 만드는 줄 알아? 커다란 욕조 안에 삶은 생선을 들이부은 다음에 공장 인부들이 장화를 신고 몰려 들어가 잡담도 나누고 일부러 침도 한 번씩 뱉어가며 설겅설겅 즈려밟아서 만드는 게 오뎅이야. 몰랐어?”라고 하더군요. 물론 반농담이었지만, 친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저는 이후로 당분간은 유쾌한 마음으로 어묵을 먹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겠지요? 사랑하는 이의 과거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아요. 과거에 누구를 만났고 어떤 사랑을 했는지 시시콜콜 알아서 득 될 것이 없겠지요. 일부러 과거를 캐내는 분들도 있던데 아주 어리석은 짓입니다. 보지 않아도 될 것, 몰라도 될 것은 그냥 내버려 두면 돼요. 나중에 후회할 줄 알면서도 굳이 들여다보며 싸울 필요는 없지요. 안 보이면 깨끗한 겁니다.

 

일체유심조란 마음이 환경을 만든다는 뜻이므로 방편으로 남을 복되게 하면 내가 복되게 된다.”(실행론 2-2-4)

 

길상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