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한국밀교발원지

산 깊고 물 맑은 비처(秘處)
대일(大日)의 법(法)수레가 달빛을 타고 내려와 법륜을 굴린 비처(秘處). 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했다는 이 나라 5대 악산 중의 하나인 월악산 자락에 법신(法身)을 기대고 만월광명(滿月光明)의 법륜을 굴렸던 월광사. 지금에 와서 형체는커녕 몸체에서 떨어진 돌비늘같이 크고작은 석재 몇 가지 정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무질서하게 방치되고 있는 월광사 터는 옛부터 병화를 피해서 숨어 살만한 곳이라고 적어두었던 ‘비결잡록’의 기록처럼 바위산의 험한 산세가 오히려 국가를 위한 비법(秘法)을 행하고, 사자상승하기에는 적소였는지 모를 일이다. 산이 깊으면 물 또한 맑듯이 굴곡이 심한 골짜기마다 흐르는 옥류는 월광폭포 같은 명소를 만들고도 남음이 있어 청송, 녹나무 등 천혜의 희귀 자연자원 또한 길러냈다.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 비처를 찾아가는 여정은 허허롭기 그지없었다.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고, 표석조차도 보이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런 곳이 근동에 있는지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으니…. 낭패를...
2007-07-16 17:48:48
혜통국사 창건설 ‘아름다운 가람’
소백산 도솔봉 남쪽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유석사(留石寺). 694(신라 효소왕 3)년 해동진언종(海東眞言宗)을 일으킨 혜통(惠通)국사가 창건한 사찰 유석사는 현재 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의 말사로, 지천에 널려 있는 산야초와 들꽃처럼 소담스럽게 앉아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창락리 36-2번지라는 문패를 달고 있는 유석사를 찾아가는 길은 그러나 결코 단순한 여정이 아니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도로를 따라 도솔봉 하나를 다 오르고 나서 다시 반대편 산아래로 남은 발걸음을 해야 겨우 모습을 드러내는 유석사 가는 길은 바로 수행의 길이자, 고행의 행로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이 수행자와 불자는 물론 절을 찾아드는 모든 길손들에게 줄 수 있는 유석사만의 진정한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찻길이 나 있기는 하지만 큰 도로에서 이어지는 사과밭머리에 차를 세워두고 한발한발 발걸음을 떼어가며 등산을 하듯 걷는 편이 유석사를 찾아가는 제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겠기 때문이다. 유석사를 ...
2007-07-03 10:40:01
불살게(不殺偈)로 독룡을 교화하다
오뉴월의 싱그러움이 대지를 푸르게 물들일 때,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기 위해 내 걸린 오색연등이 울긋불긋 하늘가를 수놓은 불광산(佛光山) 자락 장안사(長安寺)의 포근함은 옛 명성 그대로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장안읍 장안리 598번지에 있는 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 말사인 장안사의 본래 이름은 쌍계사(雙溪寺)였다. 원효대사가 673년(신라 문무왕 13)에 창건한 쌍계사가 장안사로 바뀌게 된 연유는 애장왕(재위연도 800~809년)이 말년인 809년 발걸음을 한 뒤의 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혜통스님이 독룡을 조복시킨 내용과 깊은 관련이 있다.스님이 당나라에 머물며 무외삼장으로부터 수학하고 있을 때 고종의 딸인 황실의 공주가 병을 얻어 드러눕게 됐다. 이를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던 고종이 무외삼장에게 치료해주기를 청했다. 이에 무외삼장은 주저함 없이 혜통스님을 천거했다. 스님은 이때부터 거처를 별도로 정해서 주변을 정화한 다음 흰 콩 한말을 은그릇 속에 넣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흰...
2007-07-03 10:34:49
모악산에 둥지 튼 비처(秘處)
산도(山桃)와 계행(溪杏)이 울타리에 비쳤는데한 지경 봄이 깊어 두 언덕 꽃이 피었네혜통이 수달을 한가로이 잡은 때문에마귀(魔鬼)와 외도(外道)를 모두 서울에서 멀리했네. 명랑법사의 신인비법에 이어 순밀사상(純密思想)을 도입해 새로운 밀교종파를 성립시켰던 해동진언종(일명 다라니종·총지종)의 초조 혜통국사를 찬탄한 찬가다. 스님이 서라벌을 거쳐 모악산에 첫 발을 디딘 것은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말이다. 명랑법사가 창건했던 금광사에 이웃한 경주 남산 서쪽 기슭 은천동 어귀, 지금의 남간사지 근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스님인지라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밀교의 상승법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스님이 당나라에서 수학하고 돌아와서 서라벌에서 활동하다가 모악산을 찾아들어 해동진언종 총본산 주석원을 세운 것은 일대사 인연에 의한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여진다.모악산(母岳山)은 예로부터 전라도지역에서 엄뫼(어머니 산), 큰뫼 등으로 부르기도 했던 산으로, 정상아래 자리잡고 있는 '쉰길바위'가 아기를...
2007-07-03 10:26:14
샘솟는 그리움… 아련한 흔적…
금광사를 창건한 명랑법사의 손길이 필시 여기까지 닿았으리라. 지금으로서 신인사의 존재를 증명할 만한 확실한 고증자료는 없으나 일본의 한 역사학자가 경주시 배반동 산 69번지 현재의 옥룡암 부근에서 발굴조사를 벌이다가 '신인사(神印寺)'라고 쓰여있는 막새기와를 찾아 확인함으로써 그의 존재는 물론 금오산 옥룡암이 신인종 관련 사찰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졌다. 그런 까닭에서일까.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경주문화재를 소개하는 문화해설가 일부에서도 옥룡암이 신인종과 관계 있으며, 밀교사찰이었을 것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신인사'라고 쓰여있다는 막새기와는 정작 일본으로 건너가 있어 우리로서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신인사지였을 법한 이곳이 또 달리 불무사(佛無寺)로 알려지고도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한 것으로 '신라 효소왕 때 진신 석가모니부처님이 바리때와 지팡이만 남겨두고 신인사지 근처에 있는 탑곡마애조상군, 일명 부처바위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전설 같은...
2007-07-02 17:13:24
오직 국가안위를 위해…
서라벌 동남쪽 20여 길, 지금의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 당시 바다에서 쳐들어 올 왜적들이 경주(황성)로 들어오는 길을 막는 곳으로, 관문산성이 그리 멀지 않은 지점이다. 이러한 곳 고즈넉한 새벽 산사의 어스름을 깨우는 목탁소리가 간단없이 들리더니 이내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 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이 잇달아 울렸다. 원원사의 특별한 새벽예불이 시작될 찰나다. 때는 신라가 통일불사를 막 마무리한 무렵이었다.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을 간신히 달성하기는 했지만 당나라와의 힘겨운 싸움으로 국가의 존망이 백척간두에 걸려 있을 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 바다 쪽에서는 왜구가 호시탐탐 탐욕의 혀를 날름거리며 위협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군신과 국가의 대사를 책임지고자 하는 지사(志士)들에 의해 세워진 원원사의 서원은 바로 이러한 당나라의 오랑캐와 왜적을 일격에 물리치고 통일신라를 영원히 번창시켜가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러기에 원원사의 새별예불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불사가 특별하...
2007-07-02 16:30:19
흘러간 세월 속에 흔적마저 묻고…
  신라 선덕여왕 대 경주 서남산 자락에 천지를 뒤덮고도 남을 법한 금빛 찬란한 광채 하나가 피어올랐다. 그 광경은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연화좌에 앉아 설법을 펼 때 광배처럼 펼쳐진 빛이 밤낮을 가림 없이 온 성안을 화창하게 비출 때와 같았다. 그 빛을 따라 사뿐히 흩날리는 맑디맑은 향기는 수광이라는 용왕이 밤마다 뿌리는 향수 비와도 같았다. 그러나 찬란한 금빛 광명에 눈이 피로하거나, 사방팔방으로 흩날리는 향기에 취하는 이는 없었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고 만 중생을 이익케 하려는 자비광명이요, 생명수에 다름없는 감로정향이었기 때문이다. 뭇 사람들을 경이롭고 환희와 열락의 세계로 인도했던 그 광채가 솟구치고, 향기가 퍼져 오른 근원지는 다름아니라 일찍이 불법에 귀의해서 구법수행을 하던 중 당나라에 들어가 불교의 오묘한 비법을 전수하고 귀국한 명랑법사의 생가가 있던 자리였다. 한 생각을 돌려 마음이 바뀌고, 한 성자의 깨달음으로 온 산하대지가 함께 성...
2007-05-16 11:5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