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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7
붕어빵 장수에게 배운 행복-서원하는 삶마른 풀 사이로 드문드문 여리고 파란 새싹이 보인다. 촉촉하게 비가 내리더니 말라있던 나뭇가지가 비로소 물기를 머금고 잎을 피워낼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겨울, 세상을 다 덮어버리기라도 할 듯이 기세 좋게 퍼붓던 눈도 녹아 내렸다. 봄이다. 저녁나절 운동 삼아 자주 다니는 길이 있다. 그 길목을 지키고 있던 붕어빵 수레가 며칠째 보이지 않는다. 천원을 건네면 다른 곳보다 팥소를 유독 듬뿍 넣은 붕어빵 네 개를 종이봉투에 담아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건네던 젊은 부부. 그 미소가 아름다워 지날 때마다 인사를 하곤 했는데…. 여느 붕어빵 수레보다 볼품 없이 낡고 초라했던 부부의 수레. 바람막이조차 변변치 않아 온몸을 꽁꽁 싸매고도 무에 그리 좋은지 웃고 재잘거리며 붕어빵을 굽던 뇌성마비 부부. 늘 그곳은 붐볐다. 학생들이 집에서 학원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했지만, 부부의 넉넉한 마음씨와 꾸밈없고 아름다운 미소가 학생들을 끌어들인 것이 아닐까. 며칠 ...
2014-03-17 16:12:05
가까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6
시련-보리밟기를 생각하며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해마다 이맘때쯤 보리밟기를 하곤 했다. 보리 싹이 움틀 무렵에 행해지던 겨울철의 연례행사였다. 보통 가족들이 함께 보리밟기를 했지만, 더러는 봄방학 때 학생들을 동원한 대규모의 보리밟기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아마 70년대에 시골에서 생활했던 사람이라면 쉽게 그 장면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당시 보리는 중요한 양식으로서 대부분의 작물과는 달리 가을에 씨를 뿌려 이듬해 초여름에 수확하는 곡물이었는데, 늘 양식 부족으로 곤란을 겪었던 많은 농부들이 빈 밭에 보리씨를 뿌렸었다. 그런데 움트기 시작하는 보리를 무참하게 밟다니…, 이유가 있다. 추운 날씨 때문에 보리밭이 얼어서 부풀어 오름으로써 보리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보리 잎에 상처를 주어 웃자람을 억제하고 생리적으로 내한성(耐寒性)을 높이기 위함이다. 보리에게 이 작업은 시련의 기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련은 결코 보리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땅...
2014-02-17 10:47:04
가까운데서 배우고 깨친다 5
군불을 생각하다가 문득요즘 며칠째 몸살감기로 좀 앓았다. 몸까지 으슬으슬하여 절절 끓는 온돌방 생각이 간절하다.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땀을 푹 내고 나면 몸이 저절로 풀릴 것 같다. 문득 이맘때쯤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저녁상을 물린 후 한 시간쯤 지나 사위가 어두워져야 비로소 우리 형제들이 함께 기거하는 방에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너무 이른 시간에 불을 때면 새벽녘쯤 온기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부모님과 막내가 자는 방은 저녁밥을 지을 때 이미 데워져 있다. 지푸라기나 마른 콩 대에 불을 지펴 아궁에 넣은 다음 잔가지로 불길을 키우고 그 위에 굵은 장작을 올리는 게 순서였는데, 당시 내 고향에서는 열 살 정도만 되면 누구나 군불을 지필 줄 알았다. 우리 형제는 방이 데워질 때를 기다려 아궁이 앞에 둘러앉아 '군불은 왜 군불이라 하는가?' 하는 따위의 시시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큰 형님이 식은 방을 '구워주니' 군불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정확하...
2013-12-16 10:26:16
가까운데서 배우고 깨친다 4
산들바람 혁명-빈 곳 채워주기하늘이 유달리 높아 보이고 투명에 가까운 푸른빛을 띠면서 숲 내음을 품은 산들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온다. 가을이 깊어간다는 징조다. 두메산골 중학교 때 풍금 반주에 맞추어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저절로 생각이 나서 흥얼거려본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푸른 잎은 붉은 치마 갈아입고서/남쪽나라 찾아가는 제비 불러모아 봄이 오면 다시 오라 부탁하누나."바람에 관한 노래는 가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꽃향기가 얼굴을 간질이는 듯한 봄날의 실바람, 여름 한낮 농부들의 땀을 식혀주는 느티나무 그늘 아래의 시원한 남실바람, 살을 엘 듯 매서운 겨울날의 된바람에 대한 노래도 있다. 바람은 동서고금을 떠나 예부터 시인과 예술가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소재이다. 그들은 순기능으로서의 바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려 애썼다. 바람의 이름 또한 예쁘기만 하다. 순우리말로 동풍을 샛바람, 서풍을 하늬바람 또는 갈바람, 남풍을 마파람. 북풍을 된바람 또는 높새바람이라...
2013-11-16 13:50:27
가까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3
조화(調和)-코스모스를 노래하다 지독했던 더위도 한풀 꺾인듯하니 이제 곧 가을이 다가오려나 보다. 며칠 사이에 길가 여기저기에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붉고, 희고, 분홍빛을 띈 꽃들이 초록색 가지와 잎에 어우러져 참 예쁘기도 하다. 가느다란 가지가 약한 바람에도 쉽게 움직여 꽃들이 한들거리니 그 자태가 더 곱다. 가을의 전령사라면 역시 귀뚜라미와 코스모스다. 우리말 '살살이 꽃'이라는 이름보다 코스모스라는 이름이 더 대중적이다. 코스모스(cosmos)란 원래 고대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로 '우주의 질서' 그리고 '조화'라는 뜻이다. 우주가 자리를 잡기 전의 상태인 '카오스'(chaos)에 대비되는 말이다. 어찌하여 '순정'(純情)이라는 꽃말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원래 이름 그대로 꽃말을 '조화'라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여성들이 얼굴의 부조화를 가리어 예쁘게 보이려고 치장하는 화장품의 영어 표현 코즈메틱스(cosmetics)도 코스모스에서 나온 말이다.이처럼 우리나라...
2013-09-16 10:58:31
가까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2
선탈(蟬脫·매미 허물을 벗다)장마가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이젠 무더위가 극성을 부린다. 다행히 습도는 그리 높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견딜 만하다. 심인당 뒤편 숲 언덕에서 "쏴아-" 하고 울어재끼는 말매미 노래소리 또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매미라고 해서 다 노래하지는 않는다. 오직 숫매미만이 노래를 한다. 진동판을 자극하여 소리를 내어서 씨를 받을 암매미들을 유혹한단다.산책로 옆 나뭇가지 군데군데에 매미가 벗어놓은 허물도 보인다. 문득 서울하고도 강남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는 지인의 불평을 떠올린다. "매미가 밤낮 없이 울어대는 통에 요즘 통 잠을 잠 수 없어요." 매미의 잘못이 아니다. 한밤중에도 환하게 켜놓은 가로등 때문에 매미가 밤을 낮으로 착각한 것이니 그건 오롯이 인간들의 잘못이며 불면은 곧 자업자득인 셈이다.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매미란 가엾기 그지없는 존재이다. 종류에 따라 어둡고 습기 찬 땅속에서 2∼7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다가 완전체인 매미...
2013-08-19 14:21:33
가까이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1
일즉다(一卽多·어울려 살아감)여기저기에 해바라기 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니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밝고 노란 색깔이 더욱 선명하다. 비록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해바라기의 개화는 머지않아 가을이 온다는 징조로 보면 된다. 해바라기라는 이름은 해를 따라 도는 식물이라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붙인 '향일규'(向日葵)를 우리말로 번역한 이름이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따르면 헬리오스(태양 신)를 짝사랑하던 한 요정이 상사병으로 죽은 후 해바라기로 환생하여 언제까지나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꽃말도 '숭배'와 '기다림'이다. 영어 이름 sunflower는 그리스어 'helios'(태양)와 'anthos'(꽃)의 합성어인 헬리안투스(Helianthus)를 번역한 말이란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다음 유럽에 알려진 식물로 '태양의 꽃' 또는 '황금꽃'이라고도 불린다. 전 세계인들이 해바라기를 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해바라기 정치...
2013-08-19 14:1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