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이인숙 교수의 음식이야기

우울(雨鬱: 비로 막힘)한 7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음식이야기 칼럼을 시작하고 어느새 두 번째 맞이하는 여름의 음식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사실은 생존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한데 이때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세가지가 무얼까? 하고 물으면 ‘의식주’라고 하니 ‘의’가 가장 중요해요. 아담과 이브를 봐도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서야 동굴 밖으로 나왔을걸요? 하면서 절친 의류학과가 동기가 말대답했었다. 순간 그런가? 하는 위구심까지 가졌으니 어수룩한 식품영양학 전공자가 발 필자인 듯. 사실 음식(먹거리)은 좋은 것 나쁜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패스트푸드는 잘 선택해서 적절하게 먹으면 바쁜 현대인에게 아주 편리한 가정식 대용식(HRM:Home Meal Replacement) 가 되고 탄산음료는 더운 날 또는 텁텁하고 수분 없는 음식을 먹을 때 잘 넘어가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도 한다. 다만 너무 자주 정상적인 식사나 물 대신 먹을 때 건강에 해가 되는 거다. 올여름은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가 엄포를 놓았고 심지어는 국외...
2023-06-29
쑥쑥 잘 자라는 쑥과 봄나물의 좋은 기운
봄이 코끝에 느껴지면 우선 옷차림이 경쾌해지고 그로 인한 약간의 쌀쌀함은 봄을 맞는 신선함으로 돌려버린다. 화사한 차림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봄맞이 재래시장을 둘러보면 눈에 바로 들어오는 것은 상큼하고 밝은 녹색의 연한 쑥과 짙은 녹색의 다양한 봄 나물거리들이다. 파릇한 초록은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라고 하고 정기를 일깨워주면서 ‘자, 계절이 시작하는 봄이에요. 우리를 즐겨주세요.’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계절이 바뀌면서 화사한 봄에 적응하려면 먼저 우리 몸도 준비가 필요하다. 이때 환경의 적응을 위해 나타나는 생리적 피로감이 따르는데 이 증상이 바로 춘곤증이다. 우선 춘곤증을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체활동이며 스트레칭이나 산책 등 혈액 순환을 자극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움츠러든 실내 생활로 운동도 많이 못 하고 지낸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제는 활발한 야외 생활을 적극 권장한다. 마스크를 끼더라도 따스한 봄기운을 만끽하는 것이 필요하다.이와 함께...
2023-03-30
타락죽(駝酪粥) 이야기
계묘년(癸卯年)의 첫 번째 글은 소소한 듯하나 큰 반전이 있는 음식을 골라보았다. 조리법이 비교적 간단하고 가볍지만 고소하고 하얀빛의 영양이 좋은 ‘타락죽(駝酪粥)’을 선택하였다. ‘타락’은 한자어로 낙타 ‘타(駝)’, 진한 유즙 ‘락(酪)’으로 낙타의 젖을 뜻하나 실제로는 우유(소젖)를 이용하여 만든 음식이다. 우유는 영양적으로 구성이 우수한 완전식품으로 소를 가축으로 길들인 기원전 10,000년~12,000년에 유럽에서 처음 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유는 단백질과 유당(락토오즈), 지방, 비타민A, B, D와 각종 무기질(칼슘, 칼륨, 마그네슘, 인 등)이 골고루 들어있다. 송아지에게 유일한 밥이니 영양이 풍부한 것은 당연하리라. 특히 우유의 유당과 비타민 D는 칼슘이 흡수되기 쉽게 해주므로 성장기 어린이와 청소년, 노인, 여성에게 칼슘 급원으로 매우 훌륭한 식품이다. 조선시대 임금님의 보양을 위해 초조반으로 타락죽이 진상된 이유가 충분하다. 이른 시간부터 국사를 ...
2023-02-01
늦가을의 좋은 인연(因蓮)
연자는 8~10월에 수확하며 흔하게 사용되지는 아니지만, 사찰에서 비교적 널리 활용되고 있고 동의보감에서도 언급된 아주 특별한 식재료이다. 연꽃의 씨앗으로 연자 또는 연자육, 연밥, 상련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으며 ‘죽기 전에 꼭 먹어야 할 세계 음식 식재료 1001’(프랜시스 케이스, 2009)에 잣과 함께 소개되기도 하였다. 연자는 특이하게도 연꽃과 함께 맺히며 깔때기 모양의 씨방에서 알알이 자라는 손톱 크기의 작은 알갱이다.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가운데 있는 배아를 떼어낸 나머지 부분이 연자육이고 연자죽 등 요리에 사용되고 있다. 연자육은 전분,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외에도 비타민 C, 비타민 B1, 비타민 B2, 철분, 칼슘, 인, 니아신, 구리, 망간 등 각종 무기질이 골고루 함유되어(법보신문), 항산화 효과가 우수하고 심신 및 신경안정과 보양에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필수아미노산인 ‘메티오닌’ 은 혈액과 간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억제하고, 콜레스테롤...
2022-11-03
깊어가는 가을과 맑은 늙은 호박탕
가을과 함께 익어가는 늙은 호박은 둥글납작한 생김새 때문에 맷돌호박 또는 청둥호박(Cheese pumpkin)이라고 한다. 서양에는 펌킨(pumpkin)으로 불리는 그 호박이다. 그런데 늙은 호박이라는 이름은 애호박이나 풋호박에 비하여 성숙했다는 숙과용호박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뭔가 무게와 깊이가 느껴지고 노란색과 함께 따뜻한 느낌도 드는 듯하다.호박은 채소 중 가장 큰 열매를 맺는 대표적인 넝쿨식물로 박과(Cucurbitaceae)에 속하며 늙은 호박은 중앙 아메리카/멕시코 남부 원산의 동양계 호박(Cucubita moschata)으로 고온 습윤한 환경에서 잘 견디는 품종이다. 호(胡:오랑캐 호)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청나라에서 유입되어 한반도 북부지방을 거쳐 남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껍질이 두껍고 장기간 보관이 가능하며 쉽게 재배되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의 하나로 호박죽, 호박범벅, 호박나물, 호박떡, 호박엿, 호박김치 등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앞...
2022-08-30
여름철 식탁의 오이지
여름철에 밥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반찬은 시원한 국물과 함께 아삭함을 즐길 수 있는 오이지가 생각난다. 오이지는 소금물에 오이를 담가 삼투현상과 효소 작용을 이용하여 독특한 풍미를 가지도록 만든 저장발효 식품이다. 삼투현상에 의해 소금의 짭조름한 맛이 오이로 투입되고 동시에 오이의 수분은 빠져나가며 오이지가 숙성되는 과정에서 미생물과 효소 등의 작용으로 새로운 맛과 향이 만들어진다. 식품화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오이를 담그는 소금물의 농도는 16~18% 정도(15% 이하면 미생물 활동이 저하) 상온(미생물이 활발하게 할동하는 온도)에 저장해야 오이가 무르거나 상하지 않고 제대로 숙성된다. 이 과정은 식품영양학에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변화인데 선조들은 어떻게 이런 세세한 부분을 아셨을까 생활의 지혜가 대단하다는 자부심마저 든다. 우리나라는 농경국으로 주식과 부식으로 확연하게 구분된 식생활로 상차림이나 수저와 저분의 사용이 독특하다. 특히 저장식품은 다양한 식품(채소, ...
2022-07-06
겨우내 영양분을 간직한 양배추
봄기운이 느껴지면서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를 찾아보고자 도착한 마트에서 신선한 물방울이 송골송골 달린 뽀얀 색의 꽉찬 동그란 몸통의 양배추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아주 예전에 cabbage patch kids(양배추아기) 이런 인형도 유행하기도 했었어. 이번에는 양배추로 아이들 입맛도 돋울 수 있는 레시피를 살펴보고 조사를 시작하였다.양배추는 서양에서 유입된 채소로 1884년 농무목축시험장에서 ‘가베지’로 재배된 기록이 ‘농무목축시험장소존고채종’(農務牧畜試驗場所存穀菜種)이라는 책자에 있으며 널리 사용된 것은 훨씬 뒤로 알려져 있다. 농무목축시험장은 고종이 미국의 협조로 각종 농기구, 종자 등을 재배하여 우리나라의 농업을 근대식 농법으로 개량하고자 설치하신 농장이다.제대로 존속되지는 못했지만, 시험장에서 사육된 작물과 가축의 상황이 이라는 책에 정리되어 있음으로 양배추를 보급하기 위해 작물로 재배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물 위주의 반찬을 주로 먹는 전통 식단에서 양배추는 어울...
2022-03-29
콩의 이유있는 변신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알려진 콩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중요한 영양소를 제공해온 식물로 모양과 색도 다양하고 그 종류는 만 8천여 종에 이른다. 공자가 편찬했다고 알려진 중국 최고의 시집인 <시경(詩經)>에 ‘숙(菽: 대두, 콩잎)’이라고 처음 나오며 꼬투리가 나무로 만든 제기(祭器)인 ‘두(豆)’와 비슷하여 그 후로는 ‘두’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 팥처럼 작은 알갱이의 콩무리가 나타나면서 이를 ‘소두(小豆)’, 본래의 콩은 ‘대두(大豆)’라고 구분하게 되었다. 보통 식물의 야생종이나 중간종, 재배종 등이 가장 많은 곳을 그 식물의 발상지로 하므로 콩은 일반적으로 중국의 동북부인 만주를 원산지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콩의 원산지로 인정받기 위하여 다양한 유물, 고문헌 등을 총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청동기시대 유적(함경북도 회령군 오동)에서 콩이 출토되어 고조선과 고구려 지역(두만강 유역)이 원산지가 아닐까 하는 견해도 있으나 최근...
2022-01-27
사찰의 향기에 맛을 담다
창밖으로 보이던 고운 단풍은 어느새 낙엽으로 길에 쌓이고 앙상한 나뭇가지가 드러나면서 이젠 겨울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경주 향교(경주시 교촌안길)는 ’신라전래음식 경주전통음식 경연대회‘를 준비하는 경주 여성유도회원들의 부산한 움직임으로 한해를 마무리한다. 올해로 9회를 맞이한 경연대회는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지원으로 개최되며 경주의 민간음식과 식재료를 중심으로 솜씨를 선보이고 전통을 이어가는 자리로 매김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사찰음식 5첩 코스요리는 연을 재료로 연자죽과 연잎밥, 그리고 뽕잎된장국, 연줄기 들깨탕을 기본으로 하였으며 조금은 억지이지만 신라의 향기까지 느겨졌다. 불국사나 오어사 등 사찰에서 올린 연(蓮 Lotus)이 들어간 정성이 가득한 공양으로 보였다. 반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이계절과 연)이 어울리는구나 싶었다.연(蓮, Lotus)은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열대지방이나 아시아 동부 지역에서 자라는 수련과의 다년생 초...
2021-11-30
숙주나물의 변신
우리대학 성취관 4층에 있는 경주시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센터)에서 경주시 관내의 어린이집에 보내드리는 어린이용 식단은 많은 시간과 고민과 열정의 결과물이다. 식단을 제공해야 할 달(月)보다 1달 반전 완성을 목표로 미리 작성하게 되는데 계절이나 아이들의 선호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 산물, 편식을 지양하기 위한 식재료 등 기본 틀로 하여 어린이를 위한 식단이 탄생한다. 이때 센터 직원들의 아이디어, 엄마(결혼한 직원)의 조언 등등 많은 입김과 최근의 요리책들을 뒤져보고 한 달에 한번 두 가지의 메뉴를 직접 조리 시연(마술)하면서 재료의 가감을 통해 탄생하게 된다. 지난달 선정되어 마술에 걸린 식재료가 숙주나물이다. 숙주나물은 특유의 향으로 아이들에게는 비인기 품목이나 영양적인 면을 고려하여 다양한 식재료를 맛보게 하려는 의도로 선택되었다. 녹두가 발아하면서 비타민 A, 비타민 B, 비타민 C가 두 배에서 많게는 40배까지 증가하고 소화와 이뇨작용을 돕고 특히 자동차 배기가스나 ...
2021-09-28
여름을 식혀주는 상추물김치
여름철 가장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채소 중 하나인 상추는 가격도 착하고 생김새도 다양해서 쌈이나 겉절이로 애용한다. 재배가 쉽고 잘 자라기 때문에 집주변 채마밭에는 항상 자리잡고 있는 국화과 왕고들배기속의 일년생 초본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기 좋은 채소지만 본고향은 거리가 먼 지중해 연안의 유럽과 서아시아라고 알려져 있다. 재배 역사가 매우 오래되어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화에서 볼 수 있고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중요한 채소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한자어로는 ‘와거(萵苣)’, 또는 ‘와채(萵菜)’ 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 서부의 와국(히말라야 쪽의 민족국가로 인도나 이란 지방을 말함)에서 도입된 채소라는 의미이리라. 중국의 고서 <천록지여>에는 ‘고려의 상추가 질이 매우 좋아서 고려에서 가지고 온 상추 씨앗은 천금을 주어야만 얻을 수 있어 천금채(千金菜)’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보편적인 찬거리의 하나인 상추가 우량품종으로 탈바꿈하다니 그 활용도나 ...
2021-07-29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산나물이 가득
계절의 시작인 봄이며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우리 선조들은 어떤 음식을 드셨을까? 지금처럼 춘곤증을 겪으셨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우리 밥상에 벼가 가운데 자리잡은 것은 6세기 이후이며 그전에는 보리나 조 등의 잡곡이 주로 재배되어 상용되었다고 한다. 곡류는 가루로 만들어 지금 우리가 말하는 떡의 형태로 먹었고 밥의 형태로 먹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 이후로 보고 있다. 경주의 국립박물관에 가면 시루(토기)도 있으며 발이 세 개 달린 솥과 불을 지피는 풍로를 볼 수 있다. 삼국시대 후기가 되어서야 밥솥에 밥을 지어먹었고 다양한 먹거리가 음식의 재료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도 장을 담갔다고 보이나 그 형태와 만드는 방법은 정확하게 전해져 오지 않고 있다. 주식과 부식이 분리된 독특한 식사 형태는 고분의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과서에 실렸던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는 각자 상이 따로 있고 상위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그릇이 있으며 조신한 모습으로...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