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76-기쁘다

밀교신문   
입력 :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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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동안 기쁘고 하고나서 기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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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읽다보면 새삼스럽게 휘둥그레 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니, 이런 구절이 있었단 말이야? 지난번에 읽을 때는 왜 이 문장을 보지 못했지?’
 
금요일 경전 읽는 모임에서도 그랬습니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문장을 만났습니다. 그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게 분명합니다. 혼자 알고 있기에 너무 아까워서 소개하려 합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소개하려면 소를 치는 목동 이야기부터 해야 합니다.
 
목동에게 왜 소를 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그야 소를 건강하게 키워서 신선한 우유도 얻고, 소떼가 불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목적이 분명하게 서 있는 목동이라면 이제 스스로도 자질을 키워야 합니다. 그저 막대기만 휘두르고 소리만 질러서는 안 됩니다. 소떼를 잘 돌보고 그 수를 늘리려면 목동이 갖춰야 하는 자질에 열한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목동은 자기가 치는 소떼가 모두 몇 마리인지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 목동은 소에게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셋째, 목동은 소의 몸에 기생하는 해충을 잘 제거해야 합니다. 넷째, 혹시 소에게 상처가 생기면 잘 치료하고 덧나지 않도록 꽁꽁 싸매줘야 합니다. 다섯째, 연기를 피워 헛간을 소독해야 합니다. 여섯째, 어디에 신선한 물이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일곱째, 소가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덟째, 어느 길로 소를 몰고 가야 할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아홉째, 신선한 풀이 있는 곳을 잘 알아야 합니다. 열째, 아침마다 규칙적으로 소젖을 짜되 조금은 남겨둬야 합니다. 열한째, 소떼에게는 그들 나름의 우두머리가 있으니 목동은 그 우두머리를 각별하게 대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이 열한 가지 자질을 갖추고 있다면 이 목동이 머지않아 성공하리라는 걸 자신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안을 가져와서 그에 빗대어 마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경전의 특징입니다. 이 경에서도 부처님은 목동의 자질을 말씀하신 뒤에 마음 공부하려는 사람도 열한 가지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 목동이 소가 몇 마리 있는지 잘 파악하고 있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 4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둘째, 목동이 소의 특징을 잘 파악하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그가 저지르는 행위에 의한 것이고, 슬기로운 자의 특징도 그 자신이 한 행동에 의한 것이라고 잘 파악해야 합니다.
 
셋째, 목동이 소의 몸에 기생하는 해충을 잘 제거해야 하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잘 살펴서 혹시 마음에 탐욕과 분노와 악의가 생겨났다면 말끔하게 털어버려야 합니다.
 
넷째, 소에게 상처가 생기면 잘 치료하고 상처를 잘 싸매야 하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눈 귀 코 혀 몸 의지로 바깥세상을 대할 때 잘 단속하고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욕심과 분노 같은 번뇌에 그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다섯째, 목동이 연기를 피우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자기가 공부한 부처님 가르침을 다른 이들에게 자세하게 들려줘야 합니다. 가르침을 들려주는 일을 연기를 피우는 것에 빗댄 것이 흥미롭습니다.
 
여섯째, 목동은 소가 물 마실 곳을 잘 알 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을 이끌어줄 스승을 찾아 자주 다가가서 자주 물어야 합니다. 소가 물을 마시지 못하면 살 수 없듯이 수행하는 사람도 그러하니 그의 물 마실 곳이 바른 스승이라는 비유가 참 좋습니다.
 
일곱째, 목동은 소가 어떤 물을 마셔야 하는지 잘 아는 것처럼,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들을 때 그 마음에 커다란 기쁨을 얻습니다. 소가 신선한 물을 마셔야 하듯이 수행하는 사람은 부처님 가르침으로부터 커다란 기쁨을 마셔야 합니다.
 
여덟째, 목동은 소를 몰고 가야 할 길을 잘 알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팔정도라는 길을 잘 알아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아홉째, 목동은 신선한 풀이 있는 곳을 잘 알듯이,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몸과 느낌, 마음과 법이라는 네 가지 장소(사념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열째, 목동이 규칙적으로 소젖을 짜되 조금은 남겨두는 것처럼, 출가수행자는 재가신자에게 필수품을 구할 때 적당한 양만 취해야 하며 모조리 가져오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열한째, 목동은 소떼의 우두머리를 잘 알아서 그들을 각별하게 대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 공부하는 사람은 승가의 어른, 훌륭한 스승을 찾아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자애롭게 대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이 열한 가지를 부지런히 닦고 익히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 속에서 성장 발전하는 길이라는 것이  『맛지마 니까야』의 33번째 경 「소치는 사람의 긴 경」에서 강조하는 바입니다.
 
이 글의 앞머리에서 경을 읽다 새삼스럽게 깜짝 놀란 문장이 있다고 했지요. 그건 바로 일곱째 항목입니다.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마셔야 할 신선한 물을 ‘부처님 가르침’이 아닌, ‘부처님 가르침’을 통한 ‘기쁨’이라는 문장 때문입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고진감래라고 하잖아.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 해. 수행이란 것은 어렵고 고된 것이야. 이를 앙 물고 이겨내면 마침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괴로움을 끝까지 참아내면 달콤한 경지가 찾아온다는 고진감래는 동서고금에 통하는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전을 읽다보면 수행은 고진감래 그 이상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행은 괴로운 길이 아니라 끝없이 행복을 얻고 기쁨이 차오르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수행하면서 기쁘고 즐거우니, 그 맛에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는 동안에 즐겁고 행복하니 수행을 완성한 궁극의 경지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수행하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니 다른 이에게도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것이지요.
 
거의 모든 경전의 끝 문장이 ‘환희봉행하더라’인 것을 떠올려보면 불자로서 살아가는 나날이 즐거움의 연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좋은 날’이 아닐 될 리 없겠습니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라는 명언도 곰곰 생각해보면 참 맞는 말이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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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