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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데 태과 없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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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당 작은 텃밭에 고추가 빨갛게 달렸습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이 마음속을 깨끗이 씻어주기라도 할 듯 청명하기 그지없습니다.

가을입니다. 예부터 우리는 가을이라는 단어를 풍요의 뜻으로도 해석하곤 했습니다. 가을이야말로 오곡백과를 거두어들이는 결실의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풍성한 농촌마을 곳곳에서 농산물을 거두는 장면이 TV 화면에 종종 소개되고 있지만 그 느낌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제 입에 올리기에도 부담스러운 코로나19 펜데믹의 영향이 클 것입니다.무엇보다 경제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있으니 사람들이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여 즐겁기만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저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장사가 안 된다고, 취직이 안 된다고, 직장을 잃었다고 하소연만 할 뿐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실망하지 말고 이 어려움을 이겨내기를 큰마음으로 서원합니다.지금 다들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종종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이룬 것이지만 우리가 너무 넘치는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닌가,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시대의 어려움 역시 우리의 과도한 소비생활도 한몫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의식주 해결마저 못하고 있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더 맛있게, 더 편하게,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과소비를 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의 펜데믹 상황은 어쩌면 기울어진 균형추와 교란된 생태계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동양 고대철학서 <주역>에 ‘태과불급 개위질(太過不及 皆爲疾)’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넘쳐도 병이 되고 부족해도 병이 된다는 뜻입니다. 태과란 넘친다는 말이고 불급은 모자란다는 말이며, 개위질이란 질병에 미친다는 말입니다.

 

보통은 태과불급(太過不及)이라고 하여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같은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나침을 경계하는 동시에 조화를 강조하는 철학용어입니다. 태과와 불급, 세상은 어떻게든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부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늘 기울어진 추의 균형을 잡으려 애써왔습니다. 많은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어야 균형 있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조 회당대종사님은 ‘불급보다 태과가 주는 병이 더욱 크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태과에 대해 한 차원 높은 말씀을 주셨습니다.“받는 것은 태과太過하면 병이 되지만, 주는 것은 태과해도 지나침이 없다. 약을 많이 먹으면 도로 병이 나지만 진리의 희사공덕은 병을 다스린다. 태과가 되면 병이 생기고 진리의 희사로 태과를 없애면 병이 고쳐진다. 대체로 태과한 것은 박멸시켜야 하고 불급(不及)한 것은 육성시켜야 한다.”<실행론 4-3-8(나)>

 

넘치게 가지려는 데는 태과가 있지만, 모자라는 곳에 보태 주는 데는 태과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누고 보태는 데에는 병은커녕 한량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남는 것을 덜어내어 모자란 것에 보충하여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자비의 마음이요 희사의 정신입니다.세상사 모두가 적당해야 건강합니다. 불법(佛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의 종조님의 귀한 가르침을 홀로 알고 실천하면 태과가 됩니다. 그러나 법을 알지 못하여 불급한 이웃들에게 아무리 많은 법을 전해도 그것은 태과가 되지 않습니다.이 가을, 천지가 조화롭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만 좀 기울어져 있을 뿐입니다. 혼자 갖기에 태과하지 말고, 불급한 곳에 태과하여 나눈다면 바로 세상이 균형을 잡을 것입니다.

 

이행정 전수/무애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