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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가까운 듯 그 아스라한 거리

편집부   
입력 : 2018-06-18  | 수정 : 2018-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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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추억으로 남고 추억은 기록으로 남는 것일까? 경주가 그랬다. 여고 때 수학여행을 가던 추억의 공간이기도 하고 피로하고 고단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한번쯤 일탈을 꿈꿀 때 삶의 공간으로서의 경주와도 만나게 된다.

2014년 개봉한 장률감독의 영화 ‘경주’가 떠오른다. 소외된 사람과 풍경 즉 ‘죽음과 삶의 공간(풍경)으로서의 경주’가 배경이 된 슬프고도 아름다운 경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영화이다. 주인공인 북경대 교수 최현(박해일)은 친한 선배의 죽음을 계기로 한국에 입국하게 되고 문득 7년 전 보았던 춘화의 기억을 더듬어 경주로 향하게 된다. 7년 전 찻집 벽에 붙어있던 ‘춘화’ 그러나 최 교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의 안부를 “7년 전 여기 있던 춘화를 못 봤어요?”라고 찻집 주인에게 묻는다.

찻집 주인인 윤희(신민아)는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지워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화 전편에 흐르고 있는 아우라는 죽은 선배와 고분 능을 바로 곁에 두고 죽은 남편을 추억하며 쓸쓸히 살아가는 윤희, 자살을 선택한 엄마 등 삶과 죽음,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현실을 설정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시니컬하게 처리해 간다. 상실과 소외, 익숙한 것과 낯설음의 경계사이에 영화 ‘경주’가 변주된다. 그러면서 감독은 경주라는 지명이 갖고 있는 의미와 주제를 묻는다. 감독은 윤희의 대사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주제를 드러낸다. “집 앞에 능이 있으니까 이상하지 않아요? 경주에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 경주는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임을 윤희의 대사를 통해 또렷이 알 수 있다.

나는 경주서 태어났지만 오래전에 경주를 떠나 서울서 자랐다. 얼마 전 부산서 경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오십을 훌쩍 뛰어 넘어 다시 경주로 되돌아온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을 만나게 됐다. 벌써 경주생활 22년째 접어든다고 말했다. 그녀의 입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지진이라는 말을 듣게 됐다. 경주 시민이라면 지진 때문에 받았던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오롯이 받으며 아직도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했다.

경주는 신라 천년고도라는 명성과는 걸맞지 않게 문화유적의 화려함과 찬란함의 그늘에 가리어진 ‘지진’이라는 아픈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른바 지진에 대한 의식들이 단지 어떤 공포스러운 막연한 대상일 뿐 무서운 재난이라는 인식에까지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 경주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지진의 상처로 불안과 아픔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가 됐다. 그렇다면 삶의 공간으로서의 경주는 주민의 희망과 행복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도시인가. 기억은 추억되고 추억은 기록되는 것이라면 어쩌면 경주는 불안과 공포만이 가득한 기억으로 또는 기록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찬란함 속에는 어둠과 아픔이 함께 자리한다는 사실을 경주 시민들은 지진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세계 곳곳에서 환경과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그 누구도 자연의 대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나 또한 경주에 사는 한 지진으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순 없다.

홍원심인당이 자리한 곳은 첨성대와 대릉원이 내려다보이는 가장 전망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렇게 유서 깊고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 매일 감사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얼마나 실천에 옮길지 아득하기만 하다. 중생제도의 길로 들어섰음에 불퇴전이란 있을 수 없다.

영화 ‘경주’서 늦은 밤 윤희와 최현, 영민이 함께 산책하던 대릉원 길을 나도 오롯이 산책하고 있다. 감개무량하다. 경주에 이사 와서 누리는 호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앞에서 첨성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행복감, 눈이 시원하도록 펼쳐지는 초록의 아늑한 고분 능은 태곳적 신비의 편안함과 함께 정신적 위로와 고요를 매일 선물한다. 피로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찰나 속에서 순간순간 죽어가면서 또다시 새롭게 태어남을 경험한다. 경주가 안겨준 가장 큰 선물은 삶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매일 깨어있기를 주문한다. 경주로 거처를 옮긴 후 삶에 대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삶에 대한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금 깨닫게 된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