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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칠존 이야기 7-보바라밀

밀교신문   
입력 : 2018-04-30  | 수정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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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서 평등하게 보배의 성품을 보는 지혜

불교경전에서 자주 보이는 마니라는 용어는 산스끄리뜨 mani의 음역으로 보배구슬의 총칭이다. 마니가 중국인들에게 낯설기 때문에 여기에다 보주라는 한자가 혼합된 것이 마니보주이니 이 두 낱말은 같은 보배라는 뜻이다. 이 구슬은 용왕의 뇌 속에서 나온 것이라 하며 일반적으로 마니에는 불행, 재난을 없애고 혼탁한 물을 맑히는 등의 덕이 있다고 한다. 특히 생각대로 진귀한 보물을 낸다고 하는 보배구슬을 여의보주, 또는 여의주라 하며, 이것을 마니보주라 하기도 한다. 여의보주는 그것을 지니는 사람의 모든 소망을 이루어 준다는 보배구슬로서 보통 지장보살과 용이 지니는 지물로서 불상이나 불화 등에 등장한다.

그런데 보배라고 하면 불교의 이미지와 먼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출가자는 돈이나 보배를 저축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배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은 수행하는 데에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고, 실제로는 모든 불보살과 법이 숭고하고 존귀함을 형용하는 데에는 언제나 보배를 사용한다. 예컨대 부처님의 자리를 보좌라고 칭하거나 모든 불보살의 장엄한 모습을 보배의 모습이라 하며, 진여청정한 불성을 보배의 성품이라 하고,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부처님 법을 따르며 전하는 스승, 이 셋을 삼보라 하거니와 이 셋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아니될 귀중한 보배이다. 또한 여러 경론 중에는 모든 불보살 및 그 국토를 각종 영락과 보물로 장식하는 일을 서술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 5보라는 명칭이 경론 가운데 널리 보인다. 5보는 글자 그대로 다섯 종류의 보물을 가리킨다. 즉 금⋅은⋅호박⋅수정⋅유리이다. 밀교에서는 단을 건립하고 수법을 행할 때에는 반드시 5약⋅5향⋅5곡과 5보 등을 단 아래에 매장하며, 혹은 관정할 때에 5보를 단의 5병 속에 넣는다. 이렇듯 보배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의 가치가 높고 귀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세상 모든 존재는 보배와 같이 모두 귀한 존재들 뿐이다. 그 하나의 예로서 꽃을 들어보자.

꽃은 아름답기에 장식용으로 수요가 많다. 그래서 기념할만한 날에는 꽃으로 장엄한다. 꽃집에 가면 여러 가지 꽃들마다 독특한 개성을 갖고 꽃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각각 의미가 다르기에 사람들은 그 꽃 중에서 기념일에 알맞은 꽃을 사간다. 꽃값도 각기 달라서 크고 아름답거나 많은 사람들이 애호하는 꽃, 기르기 힘든 꽃 등은 값이 꽤 나간다. 값이 나가는 것을 가치라고 하거니와 꽃집의 꽃은 각각의 경우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진다.

그런데 산과 들에 피어나는 꽃 중에는 절대로 꽃집에서 팔리지 않을 꽃들이 허다하다. 장식하기에 알맞지 않거나, 별로 아름답지 않거나, 어떤 꽃인지 잘 보이지 않는 등등의 이유로 그저 봄철에 피어났다가 별 관심없이 사라지고 마는 꽃들이 많다. 이런 꽃을 구입하기 위하여 값을 지불하는 경우는 없다. 그렇다면 꽃에도 꽃집주인이나 꽃을 사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가치가 있는 꽃과 없는 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름 없는 꽃일지라도 그 꽃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생각해보면 우리는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가르침에 따라 다음과 같은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인가 그 꽃의 씨앗이 그 자리에 자리 잡아 토양과 기후와 수분이라는 조건을 충족한 뒤에 싹이 피어나 꽃을 피운 것이다. 그 꽃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꽃이 다 평등하게 인(因)과 연(緣)을 갖추어 꽃으로 피어났다. 인연으로 생겨 일어난 모든 것들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당위성을 갖는다. 들판에 피어난 어떤 꽃이라도 그 자리를 차지할 권리를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꽃집 주인은 하찮게 여겨지는 꽃들을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자신의 관점에서 가치가 나갈 꽃씨를 뿌릴지 모른다. 이러한 의미를 모든 존재에 결부시켜보면 세상의 어떤 것이든 우리 눈앞에 보여질 때에는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지닌 것이지만, 이름없는 꽃을 뽑아버리는 꽃집 주인처럼 그 존재의 지속여부를 결정짓는 인간의 행위는 탐욕 등 욕망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일 뿐이다. 연기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라본다면 실로 모든 것은 존재해야 할 당위성을 지니며 무한한 가치를 가진 보배처럼 귀한 존재이다.

그 보배는 세간의 금은방에서 사고파는 보배와는 다르다. 불교에서 보배는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존재가 연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불변하는 특성이 없이 인연따라 변화함을 말하는 것으로 고정된 성품이 없다는 뜻이다. 중생이라 하여 중생의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며, 보살이나 부처라 하여도 고정된 성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을 여래장이라고 하거니와 중생은 모두가 평등하게 여래장을 품은 존재이다. 불교경전에서 많이 사용되는 보배의 개념은 바로 보석과 같은 여래장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