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죽비소리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편집부   
입력 : 2017-11-27  | 수정 : 2017-11-27
+ -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영국의 끝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묻는 현상공모를 했다.

‘비행기를 이용해서’, ‘기차를 이동해서’… 많은 답이 제시됐지만, 당선작은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은 지루함보다는 아름다움이다.

인생의 여행에서 좋은 동반자를 만나는 것, 진정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사는 방법이다.” 장용철 시인의 ‘눈은 눈을 보지 못함같이’의 ‘동반자’에 나오는 글이다.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바꿔 생각해보면 좋은 세상을 꿈꾸고, 인간다운 가치를 함께 꿈꾸는 그래서 나보다는 너, 너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를 꿈꾸며 혼자보다는 함께라는 의미가 그 동반자 속에 내포되어 있었을 것이다.

종단에선 지난 8월 23일부터 9월 1일까지 9박 10일간의 일정으로 각 교구 포교사를 주축으로 네팔 연수가 진행됐다. 우리 심인당에서는 매년 네팔 돕기 지원 행사로 장학금 지급과 학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컴퓨터 지원 등 작지만 네팔 돕기 지원 행사에 뜻있는 교도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됐다.

이번 행사에 우리 정정심인당 포교사도 참석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네팔 아이들이 어떻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간단한 연수 소감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얼굴엔 미소와 마음에는 평화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청빈하고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대목에서는 어쩌면 네팔인들의 정신적 만족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은 신앙(불교)적 삶과 풍습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매우 인상적으로 들렸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어느 지하철 안 광고 배너에 쓰인 문구가 갑자기 생각났다. 법정 스님의 글 ‘무소유’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부의 극단적 양극화에도 불구하고 네팔에 불고 있는 뜨거운 자본주의적 한류 열풍을 전해 들었을 때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많은 네팔 젊은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착잡하고 난감했다. 오래전부터 구상하여 종단에서 공들여 추진하고 있는 국제포교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는 네팔의 반야포교소의 자성동이들의 근황도 함께 전해 들을 수 있어 무엇보다 뜻깊었다. 

이젠 너, 나 할 것 없이 지구촌은 한 가족이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상을 떠올릴 때 흔히 우리는 스마트폰, 원룸, 비정규직, 편의점, 반려동물과 같은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해선 안 될 그 무엇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 무엇’이란 첫째는 우정과 환대로 같이 꿈을 꾸는 지구 시민이고, 둘째는 더 나은 인간들의 공동체를 위해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지구 시민이다. 그것은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미래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우주의 원리가 인드라망처럼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라면 우정과 환대, 그리고 친교는 가장 큰 공동체를 이루는 출발점이자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지금 시대는 초스피드로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이다. 종단에서 국제포교 사업의 일환으로 부처님의 법음과 종조님 말씀을 알리는 반야포교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주민이든 원주민이든 우리는 우주법계가 다 부처님 세상에 살고 있음을 나날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야 하고 가족과 국가를 넘어 타자에 대한 자비와 평등을 넘어 서는 진정한 의미로서의 글로벌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을 꿈꾸어야 한다.

그래서 “나날이 새로운 데 새것이 들어온다. 마음이 항상 새로우면 어떠한 것이라도 항상 새로운 것을 맛볼 수 있다. 나날이 새로운 마음을 가져 평범한 속에 한없는 생활미를 발견함이 참으로 행복한 생활이다.”라는 종조님 말씀이 새삼 새롭다.

“마음이 항상 새로우면 새로운 것을 맛볼 수 있다”는 그래서 가장 멀리 가려면 항상 새로운 마음을 일으켜 함께 가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