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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하고 연대하며 공감하라

편집부   
입력 : 2017-03-31  | 수정 : 2017-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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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각누리단 제2회 정기공연이 ‘체인지’라는 제목으로 부산 양정 청소년수련관 7층 소극장서 성황리에 개최된 바 있다.

줄거리 내용은 “이해할 수 없는 사춘기 신세대의 일상과 이해하기 싫은 기성세대인 오춘기의 좌충우돌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세계 2위이다. 조사마다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청소년의 15~46%가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고, 3~11%의 청소년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보도되었다.
요즘 교육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해 다양한 교육 개혁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근대적 발상으로 학생들은 단순 지식을 암기하고 족집게 맞춤식 입시와 과외에 길들여져 문제를 외우고 익히는 스킬만을 배운다. 진짜 내 아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할 수 있는지에 귀 기울여야 한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다른 길이 있는 법, 남과는 차별되는 그 무언가를 찾고, 진짜 적성에 맞는 일,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이 저마다 있기 마련이다. 최대한 그들의 개성과 창의성을 파악, 개발하고 발굴하여 재밌고 신명 나게 할 수 있는 환경과 풍토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우리 기성세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며, 그들을 케어해야 할 책무이므로 책임 있는 소신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어른인 기성세대는 학생 역할로 청소년인 신세대는 어른 역할로 바꿔봄으로써 세대 간의 갈등과 체험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성찰하고 연대하며 공감했으리라. 그럼으로써 성장하고 자신을 되돌아봄으로써 존재감을 스스로 높이고 자아 정체성의 대혼란으로부터 자신을 찾고 감성을 다시 회복함으로써 성찰하고 연대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읽었던 미국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롭다. 골짜기 마을에서 자란 주인공 어니스트는 사람처럼 생긴 바위, 즉 반듯한 이마와 긴 콧날, 우직한 입술을 가진 큰 바위 얼굴을 보며 자란다. 이 마을에는 언제부턴가 “언젠가 큰 바위 얼굴처럼 기품과 장엄함과 부드러움으로 지혜로움을 갖춘 위대한 인물이 이 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이 전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주인공 어니스트도 매일 큰 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예언 속 인물이 나타나길 간절히 기다리던 어느 날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사람이 마을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돈다. 소문의 주인공은 이 마을 출신으로 무역을 통해 큰 부자가 된 상인이었다. 막상 마을 사람들이 가서 얼굴을 확인해 보니 상인의 눈빛은 큰 바위 얼굴의 너그러움보다는 탐욕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어니스트도 부지런하고 친절한 청년으로 자라난다. 그 무렵 골짜기 마을 출신으로 유명한 장군이 된 사람이 마을을 방문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을 사람들과 어니스트도 큰 기대를 품고 장군을 맞이하지만, 그도 예언 속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큰 바위 얼굴과 같이 기운과 의지는 넘쳤지만, 온화함과 지혜로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골짜기 마을 출신으로 출세한 정치인도 마을 찾아 왔지만, 그 역시 얼굴에는 권력욕과 명예욕만 가득할 뿐 기품과 온화함은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예언 속 인물을 기다리는 사이 어니스트도 중년을 넘어 노인이 되어갔다. 매일 큰 바위 얼굴을 스승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어니스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큰 바위 얼굴의 겸손함과 온화함을 갖춘 얼굴로 닮아 갔다. 그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게 되고 어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많은 사람과 저명인사들도 골짜기 마을로 찾아들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 출신인 시인이 소문을 듣고 고향 마을에 찾아온다. 어니스트가 온화한 표정으로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보는 그 순간 “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예언 속 인물인 큰 바위 얼굴이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하는 것을 시인은 곧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예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은 항상 우리 나 자신 곁 가까이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늘 자신과 그리고 저마다와 함께 했음에도 청맹과니가 되어 보지 못했을 뿐이다. 함께 성찰하고 연대하고 공감하는 시간 속에서는 청소년의 미래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