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죽비소리

취급주의 마음그릇

편집부   
입력 : 2017-03-16  | 수정 : 2017-03-16
+ -
공부방 실내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천장용 LED 전등을 하나 주문 배달시켰습니다. 며칠 뒤 택배가 배달되었는데, 포장 박스를 조심히 뜯어보니 전등 커버 유리가 깨져 있었습니다. 반품할 요량으로 주문한 업체에 전화를 했더니 전등에 이상 없이 불이 들어오면 유리 덮개만 따로 배달해주면 않겠냐며 양해를 구해왔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 다시 큼지막한 포장 하나가 택배 배달되었습니다. 살펴보니 LED 전등 유리 덮개 인듯한데 진짜 과(過)하리만큼 완벽한 포장으로 배달이 되었습니다. 내팽개쳐도 깨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뽁뽁이 비닐을 몇 겹으로 둘러쌌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유리 커버 한 장의 가격보다 포장비가 더 들어갔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포장 박스 안에는 에어 비닐이 이중으로 안전장치가 되어있었습니다. 절대로 깨질 염려가 없는 완벽에 가까운 보호 포장 이었습니다.

여행용 가방 캐리어를 함부로 다루고 집어던지고 해서 가방 속에 있는 물건이 상하거나 심지어 튼튼한 가방까지 망가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행이나 출장목적으로 해외로 나갈 때면 비행기 탑승권을 받는 자리에서 항상 수화물 짐을 부칩니다. 탑승권을 발권해주는 항공사 직원은 ‘부치는 짐 안에 혹시 깨질 물건이나 함께 부치지 말아야 할 위험한 물건이 있냐’고 늘 묻곤 합니다. 그럴 때면 깨지기 쉬운 물건이 있으니 ‘취급주의’ 표시를 하나 달아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가방을 아무렇게나 얼마나 집어던졌던지 가방도 망가지고 안에 있던 물건도 엉망이 되어있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깨지기 쉬운 물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유리제품들이 잘 깨지곤 하지요. 유리제품은 쉽게 깨어지고 한번 깨지면 못쓰게 됩니다. 그리고 깨진 유리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리제품들보다 더 쉽게 깨어지고 쉽게 상처를 입을 수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람들입니다. 사람은 의외로 깨어지기 쉽고 상처 입기 쉬운 존재입니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대상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어느 누구는 벌써 수없이 많은 상처와 이빨 빠진 유리잔이나 컵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어느 누구는 깨진 여러 파편 조각들을 엉기성기 엮어서 끼워 맞추고는 투명 테이프로 모양만 겨우 갖추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는 모양조차 갖추고 있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그릇이나 잔으로서 제 기능을 제대로 못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본래의 구실을 못하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에게는 ‘깨지기 쉬움’ ‘취급주의’ 문구나 ‘던지지 마세요’라는 주의 문구를 달아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뽁뽁이 비닐을 몇 겹으로 둘러싸지도 못합니다. 스티로폼으로 방어막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사람이란 존재가 상처받고 쉽게 깨어지는 것은 말에 의한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삶의 희망에 목말라하고, 격려나 응원을 필요로 하고 인정과 칭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상대가 꼴불견이고 꼴 보기 싫더라도, 다시 말해서 좋게 보기가 참으로 힘들더라도 좋은 말로써 대응할 수는 있습니다. 좋은 말은 자신을 살리고 상대를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자신을 포함해서 듣는 이를 정신적으로 고양(高揚)시킬 수도 있고 혹은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삶의 고달픔에 자신의 생을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고 힘없이 한강 다리 위를 걸어가고 있던 한 여인에게 마주 지나치던 한 사람이 무심코 말을 건넸습니다. “어머, 참 예쁘시네요, 눈이 너무 아름다우세요, 부럽습니다.” 이 짧은 몇 마디의 말에 그냥 살짝 미소로 답하며 고개를 꾸벅했지만, 갑자기 자기가 살아야 되겠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끼면서 그 여인은 스스로 택하기로 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후 훌륭한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을 지나치며 자신에게 힘을 준 그 사람을 꼭 찾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지나치던 사람은 그 여인을 살리려던 보살의 현신(現身)이 아니었을까요? 누구였든 그 몇 마디의 말은 분명 그 여인에게는 감로수였고 부처님의 목소리이었습니다.

한편 유리나 사기제품 중에는 특수재질로 만든 제품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유리제품은 웬만한 충격에는 쉽게 다치거나 깨지지 않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 접시를 떨어뜨렸는데 순간 깜짝 놀랐지만, 접시가 멀쩡한 적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특수재질로 만든 유리 접시였습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특수재질로 만든 유리 접시나 사기그릇처럼 웬만한 충격에는 쉽게 다치거나 깨지지 않는 그런 물건이 되도록 단련할 수 있습니다. 실수로 던져진 상대의 언행에 그 실수를 인정하고 용서해주는 혹은 실수가 아닌 고의의 언행이었다 하더라도 그런 상대방의 모습에 너무 쉽사리 상처받고 깨져버리지 않는 이 정도의 튼튼한 마음 그릇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러한 고행과 단련의 과정들이 우리의 수행입니다.

그릇과 접시들이 금이 가고 깨져서 볼품없이 되고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면 새 그릇과 접시들을 장만해야 합니다. 그렇듯이 마음 그릇이 이빨 빠지고 상처투성이여서 볼품없이 되었다면 우리는 그 마음을 그대로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도 아프지만, 상대에게도 깊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공부의 과정들을 통해서 새마음으로 그리고 튼튼해진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질 좋은 특수재질의 그릇들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돈 들이지 않고서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쉼 없는 용맹정진은 필요로 합니다.

보성 정사 /시경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