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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 그것이 보약이였네

편집부   
입력 : 2016-11-01  | 수정 :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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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급하게 지하철 탈 일이 있었다. 몇 정거장 지나서 내 앞에 자리가 비었길래 슬그머니 앉았다. 그런데 같은 칸 맞은편에 한 중년의 남자가 시선을 고정한 체 나를 예의주시하며 야릇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머지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둘 줄을 몰라 난감하기까지 했다. 분명히 무언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 표정인데. “아직까지 내 얼굴이 예쁜가 하는 생각에 괜스레 나도 모르게 의기양양해졌다.” 내가 그런 생각을 잠시나마 하고 있는 사이에 그 남자는 지하철에서 내려 어디론가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 남자가 내리고 한 참이나 지나서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 곳은 머리였다. 순간 손에서 무엇인가가 잡혔다. 아뿔싸! 그것은 앞머리 구르프(헤어롤)였다. 바삐 나오다 보니 미쳐 머리 구르프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빼고 나온다는 것을 까맣게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년의 남자가 무언가 말을 할 듯한 야릇한 표정의 웃음이 순간 오버랩 되며 떠올랐다.

가끔 무엇에 쫓기기라도 하듯 바삐 생활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실수를 더러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신중치 못한 나를 자책도 해보지만, 더 부끄러운 것은 착각 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그럴 듯하게 내 생각을 합리화시킨다는 것이다.

단지 그 남자는 나의 실수를 배려의 차원에서, 야릇한 웃음으로 빨리 알아차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저 이상야릇한 웃음의 정체가 ‘혹시 흑심을 품고 있는’ 쯤으로 착각하고 온갖 상상의 나래를 한껏 부풀렸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러나 살면서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해 본 적은 없다. 누구나 이런 실수쯤은 한 번 할 수 있는 일이고, 이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해야 할 일인지 슬퍼해야 할 일인지 분간이 서지 않았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어떤 상황에 다다르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심리상태가 작용한다고 한다.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향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언짢은 반응을 보이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도 그 심리 속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나 보다. 한편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봤다. 만약 정말 좋은 이웃이었더라면 은근히 남의 실수를 재미로 즐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좋은 시민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어쩌면 더 나은 인간들의 공동체를 위해 인간다운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다움의 고결한 품위를 잃지 않는 그런 생각하는 시민일 것이다.

불교 칼럼니스트 이미령은 ‘부처님의 대화법 4가지’를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첫째, 사실 그대로를 말한다. 둘째, 서로의 장점을 자주 말한다. 셋째, 부드럽고 고운 말을 쓴다. 넷째, 지나친 농담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생활 가운데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실 그대로를 솔직히 아무 스스럼없이 말하기 어렵고, 그리고 서로의 장점을 자주 말해 주기란 더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실 그대로를 말함에 있어서도 이기심이 들어갈 수도 있고, 서로의 장점을 자주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수천수 만 가지가 핑곗거리로 작용한다. 그래서 수행, 마음 닦는 일이 절실히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으시며 만천하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일찍이 인간의 존엄성,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셨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은 언제나 발걸음이 고요하다.

나는 머리 구르프를 볼 때마다 ‘사실 그대로를 솔직히 정말 아무 사심 없이 말하자’가 떠오른다. 실수를 통해 또는 실패를 통해 계속 성장하는 사람…. 지하철에서 만난 소중하고 고마운 인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저마다 복지구족하기를 가만히 눈을 감고 서원한다, “실수, 그것이 보약이었네”라고.

수진주 전수 / 정정심인당 교화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