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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큰 기부, 백석 시인 그리고 길상사

편집부   
입력 : 2016-09-01  | 수정 : 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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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서울서 교화를 할 때이니, 벼르고 별러 작정하고 시간을 내어 성북동에 자리하고 있는 길상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서울의 3대 요정의 하나인 대원각이 지금의 길상사가 됐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날 길상사 앞마당을 고요히 거닐며 대원각의 안주인이였던 기생 김영한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어느 날 우연히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으며 그녀가 죽는 날까지 평생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한 한 남자가 시인 백석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1990년대 수억 원을 쾌척하여 <백석문학상>을 제정한다.

현재 추산가치가 약 1조 원에 달하는 그녀가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그녀에게 어느 날 기자가 한마디 던졌다. “평생 모은 돈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평생 모은 이 돈은 그의 시 한 줄만 못하다. 나에게 그의 시는 쓸쓸한 적막을 시들지 않게 하는 맑고 신선한 생명의 원천수였다.”고 담담히 읊었다.

그리고 그녀는 199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에 감화되어 시가 1,000억 원의 대원각을 아무런 조건 없이 법정 스님께 불도량으로 만들어 줄 것을 간청하며 보시하게 된다. 더불어 그녀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으로 길상화라는 불명을 받고, 신심 돈독한 불자로 거듭 태어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 나의 화두는 세상을 바꾸는 인간의 9번째 지능인 즉, 영성지능(SQ)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진정한 행복을 소유에서 찾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했다. 그때 우리가 고민하는 딜레마는 딱 2가지다. 이타행이냐 자리행이냐의 고민일 것이다.

그런데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영성이 발달된 사람들의 특징에 우리가 주목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즉, 세상을 바꾸는 인간의 9번째 지능인 영성지능(SQ)을 주창한 신디 위글워즈는 말한다. “영성이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무엇, 신성하거나 고귀한 무엇인가와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 영성은 존재할 수 있다. 신디 위글워즈가 말한 ‘더 큰 무엇’이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봤다. ‘더 큰 무엇’이란 영성이 발달된 사람들이 보이는 특징과 정신으로 요약됐다. 인생의 가치를 개인적 성공이 아닌 가치추구에 두고, 나보다는 우리를 또는 타인에게 두며, 박애와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영성이 유독 많이 나타난다는 특징이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개인의 행복과 가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를 위해 의미 있는 가치와 행복을 쓴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울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며, 자신의 긍정적 삶이 ‘더 큰 무엇’과 연결되어 능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사는 부산은 얼마 전 122년 만에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며 폭염과 열대야가 최고 수치를 경신했다.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가 곳곳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자연의 재앙으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순 없다. 이런 현상들이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루빨리 영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우리의 수행법은 희사와 염송이다. 그렇다면 희사심은 인색한 마음을 다스려 자비한 마음을 일으키는 자비행, 이타행일 것이다. 염송은 고요히 선정에 들어 지혜를 일으켜 바른 인과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나누고 베풂으로써 더 넉넉해지고 평화롭고 고요해지는 삶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육행인 희사, 계행, 하심, 용맹, 선정, 지혜인 육행을 제대로 실천하는 삶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에 아무런 조건 없이 조용히 나눔을 실천한, 그리하여 다시금 영성을 일깨워 준, 그래서 자꾸 눈에 밟히는 길상화 보살이 새삼 그리운 까닭일 것이다.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 교화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