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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친구, 그리움을 더하다

편집부   
입력 : 2016-07-18  | 수정 :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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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롭지 않은 도시생활 속에서 시계 초침처럼 잊혀가는 고향과 인생의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장독에서 오랜 시간 묵은 김치같이 멋지게 세상을 살고 있는 고향 친구가 한 명이 곁에 있어 힘들고 지친 중년의 마음에 서로에게 소중한 위로가 된다. 

몇 년 전, 자동차 관련 중소기업 중견 간부로 활동하던 친구는 남몰래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
회사 재정 상황이 악화되어 구조조정이라는 소용돌이에 휩싸인 친구는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게 되었고 그가 살아온 인생에서 그토록 힘든 시간을 어느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그리 좋아하던 마라톤도 잠시 내려놓았다.

친구는 오랜 숙고 끝에 앞으로 월급은 비록 적어지더라도 끝까지 자신은 회사에 남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동고동락했던 일부 동료들은 아픔을 뒤로하고 여기저기서 짐을 챙겨 회사를 떠났다.
허탈한 모습으로 회사 정문으로 사라지던 회사 동료들을 차마 볼 수가 없었고, 어떤 말도 끄집어내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면서 친구는 떠올리기 힘든 그때를 소주로 자신의 응어리를 대신하였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회사의 주인이 자주 바뀌어도 그렇게 몇 번의 어려운 과정을 겪고 만성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여간한 힘든 상황이 닥쳐와도 이제는 자신만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고향 친구로 변신했다.
친구와 닮은 점이 많다. 장남이고, 노모가 한 분 계시고, 성격도 내성적이다.
이런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요즘 만나면 우리들 얘깃거리는 단연코 가족들에 관한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있는 집이라만 평생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주홍글씨처럼 끌고 다녀야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문제일 것이다.
한 가정의 자식이자 또한 아버지로서 짊어지고 가는 이 시대의 고독한 남자로서 둘 다 고민이 많다.
장마 기간 중,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고향에 홀로 넓은 마당을 지키는 몸이 불편한 어머니가 마음에 걸려 어렵사리 틈을 내어 전화하여 안부도 물어야 되고, 자식들 교육 뒷바라지를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까지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행여 자식들이 아플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고 다니는 직장 여건이 나아지길 기대하는 등 신경 쓸 것들이 너무 많다.  
비 오는 날, 친구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친구 어머니가 인공관절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년시절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친구 집을 내 집처럼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여름에는 농익은 수박을 친구 가족들과 같이 나누어 먹기도 했다. 가을에는 친구의 할머니는 자신의 친손자처럼 대해 주면서 집 앞마당 감나무에 살포시 홍조를 머금은 홍시도 손수 따서 건네주기도 했고, 부모들도 마치 당신의 가족처럼 기꺼이 밥 한 공기를 나에게 내어 주곤 했다.
친구의 어머니는 항상 살갑게 대해 주었다.

명절날 으레 고향 친구들과 같이 친구 집으로 인사하러 갈 때마다 친구의 어머니는 먼저 내 손부터 잡고 제일 반가워하셨다.
“야야, 어서 온나.”
우리들은 거리낌 없이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선다.
친구의 어머니는 어디선가 감추어 두었던 주전자를 들고나오신다.
“너그 온다고 포도주 담갔다.”
“많이 먹거라.”
친구 어머니의 넘치는 정이 주전자 가득히 베어 있었다.

그렇게 순수하고 즐겁게 사셨던 친구의 어머니도 내 어머니처럼 세월을 비껴갈 수가 없었다.
친구의 고향 집은 이미 도로정비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지만, 마음 한가운데는 친구의 거친 할머니 손으로 건네주었던 작은 홍시와 친구 어머니의 정겹고 투박한 경상도 말씨에 담긴 정이 유달리 그리움을 더한다.

김용태/심인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