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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무게

편집부   
입력 : 2016-03-16  | 수정 :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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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가 되면 돼지저금통을 사서 동전을 모으는 습관이 있다. 물론 주머니나 집 구석구석 뒹구는 동전들을 넣을 곳이 필요해 저금통을 산다. 옛날에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저금통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길거리에 동전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동전 정도는 눈여겨보지도 않는다. 집 안 구석구석 동전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연말이 되면 방마다 있는 돼지저금통을 모아 동전을 수거한다. 구형 십 원짜리, 신형 십 원짜리, 오십 원짜리,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 각각 따로 모은다. 모양도 무게도 가치도 다르다. 때로는 외국돈도 슬그머니 끼어있다. 올해도 정리해 백 원짜리, 오백 원짜리만 모아 은행으로 가서 환전을 하니 삼십여 만 원이다. 혼자 들기에는 버거운 무게다. 돈의 무게를 제대로 느끼는 순간이다. 환전을 하니 오만원 권 여섯 장의 무게와 비교가 된다. 돈의 가치만 생각하며 살아온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오늘, 비로소 돈의 무게를 느낀다. 무겁다.

혼자 느끼기에는 아쉬워 아들에게 들어보라고 한다. 끙끙거리며 든다. “얼마나 될까?” “… ….” “너 한 달 용돈이 얼마지?” “삼십만 원” “꼭 너 용돈만큼의 무게구나! 무겁지 않니?” “엄청… ….” “야, 그게 한 달 동안 쓰는 너의 돈의 무게란다” 아버지가 돈의 무게를 느낀 오늘, 아들도 돈의 무게를 느낀다. ‘무겁다’란 말의 무게는 느꼈으리라

‘무겁다’라는 말의 무게를 느낀다. 매일 쏟아놓은 말들을 돼지저금통에 차곡차곡 모은다면 그 무게는 아마 동전 무게보다 더 무거우리라. ‘침묵은 금이고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을 수정해 본다. ‘좋은 말은 금(金)이고 나쁜 말은 독(毒)이다’ 라고. 금은 모을수록 득이 되고 독은 모을수록 해가 되는 것을.  한 해를 시작하며 독(毒)의 무게를 느낀다. 무섭다.

똑같은 한 모금의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 물이 까만 조약돌 위를 지나가면 검게 보이고 금빛 모래 위를 지나면 금빛으로 보인다. 네모난 용기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근 모양이 된다. 말도 물과 같다. 말의 색깔과 말의 모양은 생각의 색깔과 모양에 따라 달라진다.
‘생각(意業)이 바뀌면 말이 바뀌고, 말(口業)이 바뀌면 행동(身業)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신·구·의 삼업(三業)의 시작은 생각에 있다. 말의 무게를 느끼면서 생각의 무게를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말들을 들으며, 수많은 말들을 하며 살아간다. 좋은 말도 있고 나쁜 말도 있고 나를 화나게 만드는 말도 있고 나를 신나게 만드는 말도 있다. 한 토막의 말이 남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 말의 칼날이 나에게 향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다. 말이 상처가 된다면 그 말은 이미 말이 아니라 칼이 되고 독이 되리라. 들을 때는 이해하며 듣고, 말을 할 때는 상대의 오해가 없도록 가려서 해야겠다.

올해는 내 마음속에 돼지저금통을 하나 준비해야겠다. 내가 한해를 살면서 무심코 던진 말들을 차곡차곡 쌓아둔다면 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돼지저금통 하나로 가능은 할까?

말이라는 결과에는 생각이라는 원인이 있다. 올해는 ‘인과(因果)의 이치를 신해’ 하며 맑고 밝은 생각과 향기로운 말로 하루하루를 살아야겠다. 말이 칼날이 되지 않고 독이 되지 않도록, ‘무섭다’라는 말의 무게를 느끼면서.

김석/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