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32

편집부   
입력 : 2015-12-17  | 수정 :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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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력과 근본

그림=창원심인당 주교 도원 정사

"바다의 조개가 항상 하늘의 명월(明月)이 되기를 동경하다가 문득 그 복장(腹臟)에 진주라는 구슬을 배듯이 이상과 원력의 표준을 크게 세워야 한다."('실행론' 제2편 제8장 제6절 가)

진주를 품다

“불제자는 근본 원칙법에 어긋남이 없어야 일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 한 그루 나무를 기르는데 밑거름과 웃거름을 주면서 벌레도 잡고 떡잎도 떼고 정성스럽게 키우려고 하지만 뿌리 없이는 원만하게 키울 수 없다. 그러므로 원칙과 근본에 따르는 부처님 법을 명심하고 행해야 한다. 우리는 의식주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의식주를 완전하게 하며 그 근본이 되는 진리를 세운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진리를 세운다.”

속이 더부룩했다. 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메스꺼움이 느껴진 것도 아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아랫배가 무거운 듯 하며 더부룩한 느낌이 들었다.

효순은 더부룩한 속을 달래며 심인당을 찾았다. 희사를 하고 자리를 잡아 막 염송을 하려할 때 신호가 왔다. 아무래도 화장실에 갔다와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은자리에서 일어섰다. 쭈볏쭈볏 일어나 뒷걸음질로 심인당을 빠져나와서 막상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거북했던 속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진정되면서 이내 편안해졌다. 순간 효순은 음식물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에 휩싸이면서 걱정을 앞세웠다.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입에서는 ‘옴마니반메훔’이라는 진언이 자연스럽게 흘러 나왔다.

효순이 심인당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심인당을 찾기 전 사찰에 다닐 때도, 그 이전 영험하다는 산이며 돌이나 나무가 있는 명소를 찾아 기웃거릴 때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은 늘 시릴 정도로 허전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정성이 부족하다느니,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 그렇다느니,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소리들만 게워냈다.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으니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는 말은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건성건성 나돌아다녔던 것은 아니었기에 언제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가 끝내는 얄밉기까지 했다. 숙제를 못한 채 잠깐 졸았다고 느끼는 새 깊은 잠에 빠져들어 한밤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마주한 얄궂은 기분도 이 보다는 나았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좋은 것을 혼자 다 가지려고, 자신만을 위해서 한 일이 아니라 남편을 위하고, 자식을 위하고, 가족을 위하는 일이었기에 마음 따로, 몸 따로 실속 없이 바쁘기만 했다.

‘참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진리’라는 말을 듣는 순간 효순은 탄복했다. 감동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말 한 마디에 효순은 두 말 않고 물어 물어서 심인당이라는 곳을 찾았다. 영험하다는 산이나 돌, 나무가 있는 이름난 곳을 찾아가 기도할 때만 해도 갖은 핀잔만 늘어놓던 남편의 태도가 심인당에 발길 한 첫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인당이 뭐 하는 곳이냐고 물으면 명쾌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미처 제대로 말조차 꺼내지 않았음에도 남편은 짐짓 모른 체를 하는 사람 마냥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통한다는 의미가 이런 것인가, 하는 달뜬 생각에 두 번째의 감동을 맛보았다.

처녀시절에 다녔던 직장 상사가 한 선배의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들려주었던 주례사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말이 됐다.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라고 한 그 말이 늘 귀에 붙어 있었던 터라 ‘참으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진리’라는 이 말이야말로 종교행위의 정곡을 찌르는 핵심이라는데 깊이 공감하면서 가슴이 확 트이는 기분까지 들었다. 왜, 그동안 몰랐을까, 하는 뒤쳐진 듯한 상실감에 잠시 젖어들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이게 어딘데 하는 생각이 미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교리를 공부한답시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듣고 익혔던 ‘인생난득 불법난봉’(人生難得 佛法難捧)이라는 말이 생각되면서 마음을 달래는 안정제가 됐다. 그동안 주워 담아 두었던 알량한 지식일망정 허투루 버릴 것은 하나도 없는 듯 싶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속에서 확연하게 달라진 남편의 태도도 그렇거니와 효순은 변화된 자신을 알아챌 수 있었다. 누가 잘 되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빌고, 구하던 행위에서 벗어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집안에서도 큰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아들에게 걸핏하면 공부하라고 소리치고 다그치던 것을 그만두게된 이후의 일이다. 애간장을 태우며 한동안은 입이 간질거려 이내 큰 소리를 내 지르려다가도 참고 또 참아졌다. 순식간에 변한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효순은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 앉은자리를 맴돌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보고, 몸을 더듬어보기까지 했다. 외관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눈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커다란 변화가 있다는 것은 실감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쌓아만 왔던 그 동안의 행동도 당연한 듯이 되돌아 보였다. 짊어지고, 머리에 이고, 끌어안고 있는 짐이 너무 무거웠다. 순간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생로병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풍족하고도 찬란했을 왕좌를 버리고 집을 나선 것이야말로 선지식들이 ‘비워라, 내려놓아라’라고 한 말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비우고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자신에게는 너무나 많다는 것이 깨우쳐졌다. 그동안 억눌리고 짓눌리며 칠흑 같이 어두운 세상을 헤맸다고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들면서 지난 한 세월을 헛살았다는 자책감이 들기까지 했다. 

효순은 생각이 바뀌자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멍에를 벗어버린 듯 했다. 말 많던 남편도, 제 할 일을 알아서 하지 않는다고 얄밉게만 보이던 아들도 달라져 보였다. 그러니 잔소리는 당연히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생각이 바뀌면서 말이 바뀌고 행동까지 달라지게 된 것이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불교 원래 이 세간과 떨어진 교 아니므로 세간 만약 더러우면 이를 정화하는 것이 무릇 불교 본지므로 특히 우리 밀교에서 먼저 세간 정화해야 되는 것을 연설하고 이 육신의 때 없애고 청정한 몸 얻게되며 미를 전해 각 얻음이 성불이라 하느니라. 이는 결코 이 몸 밖에 부처 구함 아님이니 불이 출세하신 것도 인간제도 위함이라. 현실 떠난 다른 이상 설하시지 아니하고 세간 떠나 출세간을 설한 일이 없었으니 다만 인간 도덕생활 하게 함이 목적이라.”

누구나 꿈꾸고 동경할 수 있는 이상세계도 궁극적으로는 현실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찾으려야 찾을 수 없다는 말은 효순을 더욱 감동시켰다. 스스로 짊어진 짐의 무게가 있거늘 발 디디고 선 땅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찾아간들 그곳 역시 무거운 짐 진자에게는 또 다른 현실이 되어 결국 그가 겪을 수밖에 없는 낮선 고행처인 것을……. 지어진 짐은 스스로 벗어야 하고, 누려야할 자유는 스스로 찾아 즐겨야 할 일이기에 누가 대신해줄 수 있으랴. 누구를 위해, 누구 때문에, 하면서 쉰 소리를 한 것도 다 부질 없는 억척이었다는 생각에 효순은 헛웃음을 흘리다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는 참회의 눈물을 쏟았다. 본래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길이기에 모든 것은 스스로를 위한 삶이 아니었던가. 효순은 더 넓고 크고 둥글고 찬 새로운 삶, 진주를 품기로 했다. ‘바다의 조개가 항상 하늘의 명월(明月)이 되기를 동경하다가 문득 그 복장(腹臟)에 진주라는 구슬을 배듯이…….’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