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만다라

그리운 황악산

김남환(시조시인)   
입력 : 2003-03-18  | 수정 : 2003-03-18
+ -
황악산은 내 고향 김천을 상징하는 명산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봄가을로 소풍가서 만났던 황악산은 내 이런 꿈을 키워주던 황홀한 요람이었다. 내가 여덟 살이 되도록 아우를 보지 못하자 어머니는 황악산 직지사에 가서 생남 불공을 드리곤 했다. 어느 봄날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황악산을 오르면서 "남환아, 너 이 다음에 커서 저 산만큼 큰 사람이 돼야재" 하시던 그 말씀이 지금도 먼 기억 속에 가물거린다. 그런데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황악산은 내 가슴속에 들어와 푸른 희망으로 자리잡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시를 습작하게 된 것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 때문이었다. 서른 여덟 살에 요절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길이 없어 홀로 뒷산에 올라 뽑아도 뽑아도 풀잎처럼 돋아나는 슬픔을 황악산 쪽 하늘을 향해 뿌리곤 했었다. 그런가 하면 여고 시절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의 문학소녀가 있었는데 우리는 시도 쓰고 소설을 구상한답시고 30리도 넘는 황악산까지 걸어서 갔던 것이다. 봄이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황악산의 눈부신 신록에 취하기도 하고 가을이면 꽃단풍 길을 거닐었던 우리들의 여고시절이야말로 출렁이는 낭만 그 자체가 아니었던가.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5월이면 황악산에서 초등학교 동기회를 열고 있다. 시방 우리는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들이 되었지만 황악산은 한결같은 젊음으로 우리들을 맞아준다. 일년에 한 번씩 소꿉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즐거움도 크지만 그 날 그 추억의 황악산을 만난다는 가슴 벅찬 기대가 나를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게 해 준다. 어린 날 나를 황악산으로 데려가 주셨던 어머니는 이미 떠나셨지만 이렇게 봄빛이 완연해지면 가슴 밑바닥에서 샘솟는 한줄기 그리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렇다, 내 어린 날의 높고 우람한 꿈이었던 황악산은 지울 수 없는 푸르른 추억으로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