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함께 떠나는 여행

신민경 기자   
입력 : 2001-04-16  | 수정 : 2001-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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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열차 장엄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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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축열차 장엄이 한창 진행 중이던 4월 6일, 고덕차량기지 8번 도크. 개통을 목전에 둔 상태인지라 작업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있었다. 전동차 외벽에는 전통 단청문양을 길게 띠로 연결하여 다양한 불교적 이미지를 재현해 놓았고, 8칸 중 5칸(셋째∼일곱째)에는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란 주제로 불교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소리와 색으로의 공(空) △나를 찾아서 △현실의 버팀목-불교 △인연잇기 △연꽃세상 등 작품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현실의 버팀목-불교' 칸은 금강경을 점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일명 금강경 점자 칸으로 불려지는데 작가 홍현숙 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금강경 점자는 '금강경을 손으로 읽을 수 있는 최초의 시도'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쇄신하고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서이다. 정안인과 시각장애인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이다. 그들에 대한 관심과 소통으로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으로 들어오게끔 하고 싶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한다. 불교의 사회적 목적은 세상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도록 하는 데 있으니, 소수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불교, 현실적 버팀목으로써의 불교를 표현하는 데 어울리는 작품이다. 봉축열차는 작품 감상에만 그칠 수 없게 만드는 '감동'이 분명히 있다. 아무런 조건없이 10여 일을 자원봉사에 나선 불자들의 신심이 알알이 수놓아져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 금강경 점자 칸에서는 그동안 찍어뒀던 점자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다시 확인하는 교정(?)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금강경 한 글자 한 글자에 일일이 점자를 만들던 불자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봉축열차는 달릴 수 없었을지 모른다. 암사동 동명사에 다니고 있는 수월성(서순례·43) 보살은 "매일 6∼7명이 고정적으로 참여해서 꼬박 작업을 했다. 10만 개의 점자를 만드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었지만 이렇게 완성된 모습을 보니 내가 한 일이 참으로 대견스럽고 보람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이 열차를 타게 될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자비가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매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원봉사자들과 일하고 난 후 또다시 늦은 밤까지 작업을 계속하느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홍현숙 씨는 "평소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끌어안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소수자를 끌어안는 일은 불교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포교의 기본 정신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하며 금강경 점자책도 함께 세상에 내놓았다면 더 좋았을 듯하다고 아쉬워한다. 선방을 옮겨 놓은 듯한 '나를 찾아서' 칸은 손잡이 하나 하나마다 무명끈을 둘렀고, 선반 위에는 절집에서 사용하는 바루가 놓여져 있다. 또 가운데에는 선방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데 신발을 벗고 방석 위에 앉을 수도 있다. 손잡이에 일일이 무명끈을 감느라 자원봉사하는 보살님들의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혀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 기획을 맡은 풍경소리의 전법향 홍보간사는 "3월 29일부터 작업에 돌입했는데 처음에는 4∼5명이 알음알음 물어 찾아오더니만 요즘은 하루 20여 명도 넘게 찾아온다. 주로 인근 사찰의 보살님들이 많이 애써 주셨다"며 "보살님들의 개미 같은 힘이 모아져 이렇게 장엄할 수 있었다. 그 분들의 원력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했다. 금강경에 일일이 점자를 만들어 넣던 손길과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을 한 고운 마음이 함께 모아져 이제 봉축열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목련꽃 흐드러지게 피는 이 봄날에 '나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보자. 정동진행 야간열차를 타야만 제 멋인가. 복잡하고 바쁜 생활 속에서 자신을 한번쯤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고 싶다면 '혼돈과 자기성찰로부터 환희로운 연화장 세계로 나아가는' 5호선 열차를 타보기 바란다. 신민경 기자 smink@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