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북한의 현존 사찰

북한의 현존사찰 11-강원도 신계사(상)
신라에서 만든 불국토 외금강 신계사 금강산은 1,638m의 비로봉을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길게 뻗었다. 북쪽으로 옥녀봉・상등봉・온정령・오봉산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월출봉・일출봉・내무재령・차일봉・외무재령이 이어지는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 중심부에 자리한다. 외금강은 주능선이 동쪽으로 동해안의 해금강과 잇닿아 있는 지역이다. 수많은 계곡과 가파른 준봉들이 웅장하고 모양새가 기운차고 당당한 남성적인 외금강에는 만물상과 구룡연 구역이 대표적이다. 반면 부드러운 산세로 여성적인 서쪽 지역을 내금강이라 부르며 만천・만폭・백운대 구역 등이 대표적인 경승지다. 외금강 지역에는 신계사를 비롯하여 발연사・보광암・미륵암・문수암・상운암・보운암・송림사 등 여러 암자가 자리했으나 6.25 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고 신계사만이 다시 복원됐다. 신계사는 신라 때에 세워진 절이다. 그로부터 천년이 지나고, 헤어진 지 반세기 만에 남북한 불교가 합심하여 다...
2019-08-16
10.북한의 현존사찰- 강원도 묘길상
내금강 묘길상 우리나라의 마애불은 7세기 전반부터 백제에서 시작됐다. 538년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천도한 시기로, 한성백제시대의 조작품이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애불(磨崖佛)은 자연의 암벽・구릉・동굴 벽에 새긴 불상인데 태안・서산마애불, 경주 남산 마애불, 고창 선운사 마애불 등이 유명하다. 북한지역의 마애불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남측에 공개된 북측의 마애불은 오관산 영통사 뒤편 바위에 새겨진 것과 신계사 뒤편의 마애불 정도이다. 그러나 내금강 깊은 골짜기의 묘길상은 상황이 좀 다르다. 유명할 뿐 아니라 이름표를 달고, 불상의 모양은 시기와 사람마다 다르게 평했다. 내금강 유람을 자랑하듯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단원 김홍도의 묘길상 그림에는 넙죽 굽힌 자세로 참배하는 두 명의 고깔 쓴 순례승이 등장하지만 다소 우스꽝스러울 정도이다. 원래 묘길상은 고려의 왕사 나옹선사가 새긴 원불(願佛)인데, ...
2019-07-26
9. 북한의 현존사찰- 강원도 불지암
내금강 불지암 20세기에 영화나 팝송의 소재화된 엘도라도(Eldorado)는 ‘황금이 넘쳐난다’는 황금의 고장에 대한 전설이다. 16세기경 스페인 사람들이 남미 아마존 강가에 있다고 상상한 황금의 나라, 엘도라도는 피로 물든 전설의 땅으로 곤살로 피사로의 엘도라도 원정대가 대표적이다. 스페인어로 ‘금가루를 칠한 사람'이라는 뜻인데, 온몸에 황금가루를 칠한 남아메리카 인디오의 전설이다. 신라는 예로부터 왕관, 그릇 등이 유명해서 황금의 나라로 알려졌다. 7~8세기경의 통일신라 시대에 황금 불상이 조성되어 국토 여러 곳에 봉안됐다. 금강산 유점사의 53 불상이 대표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약탈의 표적이었다. 프랑스인 에밀 부르다레가 방문하고 1904년에 쓴《한국에서(En Corée)》에서 “유점사의 53불은 9마리용 목조상과 같이 불단에 안치됐다”고 특이하게 기록했을 정도다. 천 년 전, 강원도 내금강 화개동 불지골에는 “옛날 수행...
2019-07-08
8.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마하연(下)
마하연과 유점사 해방 이전까지 금강산은 동해 바닷길 이외에 ‘단발령’을 넘어야 갈 수 있었다. 험한 고개를 넘어 내금강으로 들어가면 장안사에 도착했다. 높이 834m의 산 고개는 강원도 창도군 창도읍과 금강군 내강리 사이에 있다. 일설에는 신라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이 고개에서 삭발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고, 또 이 고개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보면 아름다움에 반하여 머리카락을 자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해서 단발령이라 했다.연암 박지원의《열하일기》에는 단발령에서 바라본 금강산에 대해 “내가 일찍이 신원발과 함께 단발령에 올라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마침 가을 하늘이 짙푸르고 넘어가는 해가 비꼈는데, 산이 하늘 높이 솟아 아름다운 빛과 윤기 있는 맵시가 비할 데 없어서 아닌 게 아니라 과연 금강산이 다르구나 하고 감탄했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고 통일이 된다면, 두 발로 걷는 힘든 단발령 고갯길이 아니라 1931년 7월 1일 장안사 근처의 내금강역까지 개통한 전기철...
2019-06-24
7.북한의 현존사찰- 강원도 마하연 (上)
내금강 마하연(摩訶衍) 마하연은 내금강 최고의 명당으로 꼽혔다. 조선 후기의 김창협은《동유기》에 “등 뒤에는 중향성이 있어 병풍을 친듯하며 앞에는 혈망봉, 담무갈 등 여러 봉우리가 빙 둘려 역시 병풍을 친듯하니 진실로 명가람이다.”, 이상수는《동행산수기》에서 “마하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 다만 문간이었을 뿐. 지금에 처음으로 본당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옛 문인들은 마하연을 두고 ‘당오(堂奧)에 들었다’고까지 했다. 정조대왕과 다산이 육유의 시를 배워 두보에 이르는 것이나 추사와 자하 등이 소동파를 통해 두보에 이르는 것은 각기 경로가 달라도 결국 두보의 시학 경지에 이르는 것과 같다. 불문에서 보면, 당나라 규봉종밀 선사의 사선입교(捨禪入敎)과 청허 휴정대사의 사교입선(捨敎入禪)이 모두 선교쌍수(禪敎雙修)와 같다. 마하연은 한양도성의 경복궁과 같이 내금강 선의 궁궐(禪宮)이었다. 그저 중앙, 중심부를 넘어선 ‘부처를 기르는 곳’인 선불장...
2019-06-04
6.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보덕암(下)
법기봉 보덕암 “아. 나는 그 아름다움, 그 장관을 붓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고 19세기 말,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금강산을 두고 한 말이다. 1894년 이후 4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그녀는 서양 여성으로 금강산을 최초로 찾았다. 1898년 영국에서 출간된《금강산으로의 여정》에는 “저 여름의 맛깔스러운 푸르름 속으로. 이런 묘사는 한갓 카달로그일 뿐이다.” 지구촌에 처음으로 ‘다이아몬드 마운틴(Mountain)’이라 알렸다. 그녀는 “확실히 17.7km에 달하는 이 만폭동 계곡의 이름다움은 이 세상 어디에도 비길 데가 없을 것이다. 장엄한 절벽들, 솟아오른 산악과 산림 그리고 희미하게 빛나는 잿빛 산정, 층층이 뿌리 내린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푸른 하늘에 맞닿아 한 줄기 실낱처럼 좁혀들었다. 그 둘레에 맑은 물이 맴돌듯 흐르다가 미끄러져 내려가 분홍빛 화강암이 잠긴 분홍빛 여울로 모여들어 에메랄드의 푸른빛보다 더 찬...
2019-05-14
5.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보덕암(上)]
내금강 보덕암(普德庵) 내금강 보덕암은 판타스틱이다. 만약 이 절을 보게 된다면, “와 ~”하고 탄복하고 숨이 멎을 따름이다. 그냥 사진이나 그림만 보게 되더라도 꼭 가보고 싶다고 느낄 정도다. 신비와 아름다움의 극치, 그 이상이다. 사계절로 바뀌는 절의 풍경은 눈앞이 아찔할 정도다. 그 무뚝뚝한 고려와 조선의 선비들조차 ‘아주 아름답다’고 했다. 보덕암은 첩첩이 겹친 골짜기와 뭇 봉우리(萬壑千峰)가 어우러진 만폭동계곡의 가장 도드라진 곳에 있어 마치《신세계교향곡》을 연주하는 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수만 년 동안 계곡이 만들어 내는 수천만 곡의 교향악을 감상하려면 어쩔 수 없이 다리품을 팔아야 한다. 요즈음 산행과 달리 1894년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이 길로는 네발짐승들이 다닐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방문기에는 “장안사에서 유점사로 가는 17.7km가량의 만폭동 길은 두 줄기 거대한 계곡의 울퉁불퉁한 돌바닥...
2019-04-22
4.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정양사 (下)
방광대 정양사 금강산의 참모습을 보려면 정양사로 가야 한다. 누구나 평생 소원했던 ‘금강산 구경’은 정양사에 갈 때만이 완성된다. 정양사에서는 일만이천 봉우리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 정양사는 고대 문화왕국 백제에 의해 창건된 절이다. 백제문화의 터전 위에 신라 원효대사의 민중사상이 뿌리내린 곳이다. 금강산의 숱한 신화와 전설이 처음 발화된 곳이다. 도솔천 환생 기도장을 열었던 곳, 팔만구암자 민요가락의 전설이 잉태된 곳이다. 불교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고려 왕건의 첫 기도처(願堂)였다. 조선시대 세조의 행차로부터 정양사는 새로운 부흥기를 맞았다. 금강산은 민족의 성지로 인식되었다. 근대 시기에 육당 최남선은 “조선의 국토는 산하 그대로 조선의 역사며 철학이며 시며 정신이다”고 했다. 그의《금강예찬》서문에는 “금강산은 어떠한 의미로든지 조선의 제일이요. 겸하여 세계의 제일이다. 조선뿐 아니라 세계를 통틀어 다시는 짝이 없고,...
2019-04-08
3.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정양사(上)
내금강 정양사(正陽寺) 정양사는 최고의 ‘금강산 관측 명당’이다. 삼한시대로부터 고려와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인정한 조망대다. 사방팔방으로 열려 있어 뭇 준봉들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 금강산을 다 품은 절로, 내금강의 가장 중심자리에 있다. 13세기 후반, 고려의 묵헌 민지는 <금강산> 시에서 “하늘과 땅을 버티고 높다랗게 솟은 네 모습, 크기로나 높이로나 누가 감히 따르랴”고 했다. 14세기 중엽의 가정 이곡은 <정양암에 올라> 시에서 “기기하고 묘묘해라 금강산의 그 모습, 시인이며 화공들 시름도 많았구나”며 시로 표현할 수 없고 그림으로 다 그릴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장쾌하다고 했다. 조선 후기의 조지겸은 <정양사> 시에서 “옥으로 만든 연꽃인가 높이 솟은 비로봉아. 만 이천 봉 가운데서 네 모습 으뜸일세. 정양사 바깥경치 그 중에도 장관이다.” 17세기 후반의 오도일은 <헐성루> 시에서 “대를 묶어 세웠...
2019-03-25
2.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표훈사(하)
청학대 표훈사금강산 관광의 백미는 만물상과 만폭동이다. 곳곳에 신화와 전설, 역사적인 펙트가 가득한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만폭동에 사찰들이 즐비하고 선사들과 얽힌 이야기도 무궁무진하다. 금강산은 만물상이 금강의 아버지라면, 만폭동은 금강 산사(山寺)의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금강산 기행의 이면에는 뼈아픈 상흔의 역사가 있다. 고려와 조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고급관료나 고을 현감들의 구경이 잦았다. 더욱이 중국 사신들까지 여기에 동참했으니 더 분잡해졌다. 고려의 최해는 “산 주변의 백성은 그들을 접대하느라 시달리고 화가 치밀어 ‘이놈의 산이 어찌하여 다른 고을에 있지 않은가?’고 했다.” 양반들의 유람, 유희에 산내 스님들이 몸서리를 쳤다. 어설픈 짚신에다 산행의 힘든 가마꾼에다 풍광 좋은 곳에서 펼쳐진 유희장의 허드렛일을 스님들이 도맡았다. 이것뿐이랴. 송이버섯이며 도토리 공납은 스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오죽했으면 서산과 사명대사는 사후에라도 횡포와 수탈...
2019-03-11
1. 북한의 현존사찰-강원도 표훈사(상)
내금강 표훈사표훈사는 ‘집’이다. 금강산의 주인 법기(담무갈)보살이 살던 절(伽)이다. 금강 만다라의 세계가 펼쳐진 사찰이다. 금강산 4대 고찰로 전쟁의 화마를 피했다. 표훈사는 내 금강산을 찾는 이들에게 첫 관문이다. 주인의 허락은 물론 인사드리는 것은 사람됨의 도리이다.흔히 금강산이라면 내금강을 가리킨다. 38선 북쪽의 금강산은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뉜다. 신라시대부터 불러온 상악은《삼국사기》에 처음 기록됐다. 문헌에 나오는 별칭은 모두 12가지다. 봉래·풍악·선산·설봉·해악·개골과 불교의 이름인 기달·중향성·지달·열반·금강 등이다. 단풍이 아름다운 산으로 풍악, 산봉우리가 모두 뼈를 드러낸 것 같다며 개골이라는 두 명칭이 13세기까지 주로 사용됐다. 산세를 형상화한 명칭 이외에 금강은 14세기 후반부터 불리게 되었다. 봉래는 16세기 후반 양사언에 의해 더 유명해졌다.사계절에 따라 각기 다른 4색의 이름은 1530년《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유래됐다. “산 이름...
201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