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한국의 육자진언

청자상감편
이 청자편은 제작 기술이 상당히 우수한 고급 청자로 상감청자의 전성기였던 12-13세기에 강진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청자의 안쪽 면에 원형문을 새긴 후, 그 안에 범어로 진언을 새겼는데, 한가운데 범어를 중심으로 6자를 자륜형으로 하여 원형으로 배치하였다. 진언은 정법계진언과 육자진언을 새겨 넣었다. 현재 이 청자상감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1-06-22
대전 월드컵경기장 부지 고분 출토 다라니
대전 월드컵경기장 부지 무연고묘에서는 목판으로 인쇄된 다라니가 출토되었다. 다라니는 시신을 감싸고 있었던 저고리 안에서 출토되었다. 다라니는 크게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상단에는 육자진언과 함께 호부가 좌우로 나란히 새겨졌으며, 하단에는 만다라와 불정심인 형상의 도상이 상하로 배치되었다. 호부 아래에는 부처를 보고 정각을 이루거나 죄를 멸하며, 지옥이 아닌 불국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염원 등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도들을 중심으로 불교적인 세계관과 사후관에 기초하여 죽은 사람의 무덤 안에 다라니를 매장하는 풍습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조선 세종대와 세조대를 전후한 15세기 불전간행사업이 활발해지고 밀교 관련 경전이 보급되면서 진언 다라니에 대한 신앙이 높아지고, 그러한 것들을 일종의 부적과 같은 존재로 인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 15-16세기 대에 일시적으로 불교가 크게 발흥하면서 불교를 통한 기복신앙이 확대되었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밀교의 진언 다라니...
2021-05-25
음성 정담 부부묘 목관 출토 판본
음성 정담 부부묘의 주인공인 정담의 사망 년대와 무덤의 조성 시기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시신의 상태와 출토 복식 등으로 보아 16세기 전반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고분은 사신도 등이 새겨져 있어 도교적인 요소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적 유교사관이 널리 성행하였고, 주자가례에 의한 고분 조성이 일반화되었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도 정담 부부묘는 불교와 도교가 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사례에 해당된다. 이 고분은 시신을 안장했던 목관 안쪽 면에 다라니, 사신도, 비천상 등을 낱장으로 인쇄한 판화가 확인되었다. 이중에서 다라니(23.5×45cm)는 목관 안쪽면의 한 면마다 1장씩 인쇄한 판화를 3면에 부착하였다. 인쇄된 다라니는 오른쪽에 불정심인을 새겼으며, 가운데에는 불정심인 형상을 모방한 만다라를 배치하였고, 왼쪽 상부에는 육자진언을 새기고, 그 아래쪽에는 호부를 새겼다. 호부 아래에는 사각형으로 구획하여 ‘성정각 묘시인당 득견불’, ‘정토...
2021-04-09
순창 운림리 농소고분 출토 목관
순창 운림리 농소고분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운림리 산12-2 일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왕씨묘 또는 王 무덤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 고분은 발굴 조사 결과 사각형 묘역 시설과 지하 토광 안에 목관 및 목곽을 갖추고, 지상에 봉분을 쌓은 구조로 확인되었다. 벽감에서는 청동합을 비롯하여 숟가락과 젓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고분 주인공은 알 수 없지만 목관 표면에 범자 진언이 가득 새겨져 있다. 진언은 육자진언과 파지옥진언이 반복 표현되었는데, 두 진언이 함께 새겨진 사례는 조선시대 동종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범자체는 대부분 실담(Siddham)체를 사용했는데, 일부 랸차(Laῇ-tsha)체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목관에 진언을 새긴 것은 주인공의 사후 추복과 극락왕생을 염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21-03-23
화성 출토 양택춘 묘지
양택춘(1172~1254년)은 신라 계림출신으로 원래의 성은 김씨였는데, 나중에 대방군으로 이주하여 양씨로 성을 바꾸었다. 고려시대 최이는 강화도에 선원사를 창건하고 당대의 뛰어난 승려들로 하여금 모임을 주관하도록 했는데, 양택춘의 큰 아들로 승려였던 원오국사 천영(속명 안기)이 이를 주도하였다. 이후 양택춘은 아들의 후광으로 70세에 호부원외랑이 되었다가 벼슬에서 물러나 1254년 83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처음 김수의 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두 아들 모두 승려가 되었다. 이처럼 양택춘은 두 아들이 승려가 될 만큼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인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묘지명에도 여러 진언이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묘지명은 김구가 지었다. 진언은 묘지명 뒷면에 세로로 새겼는데, 먼저 범어로 진언을 새기고, 그 뒤에 진언명을 표기하였다. 진언은 상품상생진언-육자대명왕진언-보루각진언-결정왕생정토주 순으로 새겼다. 양택춘 묘지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21-03-08
서울 조계사 7층 사리탑
서울 조계사는 오늘날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인데, 뒤편에 1기의 사리탑이 건립되어 있다. 이 사리탑은 태국왕실에서 모시고 있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스리랑카 달마파라스님이 하사받아 호신용으로 모시고 다니다가 한국에 왔을 때 전해주어 佛舍利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0年 경호스님의 주선으로 건립되었으며, 2009년 새로운 사리탑이 건립되면서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 사리탑의 기단부 면석부에 육자진언이 새겨져 있어, 당시 육자진언 신앙이 성행하고 있었으며, 다양하게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21-02-16
고성 건봉사 치아사리탑
고성 건봉사는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 중창되면서 꾸준하게 법등을 이었다. 특히 조선후기 사명대사 등 유력한 승려들이 머물면서 불교계의 중심적인 사찰이 되었으며,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 유물들이 남아있다. 이 중에는 사명대사 유정이 1605년 일본에서 되찾아온 12과의 불사리를 봉안한 불탑이 1724년 건립되었다. 관련 석비는 1726년 6월 건립되었다. 이 사리탑의 기단부 중대석 각 면에 1자씩 범어를 양각하였는데, 뒷면 가운데에는 만자를 새기고 나머지 면에 총 7자의 범어를 새겨 넣었다. 육자진언도 간략화시켜 새긴 것으로 보인다.
2021-01-25
청주 보살사 오층석탑
청주 보살사는 백제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전하고 있는 古刹이다. 보살사 극락보전 앞에는 오층석탑이 건립되어 있다,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강희 계미’라고 새겨 조선후기인 1703년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살사 오층석탑의 1층과 2층 탑신석에 범어로 진언이 새겨져 있는데, 각 面을 사각형으로 구획한 후 그 안에 원형문을 마련하여 1자씩 음각했다. 진언은 육자진언, 법신진언, 삼밀진언 등을 새겨 넣었다.
2020-12-29
남원 실상사 회명당 대선사탑
남원 실상사는 신라시대 최초의 선문사찰로 유력한 고승들이 머물면서 선종 불교계의 중심적인 사찰이었다. 실상사는 조선시대까지 꾸준하게 법등을 이었는데,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수기의 부도들이 유존되어 있다. 이중에서 회명당대선사의 부도는 상부에 범어를 음각했는데, 정면에는 정법계진언을 새기고, 그 주위로 육자진언을 원형으로 돌려 새겨 넣었다. 부도 주인공의 극락왕생을 염원하기 위하여 육자진언을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2020-12-17
양양 낙산사 사리탑
양양 낙산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는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이후에도 낙산사는 중수와 중건을 거듭하면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유력한 고승들이 머물면서 꾸준하게 법등을 이어왔다. 조선후기에 들어와 낙산사에 건립된 공중사리탑이 건립되었는데, 이 사리탑은 관음굴 입구에 사리탑비가 세워져 있어 구체적인 내력과 건립 시기 등을 알 수 있다. 사리탑비에 의하면, 1692年 6月 10日 김득경과 김남의 시주로 조성되었으며, ‘주상전하수만세 왕비전하수제년 세자저하수천추 천하태평법륜전’이라고 하여 주상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왕실의 안녕과 나라의 태평이 이루어지고, 불법이 널리 이롭게 펼쳐지기를 염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리탑의 기단부 상대석 면석부 각 면마다 1자씩 총 8자의 범어를 음각했는데, 육자진언과 정법계진언을 함께 새겨 넣었다.
2020-11-30
영광 불갑사 회명당 처묵대사 부도
영광 불갑사의 진입로 입구에는 부도군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불갑사 진각국사 부도를 비롯하여 조선후기 건립된 수기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 이중에서 석종형 양식으로 표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인공과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는 부도가 있다. 이 부도의 주인공은 회명당 처묵대사로 불갑사에서 주석했던 승려로 파악되며, 부도는 1680년 5월에 건립되었다. 기단부는 연화대석을 마련하였으며, 그 위에 석종을 올려 마무리하였는데, 석종 상부에 크게 육자진언을 새겼다.
2020-11-12
울산 청송사지 무명 부도
울산 청송사지에는 통일신라시대 건립된 삼층석탑과 함께 조선후기에 들어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총 4기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 이중 좌측에서 2번째 부도의 석종 하부 표면에 범어로 진언 다라니가 양각되어 있다. 이 부도는 전형적인 기단부를 마련한 석종형 부도로 석종 하부를 일정한 높이로 구획한 후, 그 안에 양각된 원형문(지름 14~15cm)를 마련하여 1자씩 범어를 새겨 진언 다라니를 배치하였다. 진언 다라니는 총 16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순서에 의하여 어떤 진언 다라니를 새겼는지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지만 육자진언도 함께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020-10-27
남원 승연사 마애 육자진언
남원 승연사는 금강사라는 사명으로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어느 시기에 승연사로 이름을 바꾸어 조선시대까지 꾸준하게 법등이 유지되었던 사찰이었다. 승연사는 18세기경에 서서히 퇴락하다가 어느 시기에 폐사되었다. 현재 승연사의 서편 낮은 능선 상에 위치한 바위에는 보기 드물게 육자진언을 음각하고, 그 좌우에 보주형으로 독특한 도상을 새겼다. 보주형 도상은 불정심인으로 신앙의 대상이자 공덕과 수행의 방편이기도 했다. 육자진언은 한국불교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진언으로 조선시대 들어와 크게 신앙되었다. 이와 같이 암벽에 육자진언을 새긴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에 해당되어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2020-10-12
부산 금정사 대웅전
부산 금정사의 창건 연기는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다만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사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고찰이 있었는데, 어느 시기에 폐사된 것을 새롭게 중창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일제강점기인 1924년 옛 사지에 금정사를 새롭게 창건했다고 한다. 그리고 1969년 대웅전을 건립했다고 한다. 대웅전 내부 천정 우물반자에 육자진언이 새겨져 있다.
2020-09-22
구례 천은사 팔상전
구례 천은사는 지리산 3대 사찰 중에 하나이다. 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때 인도 출신 승려 덕운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절 앞에 있는 샘물을 마시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하여 감로사라 하였다가 나중에 천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천은사는 조선후기 들어와 대대적으로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전각들이 건립되었는데, 팔상전은 창건시기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외진주 상부에 범어 1자씩을 새겨, 건물 내외부에 육자진언을 독특하게 배치하였다.
2020-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