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진각종의 역사

진각의 세계를 열다
(2) 보통학교에 입학하다울릉도에 근대 교육기관으로서 울릉 공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자 대종사는 14세(1915)에 입학하였다. 울릉도에 근대 교육기관 설립은 1901년에 시작한다. 1901년 황성신문 2월 27일 자 잡보에 “울릉군수 배계주(裵季周) 씨가 해군인민(該郡人民)의 교육차로 학교를 설시하고 학부에 인허를 청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울릉군수 배계주가 울릉도가 울릉군으로 승격된 것을 계기로 1901년 1월 울릉도에 처음으로 근대학교를 설립하고 학부에 인허를 신청한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그 후 1908년 군수 심능익(沈能益)이 관어학교(觀於學校)를 건립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교원은 조현우(趙鉉禹)와 일본인 요시다 히츠지(吉田未藏)의 2인이고, 학생 수는 12~13명이었다. 교과목은 일어·산수·한문 등 서당식으로 수업하고, 수업 연한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정적 문제로 이듬해 1909년 휴교하였다. 관어학교가 휴교하자 관어학교를 이용하...
2020-05-12
진각의 세계를 열다
1) 탄생의 인연 계기대종사는 1902년 평범한 유교 가문의 장남으로 울릉도에서 탄생하였다. 한방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 손원섭(孫允燮·1884~1927)와 어진 성품의 어머니 김양삼(金良三·1883~1949) 사이의 2남 3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월성 손 씨 21세손이며, 선조는 경주에서 상주, 순흥(順興·안동), 영천, 군위 등을 거처 영일 계전에 정착하였다. 그 후 조부가 울릉도로 이주하였다. 근대 울릉도에 공식적으로 민간인의 거주를 허용한 것은 1883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자연발생적으로 사람들이 왕래하고 거주하여 나라에서 순찰하고 관리해 왔다. 그리고 1882년 울릉도를 주람순찰(周覽巡察)한 보고서는 함흥사람 사인(士人) 김석규(金錫奎) 등 한국인 14명, 일본인 78명의 거주를 밝혔다. 그 보고에 의해 나라에서 민간인을 모집하여 울릉도에 이주시키는 개척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고종 20(1883)년 본격적인 개...
2020-04-20
진각의 세계를 열다
1) 창교의 의미진각종은 회당대종사(이하 ‘대종사’라 칭함)가 진각을 성취하여 창교한 불교종단이다. 대종사는 불법의 심수인 밀교정신을 자내증(自內證)하고 진각을 이루었다. 나아가 그 자내증의 교설을 종지로 삼아서 교법을 창립하고 진각종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진각종은 대종사의 자증교설을 시대에 맞는 교화이념과 방편으로 펴면서 널리 전하였다.즉, 진각종은 “불법의 심수인 밀교정신을 본지로 하고 밀교의 법맥을 심인으로 전수한 대종사의 자증교설을 종지로 삼아서 교법을 세우고 종문을 열어서 시대에 맞는 교화이념과 방편을 펴는 불교종단”이다.진각종은 창교의 근본취지로서 밀교정신을 본지로 하고 있다. 대종사는 밀교의 가르침을 자내증하고 진각을 얻어서 진각종을 열었다. 그리고 진각종을 일으킨 사실을 창교라고 일컬었다. 창교라는 말은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창교에서 ‘교’가 종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또한 교법을 가리키기도 한다. 대종사가 교화를 시작할 즈음 창교의 뜻은 종교의 의미에 무게를 ...
202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