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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우렁더우렁

밀교신문   
입력 :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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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덤에서 만물상을 바라본다. 한눈에 들어온다. 언어 능력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일까. 가슴속에 뭔가 가득 차오르는데 도무지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런데 이경 이로움에 오롯이 취하지 못하는 불편한 이 마음은 무언가.

 

갑내기 모임의 일원인 그녀는 언제부턴가 사사건건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식당에 가도 음식이 짜다느니 느끼하다느니 투덜대고 나들이를 가도 좋은 풍경은 보지 않고 티를 찾았다. 친구들 얼굴 보는 게 그저 즐거워야 할 텐데 주객이 전도된 듯 만남에는 관심 없고 무엇을 먹고 어딜 가는지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정작 스스로 나서서 하지는 않으면서 막상 정해 놓고 나면 딴소리를 했다. 앞서서 준비하는 사람의 수고는 안전에도 없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도 않고 아무도 역성 들어주지 않는다며 되레 섭섭해 했다. 이십 년 가까이 쌓아 온 우정을 허물어 버리고 어느 날 스스로 모임을 떠났다

 

만물상은 크고 작은 바위들이 서로 받치고 안아주며 한 몸이 되어 무리 지어 있다. 코끼리 바위, 돌고래바위. 소곳이 기도하고 있는 듯한 기도바위 등, 어느 조각가의 솜씨가 이렇듯 뛰어날까. 외톨이로 버려진 바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까이 또는 멀찍이 물러서서 보면 저마다의 이름이 보인다. 절벽과 비탈진 곳에 힘들게 맞잡고 서서 세찬 바람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다. 모난 것도 둥근 것 사이에 끼여 원래 한 몸 이었나 착각할 정도로 아귀가 딱 맞다. 자신과 같지 않다고 내치거나 무시했다면 한갓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거친 비바람에 시달리며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묵묵히 견디어 이런 장관을 이루어낸 것이리라.

 

돌이켜 보면 핀잔만 줬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썩은 이라 치부하고 버려두었다. 치료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빼버리는 것도 두려워 스스로 빠지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앓던 이가 빠졌으니 속이 시원해야 할 텐데 찜찜하다. 주위에선 우리의 우정을 부러워했지만 실상은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말았다.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투정 뒤에 숨어 있는 속내를 들여다봤으면 좋았을걸. 처음부터 모가 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바위가 앞을 가로막아 길이라곤 없을 것 같은데 가까이 가보니 좁은 통로가 손짓했다. 바위투성이에다 가풀막진 곳에 어떻게 길을 낼 생각을 했을까. 후들거리는 다리로 외줄타기를 하듯 한 발씩 조심조심 움직였다. 발아래는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큰 바위를 안다시피 하며 돌아 바위 위를 걸었다. 만물상만 묘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구경꾼도 서커스 단원이 되어야 했다. 38년간이나 사람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다가 최근에 개방되었다. 성난 짐승의 갈기처럼 아찔하게 이어지는 바위능선 때문이었다.

 

상아덤은 기암괴석의 봉우리로 만물상 능선과 이어져 있는 전망대인 셈이다. '상아덤'이란 이름은 달에 산다는 미인 '상아嫦娥''바위 암'을 뜻하는 ''을 합친 것이다. 하늘의 여신이 사는 바위라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상아덤에는 가야산의 여신인 '정견모주正見母主'가 살고 있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 주기 위해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기도를 드리니 하늘의 신 '이비가지夷毗訶之'가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내려왔다. 천신과 산신은 부부의 연을 맺고 아들 둘을 두었다. 큰아들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마을 사람들은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정월 대보름날 목욕재계하고 마을의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며 정견모주의 제단에 제사를 지냈다.

 

전설에 취해 꿈결인 듯 바람결에 실려 오는 만물상의 소리를 듣는다.

 

'겉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토 달지 마라. 크고 모양 좋은 바위만 있었다면 이런 풍경을 어찌 만들어 냈으랴. 각양각색이 만나 서로 탓하지 않고 어우렁더우렁하며 생긴 대로 인정했으니 생각지도 못한 걸 이루지 않았느냐. 같은 것끼리만 모였다면 무슨 재미랴. 누구나 말 못할 모서리가 있으리라. 알면 사랑한다는 말도 있지 않느냐. 자연이나 사람이나 보듬어 주며 사는 게 순리 아닌가.’

 

그녀가 자꾸 눈에 밟힌다.

 

백승분/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