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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떻게 충전하나요?

밀교신문   
입력 : 202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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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성공은 국··수 성적순일 수 있어도 행복은 예체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나는 이 말을 첫 직장에서 만난 사수에게 들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할수록, 흐릿했던 그 말이 조금씩 선명하게 다가온다.

 

다행히 아직은 월요일에 눈뜨는 게 싫지 않은 직장인이지만, 가끔은 너무 많은 시간을 회사에 바치고 있다는 생각에 잠긴다. 햇살을 느낄 새 없이 어둠이 깔리고, 날씨의 변화를 모른 채 하루가 저문다. 퇴근길에 만나자는 친구의 반가운 연락에도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과 달리 물에 젖은 빨랫감 마냥 몸이 무거워 집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무늬는 있지만 색깔은 없는 일상. 햇살을 쬐며 산책하는 대신 비타민 D 섭취로 하루 영양을 보충한다. 일이 끝났다고 해서 내 하루가 끝난 게 아닌데, 어째서인지 퇴근만 하면 바로 절전모드에 돌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취미를 앗아간 회사에서 취미를 찾아보라 권한다. 코로나로 중단했던 직장 동호회를 재개했고, 빵빵한 회사지원금에 힘입어 수십 개의 동호회가 순식간에 생겼다. 골프, 암벽등반, 다이빙, 승마 등 고급 스포츠부터 전시 관람, 영화, 와인 테이스팅, 맛집 탐방 등 문화 체험이나 평소에 쉽게 접해보지 않은 분야를 배울 기회도 많았다. 패션, 부동산, 1인 가구, 반려견 등 특정 관심 주제로 만들어진 동호회도 있다.

 

선택을 미루다가 여성 풋살 동호회에 가입했다. 놀라움과 의아함을 보인 가족들은 반대부터 했다. “이제 다치면 뼈도 잘 안 붙어”, “차라리 발레는 어때?’’ 높은 부상 위험과 덜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처음엔 말렸지만, 이젠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유튜브에 올라온 수업 경기 영상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같이 볼 정도로 온 가족의 관심과 응원을 받고 있다.

 

굴러가는 공을 차면서 달리는 건 여전히 어렵고, 시야가 좁아 상대 팀에 패스하기 일쑤지만 회사 사람과 팀을 이루고 점수를 매기는 시합은 짜릿한 성취감을 준다. 어린아이처럼 땀 흘리며 달리고 환호성을 지르며 하이 파이브를 하고 몸싸움하다 보면 업무로 경직됐던 정신이 말랑말랑해지고 표정이 다양해진다.

 

매서운 겨울바람을 뚫고 공만 쫓아 달리다 보면 온몸이 뜨겁고 숨이 차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데 이상하게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힘이 생기는 기분이다. 골대에 골을 넣는 단순한 목표가 하나 더 생겼을 뿐인데 세상이 재밌어졌다. 걷는 것도 뛰는 것조차 즐겁다. 회사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다음엔 어떤 골 세레머니를 할지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충전한다.

 

양유진/네이버 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