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75-세속 일을 내려놓다

밀교신문   
입력 :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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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들려주는 진정한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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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 부처님께서 조용한 숲에 머물고 계실 때의 일입니다. 그곳으로 초로의 신사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당시 부유한 사람들만이 들고 다녔던 양산을 펼쳐 들었고 아주 단정한 옷차림에 고급 신발까지 멋지게 갖춰 신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포탈리야입니다. 그 시간에 한가하게 숲을 거닌다는 것은 그가 세속 사람들의 분주한 일상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지요.

 

포탈리야 장자와 부처님은 정중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부처님은 가까운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자, 장자여. 이곳에 앉으시지요.”

 

그런데 포탈리야 장자의 낯빛이 순간 어두워졌습니다. 

 

‘아니, 지금 나를 가리켜서 장자라고 불렀단 말이지.’

 

장자라는 말은 가정을 가진 남자라는 뜻이고, 이 말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노동을 해야 하고 돈을 벌어들여야 하며 온갖 세속 잡일에 온정신을 쏟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요. 여전히 세속 일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는 ‘범부중생’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출가한 스님도 아닌데 포탈리야 장자는 왜 ‘장자’라는 호칭에 기분이 언짢아졌을까요? 그럴 만도 합니다. 그는 현재 자신의 모든 재산과 일을 자식에게 물려줬고 더 이상 세속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며 지내던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을 몰라주고 ‘장자여!’라고 자신을 부르니 마음이 상할 만도 합니다. 그가 아무 대답도 없자 부처님은 다시 말했습니다.

 

“자, 장자여. 이곳에 앉으시지요.”

 

그의 낯빛은 더욱 어두워졌습니다. 부처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상대방의 마음상태를 파악하고도 남을 텐데 지금 부처님은 포탈리야 장자가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가 뿌루퉁한 표정인 채로 그냥 서 있자 부처님은 다시 똑같은 말로 그에게 자리를 권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부처님에게 투덜거리며 말했습니다.

 

“부처님, 지금 저를 장자라고 불렀습니까? 저를 장자라고 부르는 건 타당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대는 지금 장자들의 차림새를 하고 있고, 장자들이 지니는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 눈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온갖 세간의 일을 내려놓았습니다.”

 

부처님이 되물었습니다.

 

“세간의 모든 일을 내려놓았다고요? 대체 무엇을 어떻게 내려놓았다는 말인지 자세하게 들려주시지요.”

 

포탈리야 장자는 대답했습니다.

 

“나는 모든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재물과 곡물, 금은과 같은 보물들을 다 물려주었지요. 그리고 자식들에게 그 어떤 충고나 훈계도 하지 않습니다. 물려주었으니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요. 다 내려놓은 사람이 무슨 미련과 애착이 남아서 감 놔라 배 놔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내 자신의 소유물도 대폭 줄였습니다. 최소한의 옷을 지니고 살고 있고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적은 음식으로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는 생업을 중단했고, 세속 일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장자의 말을 들어보면 승복만 입지 않았을 뿐 세속의 모든 일을 내려놓은 무집착과 무소유의 수행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그대는 그와 같은 일을 두고서 세상일을 내려놓았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세상일을 내려놓았다’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그야말로 ‘진짜 내려놓음’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은 그것은 먼저, 다음의 여덟 가지 일들을 완전히 버리고 떠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살아 있는 생명을 해치는 행위를 버리고, 자기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갖는 행위를 버리며, 거짓말을 버리고, 다른 이를 험담하고 이간질하는 행위를 버리며, 욕심을 버리고, 비난을 버리고, (분노에 찬) 번민을 버리고, 교만을 버려야 진짜 내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항목이 교만을 버리는 일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세속 일을 다 버리고 떠났다’며 교만에 차 있는 포탈리야 장자를 슬그머니 빗대어 하는 말 같아서 말이지요. 아무튼, 이 여덟 가지 항목은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악업을 멈추라는 내용과 통합니다. 진정한 내려놓음이란 ‘악업을 버리는 일’이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끝없이 나를 유혹하는 세상의 온갖 경계에 대해서 그 마음을 잘 제어하여 탐욕에 이끌리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행복과 평온함을 얻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쉬지 않고 세상 곳곳을 헤매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행복과 평화는 세상의 잡다한 일에서 절대로 찾을 수 없으니, 세속의 온갖 일과 사물에 대해 갈구하는 행위를 그만 멈추고 조용히 참선에 들어서라고 조언합니다. 참선을 통해서 얻는 행복과 평화만이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참선이 목적이 아니라, 참선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부처님은 당부합니다.(<맛지마 니까야> 포탈리야 경)

 

포탈리야 장자처럼 세속의 직업과 재물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은퇴하는 것도 참으로 장한 ‘내려놓음’입니다. 평생을 직장에 묶여 치열하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회에 보시를 해온 시간들은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너무 치열하게 산 나머지 은퇴한 뒤에는 그런 책임과 의무를 다 내려놓고 홀가분하고 여유자적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의 삶이 자유롭고 평화롭게만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허무함과 분노, 실망, 좌절, 외로움 등등의 감정에 휩쓸리는 일도 많습니다. 다 내려놓았는데 왜 마음은 행복하고 편안해지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건 온전히 세 번째까지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직장과 재산과 세속의 명예를 내려놓음이 첫 번째 내려놓음이라면, 여덟 가지 악업을 내려놓는 일이 두 번째 내려놓음이요, 바깥세상을 끝없이 갈구하는 욕망을 내려놓는 일이 세 번째 내려놓음이지요. 그러려면 참선수행을 닦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종교적 차원의 내려놓음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언제든 그 마음은 번뇌와 집착에 물들 것이고, 마음이 세상일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진정한 내려놓음, 진정한 은퇴가 아니라는 것이 부처님 생각입니다. 포탈리야 장자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진정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 홀가분한 자유인이 되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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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