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들여다보는 경전 67-자리다툼을 벌리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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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보다 마음 빼앗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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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85세 어머니가 뇌경색을 일으켰는데 아주 가벼운 증세였고, 제때 발견해서 응급실로 모셨으니까요. 약물치료와 재활치료로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 얼마나 반갑고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이후 재활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운동이며 마사지, 전기자극치료와 함께 손으로 하는 작업치료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작업치료를 받으려고 치료실로 들어가서 지정된 자리에 어머니 휠체어를 밀어 넣고서 고정시키는 순간 “여긴 우리 자리예요. 비켜요.”라며 누군가가 휠체어를 들이밀었습니다. 간병인 한 사람이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를 그 자리에 앉히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전에도 이 자리에 앉아서 치료를 받았고, 일정표에도 어머니의 전용좌석으로 명기되어 있었지요. 나는 우리 일정표를 보여주며 우리 자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방 간병인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비키라며 소리쳤습니다. 

 

“아녜요. 여긴 원래 우리 자리예요.”

 

막무가내로 내 어머니 휠체어를 자기 환자 휠체어로 자꾸 밀어대니 어머니도 상대 환자도 당황했습니다. 치료실에 있던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고 창피하기도 해서 어머니 휠체어를 빼려 했습니다. 하지만 상대 간병인 태도가 못마땅해서 그렇게도 못하겠더군요. 

 

“우리 자리였어요. 그러니 기다려보세요.”

 

나도 강경하게 말하며 버텼고 치료사들이 달려와서 자리 정돈을 해주어서 일단락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복도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데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습니다. 누구나 이용하는 자리인데 ‘원래 우리 자리’가 어디 있으며, 병원 측의 실수였으니 조용히 알아봐도 될 일인데 그렇게까지 무자비하게 환자의 휠체어를 부딪쳐가며 비키라고 할 건 뭔가 싶었지요. 저도 나도 환자를 돌보는 입장인데….

 

조용한 복도에서 화를 삭이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재활치료실 그 자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안겨주는 자리라고 ‘처음부터 우리 것’이라며 비키라고 소리치고, 나는 또 빼앗기지도 밀리지도 않겠다며 얼굴이 벌개져서 버텼던 것일까요? 딱 중생의 모습, 중생의 전형적인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산다는 게 어찌 보면 내 것을 찾아 움켜쥐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번 움켜쥐면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게 산목숨들의 모습이란 것에도 생각이 미쳤습니다. 아무도 앉고 싶지 않을 재활치료실의 자리이지만, 환자들에게는 그 어느 호화로운 왕좌보다도 더 절실한 자리이니 남에게 빼앗겨서는 안 될 터였습니다. 게다가 간병인은 자기가 돌보는 환자가 남에게 치료 자리를 빼앗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테니 그도 제 노릇에 충실했던 것이지요. 세상에나…. 자리 빼앗고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일이 저 높은 권력의 정점에서도, 그리고 재활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자리에서 내려온다, 자리를 내준다,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세상에서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그 자리가 자신의 전부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게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주 지위가 높은 바라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소나단다. 소나단다는 가장 높은 신분인데다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한 집안에 인품 또한 매우 훌륭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마지않았습니다. 게다가 나이까지 먹은 터여서 사람들의 공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지요. 가문도, 학벌도, 재산도, 인품도, 나이도 그리고 생김새도 뛰어났다고 경전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나단다 바라문이 자기 마을에 부처님이 와서 머문다는 소문을 듣더니 몸소 그곳으로 나아가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말렸습니다. ‘까까머리에 보잘 것 없는 떠돌이 유행자인 데다 나이도 한참 아래요 바라문 집안도 아닌 탁발승인 저 고타마가 소나단다님을 뵈러 먼저 와야 하는 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소문을 통해서 부처님의 인품과 경지를 파악하고 있었던 터라 그는 강행했고 그러자 호기심이 인 사람들도 덩달아 따라 나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부처님께 나아가는 소나단다는 뿌듯한 마음 한 켠에 은근히 두려움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수행자 고타마에게 자신이 질문을 했을 때 수행자 고타마가 ‘그런 식으로 질문하지 말고 이렇게 물어야 한다’라고 지적하면 어떻게 하지? 만일 수행자 고타마가 질문해서 내가 대답했을 때 ‘그렇게 대답하지 말고 이렇게 대답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또 어떻게 하지?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호기 넘치게 나섰지만 행여 제대로 질문도 대답도 하지 못하면 가문의 명예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요, 그렇다면 명예로 먹고 살아왔던 자신의 경제적 기반도 무너질 테지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렇다고 지금 발길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소나단다는 이런 바람까지 품게 됐습니다.

 

‘아, 제발 수행자 고타마가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 관해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그가 자신 있는 분야는 자신의 계급이 믿고 있던 신 브라흐마와, 그 신을 찬양하는 성전인 베다와 관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브라흐마 신의 창조를 믿지 않는 부처님이 과연 그에게 그런 걸 물어볼까요? 

 

한편, 품위와 명예를 지켜야 하는 늙은 사제가 떨리는 속내를 감추고서 긴장으로 굳어버린 얼굴을 한 채 수많은 대중을 거느리며 다가오자 부처님은 대번에 그의 상태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소나단다 바라문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에게 질문을 꺼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부처님은 소나단다 바라문이 숲으로 오는 내내 바라고 바랐던 바로 그 주제를 꺼내든 것입니다. 

 

“소나단다 바라문이여, 당신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성전에서 …”

 

소나단다의 마음이 한순간에 열렸습니다. 평생 읽고 외워온 내용이기에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고, 나름대로 깊이 사색을 해 왔기 때문에 소나단다의 대답은 솔직했습니다. 앵무새처럼 ‘우리 성전인 베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라며 되뇌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고 해석한 자신의 견해를 부처님에게 대답했지요. 

 

스스로 가장 자신 있다고 여기는 분야로 대화를 시작하자 소나단다 바라문은 이번에는 수행자 고타마의 견해가 궁금해졌고,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부처님 법문에 귀를 기울이게 됐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이 끝나자 소나단다 바라문은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는 이미 부처님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두려운 마음을 알아차리고 그의 체면을 존중하여 말을 건네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부처님에게 귀의한 뒤 다음날 아침공양에 초대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소나단다의 집으로 가셔서 공양을 하셨는데 그 자리에서 소나단다는 뜻밖에 이런 청을 하게 됩니다.

 

“존자 고타마시여, 제가 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이신 고타마에게 인사를 드리면 대중은 저를 경멸할 것입니다. 대중이 비난하면 명성이 떨어집니다. 명성이 떨어지면 재산도 줄어듭니다. 우리 재산은 실로 명성에 의해서 얻어집니다. 그래서 세존이신 고타마시여,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제가 합장하면 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린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제가 터번을 벗으면 제가 머리를 조아려 인사를 드린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 수레에 타고 있으면서 몰이막대를 들어 올리면 제가 수레에서 내려와 인사를 드린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 수레에 타고 있으면서 제가 양산을 벗으면 제가 머리를 조아려 세존이신 고타마께 인사를 드린 것으로 여겨 주십시오.”(전재성 역주, <디가 니까야> ‘소나단다경’)

 

부처님은 묵묵히 그의 청을 받아들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부처님 앞에서도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경우 그 누구도 명예를 다치지 않고, 비난과 조롱의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세워주면서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세상의 꽉 짜인 질서에서 한 걸음 물러선 구도자들이 볼 때엔 참으로 부질없는 행동으로 비춰지겠지만 산다는 것이 그런 것 아닐까요? 자리를 빼앗기면 더 이상 사는 게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세속 사람들의 자리다툼을 함부로 비웃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속의 이런 모습에 ‘난 아니야’라며 독야청청, 독불장군처럼 굴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귀다툼에 휘말려 덩달아 악을 쓸 것도 아닙니다. 세상이 그런 것이니 때로는 맞춰주면서도 내 마음에 분노와 짜증만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얻으면 되는 것이지 굳이 상대방의 명예를 빼앗고 굴종을 얻어내서 무얼 하겠습니까? 재활요양병원에서 휠체어로 자리다툼을 벌이다 문득 부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상상하면서 느낀 조그마한 세상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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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마옥경

 

이미령/불교방송 FM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