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심성 찾는 종교

밀교신문   
입력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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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을 깨쳐 경(經)과 스승의 말을 믿어 선한 것은 지혜로써 억지로라도 짓고 악은 버려야만 모든 복이 솟아난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좋은 의사와 약이 많지만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명(命)을 이어줄 수는 없다. 다만 잠깐 동안의 고통을 진정시킬 뿐이다. 부귀를 누리기 위하여 종교를 믿는다고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남의 집 물건을 훔쳐 와도 부자가 되지 않는다. 전생부터 누겁(累劫)으로 불법을 닦고 많은 복을 지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실행론 제4편 제1장 제6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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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찾아서…
 
하루 종일 헤맸다. 길이 아닌 길, 처음부터 없던 길을 찾아 나서는 마음으로 넉넉하게 돌아다녔다고 해야 맞을 일이다. 길이 아닌 길이었기에 아예 길을 만들면서 좇아가는 걸음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정처 없이 떠돌며 하릴없이 방황하고 싶은 생각도 조금은 곁들여 있었다. 딱히 특별한 목적을 둔 것이 아니기도 했기에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허투루, 시간만 허비하는 꼬락서니라고 비난 받아야만 처사는 아닐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을 감행한 본인으로서는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렇다.
 
상훈은 평생 동안 걷고 또 걸을 일을 하루에 다 해치울 것처럼 종일 걸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해 못할 행동이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고개까지 떨구고 터덜터덜 걷는 품새로만 보아서는 영락없이 사연 있는 사람이었다. 실연을 당했다거나, 사정기관의 소환을 앞두고 있는 극도로 불안한 상황이거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한계상황에 다다라 말도 못하고 눈만 끔뻑거리며 닥쳐올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량한 사연 말이다. 발로 땅바닥을 툭툭 걷어차면서 걷는 모양새로만 봐서는 부모에게 혼나고 투정하는 아이 같기도 했다. 걷다가 넘어질 듯 몸이 기우뚱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용케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초점 없는 흐리멍덩한 눈을 가진, 옳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만 짐작케 할 뿐이다. 상훈 스스로도 살아가는 일이 오뚝이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 순간이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건너뛰어서 두 끼를 굶은 탓에 배에서는 실 새 없이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다. 빈 수레가 요란스럽다고, 빈 뱃속에서도 연신 메마르고 건조한 소음이 만들어졌다. 뱃속에서 들리는 소리가 심상찮은 것은 언제까지 배를 채워주지 않을지 지켜보겠다는 속물(?)들이 다투며 내지르는 엄포처럼 들리기도 했다. 단말마처럼 질러대는 비명이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얼마든지 참고 견딜만하다는 고집이 발동하기도 했다. 말도 못한 채 끌려 다니는 지친 다리가 휘청거리고, 짓눌린 발가락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비하면 뱃속의 아우성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자신만만한 배짱도 생겨났다. 시간이 갈수록 맷집이 살아난 모양이었다.
자동차로 달리면 삼십여 분도 채 걸리지 않을 길을 걷는 동안 저질체력은 쉬 한계를 드러냈다. 체력 탓인지, 빈 뱃속의 요동 탓인지는 알 수 없어도, 어질어질한 머릿속을 달래고 지친 다리를 쉴 겸 해서 작은 몸 하나 의탁할 곳을 찾았으나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집단을 이루고 사는 마을은커녕 외딴 집 한 채도 보이지 않을 성 싶었다. 구불구불한 길모퉁이를 한참이나 돌고 돌았다. 이러다가 막다른 길이면 되돌아가야 하는 큰일을 마주할까 싶은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며 새로운 모퉁이 하나를 막 돌아 나섰을 때 생각지도 못한 동네 하나가 멀찌감치 보였다. 반가운 마음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세상은 넓고 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말이 거짓부렁 아닌, 너무나도 생생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먼저 들렸다. 동네어귀에 다다랐을 때부터 울려나오기 시작한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보다 더 커지더니 이내 소란에 가까울 정도로 커졌다. 소리인지, 소음인지 모를 것을 좇아서 동네 한가운데로 들어가니 공터인 듯해 보이는 곳에 한 떼의 무리들이 둘러서서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소란스러움 속에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한 눈에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야 없었지만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웃고 떠들고 노는 가운데 얼마나 신이 났던지 누가 그들 곁으로 다가서는 것조차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황홀한 축제에 빠져 정신 줄을 놓고 흐느적거리는 무아지경의 군상들처럼 보였다.
 
상훈은 처음 한동안 주변을 빙빙 돌면서 관찰만 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같이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내 살짝 보인, 벌어진 틈을 헤집고 끼어들려고 하자 여지없이 내쳐졌다. 술래라도 되는 이가 주변을 눈여겨 살피다가 끼어들려고 하는 이가 있으면 재빨리 신호를 보내서 인간 띠를 만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 순간에 틈을 좁혔다. 끼어들기는 고사하고 바람 한 줄기 통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막아섰다. 그렇다고 스크럼을 짠 것처럼 손을 맞잡고 하는 놀이도 아니었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앞뒤 사람의 어깨를 번갈아가면서 부여잡았다가,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바람개비처럼 돌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놀이였다. 상훈은 무리 속으로 끼어들려고 몇 번을 시도해보았지만 그 때마다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전장에서 공격을 하다가 순식간에 수비를 위한 자세로 몸을 낮춰 누구도 뚫을 수 없을 막강한 진영을 갖추는 놀이처럼 정교해 보이기까지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성곽을 이루고 있는 단단한 돌덩어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상훈은 알 수 없는 그 놀이에 더 이상은 끼어들 수 없다는 판단에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는 이내 싫증을 내면서 미련 없이 돌아섰다. 그들이 사전에 같이 놀기로 약속을 했던 사이도 아니었지만 섭섭한 마음이 들면서 울컥할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친구도 아니고 또래도 아닌 그들이 끼워주지도 않고 같이 놀아주지 않았다고 서러움이 폭발한 것이다. 살면서 또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싶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샘까지 터져버린 상황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배고픔이 불러들인 참화인지, 지친 몸이 끌어들인 자책인지는 모르겠지만 좀체 진정될 기미가 없었다.
 
정처 없이 걸을 작정으로 다시 길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다시 노랫소리가 살포시 들렸다. 손으로 귀 뒤를 가리고 소리를 관찰했다. 확성기를 통해 들리는 소리는 노랫소리가 맞았다. 놀이판에 끼어들지 못한 것을 섭섭해 하면서 촉촉하게 젖어들었던 눈시울은 곧 초롱초롱해졌다. 발걸음을 조금 더 빨리 해서 노랫소리 가까이 다가설수록 음악소리가 귀청을 찢어놓을 듯 요란스러웠다. 무슨 축하무대가 펼쳐지는 모양이었다. 눈에 들어온 무대도 엄청 컸다. 무대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그만큼 많았다. 눈이 번쩍 띄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가 싶기도 해서 상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무리들을 따라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며 같이 즐길 수가 없었다. 노래를 따라 부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노랫말은 알 수 없는 언어였다. 이방인일 뿐이었다. 씁쓸한 생각이 다시 솟구치면서 온몸을 휘감아 들었다.
 
하루 종일 걸었지만 상훈은 정작 자기가 찾고 싶어 하는 것을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겠다는 불안감을 감지했다.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막막한 심정도 들었다.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어 공포감마저 회오리쳤다. 갑자기 미궁 속으로 빠져든 듯 멍해진 기분이었다. 너무 걸어서 지친 나머지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멍 때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 찰나 지금, 여기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열심히 하자는 다짐이 솟구쳤다. 상훈은 집으로 가는 길을 서둘렀다. 그곳에 새로운 길이 있을까 싶었다.
 
정유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