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사설

사설(제714호)-해탈과 참 자유

편집부   
입력 : 2018-07-02  | 수정 : 2018-07-02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트위터로 보내기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

해탈절이 다가온다.

해마다 맞이하는 명절이지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마음가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기에 매번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이기에 누릴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일 것이다. 불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명절은 많다. 우선 석가모니부처님과 관련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만으로도 부처님오신날과 성도절이 있고, 열반절이 있다. 불자들의 근원적 서원과 구경의 목표가 되는 해탈절 역시 중요한 명절임에 틀림없다. 어느 명절이 중요하지 않고, 어떤 명절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구경성불의 궁극적 가치와 대중포살의 회향공덕을 생각하면 해탈절은 더없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자비사상과 이타자리정신에 부합하고 사섭법은 물론 불교교리의 기본정신 대부분에 부합하는 측면에서도 그렇다.

여느 명절과 달리 최소한의 49일불공을 하고 맞이하는 점에서도 해탈절은 일반 명절과는 분명히 차별화 된다. 나날이 쌓여가는 탐진치를 단제하고 무시광대 겁으로부터 지어온 업을 소멸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만한 정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혼자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에 여러 선지식과 주변 도반들, 가족들의 도움도 절실하다. 그 때문에 나누고 베푸는 선행은 해탈절의 또 다른 미덕이 되고 있다.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 개인의 서원과 노력은 당연히 중요한 덕목이다. 주변의 도움도 개인의 의지와 노력이 선행될 때 주어지고 뒤따르는 것이기에 스스로의 행동이 앞서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다고 겁부터 내면서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믿고 행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적절한 가르침이 된다.

‘진각교전’에 보이는 ‘대방광보협경’과 ‘불사의신통경계경’에서는 ‘겁내지 아니하는데 해탈함을 얻는다’라고
했다. 백천만억(百千萬億)의 마군을 겁내지 않고 일체의 생사중생(生死衆生)들을 싫어하지 않으며 선근을 모으는데 겁을 내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집지장엄(集智莊嚴)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음이라고 깨우쳐 주고 있다. 겁이 없고 싫어함이 없으면 자심 중에 해탈함을 먼저 얻게 된다는 것이다. 고액 중에서 윤회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마군을 쳐부수고 외도들을 최복하며 대법륜을 전해 대법당을 세우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하고 대열반을 얻는다고 한다. ‘실행론’에서는 해탈방법을 더 명료하게 깨우쳐 주고 있다. 불공 중에 걱정되고 마장 됨을 말하거든 연달아서 희사하고 칠일불공 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사절하면 마장은 물리치고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해탈은 열반과 적멸을 지향하지만 살아 있는 유정들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자유일 것이다. 자유는 결국 자비에서 온다. 해탈을 구하기 전에 자비행부터 배우고 실천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