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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45

편집부   
입력 : 2017-05-16  | 수정 :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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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공과 문답

"며느리가 시집을 와서 그 집 가풍만 알게 되면 그때부터 고된 시집살이는 다 지난다. 심인당에 다니면서 심인당에서 행하는 법만 알고 행하게 되면 심인진리는 거의 알 수 있는데 삼 년이나 다니면서 절량희사의 공덕도 몰라서야 되겠는가.“(실행론 제3편 제4장 제16절 다)

마침내 피어나는 꽃

전 부장이 아침부터 막말을 쏟아냈다.
취재팀 총괄수장인 전 부장이 1타 3피 식으로 노리는 타깃은 늘 4, 5년 차 기자들이었다. 그들만 다그치고 채근하면 안 될 일도 시나브로 처리되곤 했던 것이 전통처럼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국 내에서 4, 5년 차 기자들이야말로 세상이 무서워하고 북한의 김정은도 무서워한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중2’와 다르지 않은 존재들로 여겼던 것이다. 9년 차가 넘은 차장들에게 은근히 압박을 가하는 효과까지 노리는 고단수의 전략이었다. 1, 2년 차 수습기자들이야 한 부서 내에도 서너 명이나 포진해서 앉아 있는 능구렁이 차장들이 얼마든지 알아서 가르치고 다독거릴 일이다. 윽박지를 일이 있어도 응당 그들의 몫이고 업무일 따름이다.

“왜 또 난리야? 응!”
“도대체 무슨 일이야? 늘 그랬지만 도대체가 영문도 모르고 당하자니 억울해서 못 참겠다. 무슨 동네북도 아니고. 나, 참.”
“그러게 말이야. 이번엔 누구야……. 누구 때문이야?”

‘조다방’이라고 이름한 편집국 앞 응접실 커피자판기 주변으로 4, 5년 차 기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금새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옹기종기 모여든 것 같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아침부터 막말을 쏟아낸 전 부장을 성토하면서 한 마디씩 내뱉었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 하나 풀이 죽어 있다거나 고개를 떨군 채 긴 한숨을 몰아쉬는 이는 없었다. 어느 누구를 특정한 나무람이 아니라는 증거다. 집단적으로 당하는 꾸지람도 한두 번이지 자주 듣다보면 면역이 생기고 대수롭잖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도의적인 면은 있을지나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거나 시말서를 써야 하는 경우까지는 아니기에 먼 동네 누구네 집 개 짖는 소리쯤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이었다.

“전 부장 오늘도 하루 일을 보람차게 시작하셨네 그려.”
“선배님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십니까?”
“아닐세. 그럴 리가……. 누구나 다 겪으면서 지내왔지 않는가? 뭘 새삼스럽게 그러시는가? 안 그런가? 안 차장.”
“제가 뭘……. 아직…….”

4, 5년 차 기자들이 ‘조다방’에 모여 있던 시각 중역회의실에는 국장, 실장, 부장, 차장들이 자리를 잡았다. 회의실 안은 커피냄새가 진하게 배여 있었다. 말석에 앉아 있던 안 차장은 박 부장의 느닷없는 말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 박 부장이 치켜올려 세우고 있는 당사자 전 부장이 쳐다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민망한 낯빛을 드러냈다.

“다들 잘하고 있습니다. 내일, 모레 닥칠 일도 있고 해서 조금 더 긴장을 시키려고 일부러 그랬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 차장 신경 좀 써 줘. 알겠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전 부장이 안 차장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이 회의실 분위기를 바꿔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역력하게 드러나 보였다.
“전 부장, 좀 더 다그쳐. 다들 긴장해야돼. 느슨하게 풀어지면 안 돼. 이번 기회 잘 잡아야 돼. 다들 알지.”
커피 잔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기회를 엿보던 편집국장의 한 마디가 회의실 분위기를 다시 싸하게 만들어버렸다. 모두 입을 닫았다. 되돌릴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벽과 천장은 물론 바닥까지 눅진하게 배여 있는 진한 커피 향이 역겹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만 이제 4, 5년 차 기자들이라 아직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잘 가르치겠습니다.”
“가풍이 다른 집안으로 가서 시집살이를 무난히 하기 위해 옛날에는 9년이라는 세월을 무사히 넘겨야 된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건 과거야, 과거. 눈 가리고 3년, 귀 막고 3년, 입 닫고 3년……. 옛날에는 그랬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야. 5G시대 아닌가? 언제 무한기가시대가 도래할지 모르는데 말이야. 눈뜨고 1년, 귀 열고 1년, 입 놀리며 1년이면 족해. 그렇지 않은가? 기자생활 4, 5년 차면 팩트를 지배하고 상황은 가지고 놀 줄을 알아야지…….”

편집국장의 일장연설은 꺼져가던 불씨를 휘젓는 격이었다. 회의실 안은 잔불이 되살아나기 일보직전의 상황으로 휩쓸리는 듯 싶었다. 큰불로 번지는 것은 순식간의 일일 것만 같았다.

"며느리가 시집을 가서 그 집 가풍만 알게 되면 고된 시집살이는 다 지난다“라고 했어. 기자가 되어서 기자의 할 일을 알고 현장을 알면 됐지, 뭐가 또 있어? 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을 알아서 해야되는 것 아니야? 다들 긴장을 하고 긴장을 시켜, 긴장을……. 모레 일 그르쳤다간 봐라, 내가 그냥 두는지…….”

거침이 없었다. 전 부장을 두둔하면서 시작된 편집국장의 쓴 소리는 결코 즉흥적인 것이 아닌 듯 했다. 준비되고 의도된 것처럼 보였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잘못 했다가는 호된 질책을 당할 것이라며 ‘그냥 두고는 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데서 결기까지 느껴졌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를 호되게 몰아세우며 전열을 가다듬게 하는 야릇한 인상마저 풍겼던 것이다.

사실 1년으로야 부족하겠지만 3년이면 충분할 수 있는 일이 있기도 하다. 완벽한 것이 어디 있을까마는 3년 정도 지나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팩트가 있음을 눈치 빠른 기자들은 얼마든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사실을 잘 알아서 활용하고 응용해 특종을 낚아채거나 만들어 내는 이도 더러 있었다. 최근에 와서 통용되고 회자되는 통계에 의한 빅데이터기법이 적용된 사례들이라 할 수 있는 경우들이다. 그 때문에 연륜과 경륜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편집국장이 강조하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아침회의가 끝나고 회의실을 나와 ‘조다방’ 앞을 지나칠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는 기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 바탕의 넋두리를 쏟아낸 그들만의 푸닥거리를 하고 일찌감치 출입처를 찾아 바쁘게 발걸음 했을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 이놈들이…….”

뒤따르던 안 차장이 일행들을 돌려세웠다. 안 차장이 '조다방‘ 커피자판기 앞에 붙어 있는 대자보를 가리켰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듯이, 길 잃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어둠 속을 헤매는 자에게 등불을 비추어주듯이 참으로 놀랍고 눈물겨운 가르침을 주십니다. 저희들은 오늘도 보람차게 출입처를 향해 전진합니다. 선배님들의 걱정과 염려를 불식시키며 기대에 부응해 마침내 피어나는 꽃이 되겠습니다. 제29기-제30기 일동.”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