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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인당은 형형색색 가을산의 단풍이어라

편집부   
입력 : 2016-10-16  | 수정 : 20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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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났던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나도 모르게 향긋하고 밝은 에너지를 느낍니다.
순간, 아… 이 사람은 나에게 그런 모습이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그리고는 생각해 봅니다. 나는 어떤 느낌으로 이 사람에게 다가갔을까?
전화번호에 찍히는 상대방의 이름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가지가지입니다.
그때그때의 자신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마는
대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개개인의 고정된 느낌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색깔이 있고,
저마다의 생김새가 있고, 저마다의 냄새가 있고, 저마다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 사람 특유의 에너지이자 기운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밝은 에너지를,
향긋한 냄새를,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변화해 가야하겠습니다.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짙푸른 녹음을 자랑하던 그 뜨거웠던 2016년의 여름은 이제 저만치 세월의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계절은 여름을 지나 가을이 어느덧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몇몇 보살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벌써부터 단풍(丹楓)놀이 이야기가 한창입니다. 그렇습니다. 단풍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녹색을 뽐내던 주변의 산과 숲은 어느 부분들은 벌써 붉어지거나 노래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며 풀들에게는 이제 제 순서대로 단풍이 들어가겠지요. 단풍은 늦은 가을에 잎의 엽록소(葉綠素)가 변질하여 녹색을 잃고 황갈색이 되며 화청소(花靑素)가 붉게 변하여 빛이 붉고 누르게 된 나뭇잎을 이릅니다.

그런데 단풍은 원래에 없었던 새로운 빛깔로 자신의 잎을 물들이는 변화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여름동안 더 커지려는 욕망의 성장을 멈추고 견뎌내야 하는 시점을 준비하는 즉 겨우살이 준비의 모습입니다. 가을의 냉기에 나무들은 성장을 위해 잎의 끝까지 내뿜고 배치해 두었던 영양물질 일부를 서서히 뿌리로 회수해 가는데, 그래서 광합성을 담당하던 엽록체 속의 엽록소를 분해하여 회수하고 나면 이제 보다 안정적인 색소만이 남게 되고 그것이 바로 그 나뭇잎의 단풍색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름 내내 엽록소에 가려져 있던 보조 색소들은 가을에 엽록소가 없어지면 시나브로 겉으로 드러나서 비로소 본래의 색을 내보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무들이 외적 성장과 결실의 욕망을 내려놓고 내적 충실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단풍이라 하겠습니다. 즉 나무들이 저마다의 성장과 결실의 욕망으로 채워져 있을 때는 한결같이 녹색의 모습이었지만 멈추고 내려놓은 시점에서는 본래의 가지가지 모습의 빛으로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그래서 가을산은 형형색색의 조화로움과 웅장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사람들도 일상사의 모습들은 나무와 숲의 한여름 성장과 결실의 욕망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치열한 생존경쟁의 삶의 현장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본심이라는 본래 모습은 가려진채 욕망이라는 한 가지 색깔로 나타납니다. 우리들도 나무들처럼 일상에서의 욕망을 내려놓고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원망을 멈추고 본래의 모습과 빛깔로서의 본심을 드러내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나무와 숲이 겨우살이 동안 결실의 욕망을 내려놓고 성장을 멈추고 근본인 뿌리를 튼튼하게 하며 다음해의 성장과 결실을 준비하듯이 우리들도 멈추고 내려놓음으로써 더 큰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웅장한 조화로움이고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진언행자의 마음공부는 본심을 드러내고 자성을 찾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요일을 자성을 찾는 날이라고 합니다. 회당대종사께서는 “일요일 하루는 엿새 동안 지은 자기의 과오를 참회하고 불공하여 앞으로 엿새 동안 지낼 새로운 양심을 배급받아 가는 날이 되니 자동차에 비유하면 휘발유를 넣어서 가는 것과 같이 이 날 하루는 가장 보람되고 기쁘고 즐겁고 성스러운 날이 된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저마다 내려놓고 멈춰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듯이 우리 진언행자도 자성일 하루는 내려놓고 멈춰서 원래의 나의 모습인 본심을 밝힘으로써 진아(眞我)로서 세상과 마주하고 그 빛깔이 가을날의 단풍이어야 하겠습니다. 이름만으로도 좋은 느낌을 밝은 에너지를 선물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당근같이 붉고, 누구는 은행잎처럼 샛노랗고, 누구는 오렌지 빛깔이고, 누구는 빠알간 단풍잎이겠지요. 심인당은 이렇게 가을산의 단풍처럼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 형형색색의 진아(眞我)들의 향연입니다. 금강법계 비로자나 궁전의 웅장한 조화로움이고 아름다움입니다.

보성 정사/안산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