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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또 다른 길

편집부   
입력 : 2016-07-18  | 수정 :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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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년 전 27일간 총 관람객 3만 5천 명이 관람한 사진전이 있다. 다름 아닌 얼굴 없는 시인으로 익히 잘 알려진 박노해 사진전이 그것이다. 이 사진전은 박 시인이 험준한 안데스산맥을 목숨 걸고 넘으며 촬영한 ‘오래된 미래’인 다른 문명을 사진으로 기록한 전시이다. 관람객의 60%가 청년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 전시는 사진전 역사상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전시로 기록되기도 했다. 

특히 ‘짜이가 끓는 시간’이란 부제가 붙은 사진 앞에서 왜 그토록 젊은이들은 눈물을 흘리며 열광하고 가슴 저린 잔잔한 감동을 받았을까 이다. 그 사진 밑에는 박 시인의 해설이 이렇게 쓰여져 있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의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라고 수많은 사람이 이 사진전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그것은 아마도 최첨단의 과학기술의 혁신된 발전 앞에 우리 모두는 알 수 없는 공허감과 함께 영혼이 상실된 듯한 고독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술 시간에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이란 그림에서 농민들의 소박한 식탁과 서로 감자를 건네는 그 그림 속에서 분명히 따뜻한 가족애와 나눔이 있는 밥상이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어쩌면 박 시인은 과연 우리의 밥상은 그런 따뜻함과 나눔이 있습니까? 라는 잃어버린 그 무엇을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사진전에 왔던 청년들이 묻는 공통된 3가지 질문들이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요?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나요? 였다. 

이 사진전이 열린 한 달 후 우리 모두는 뜻밖의 세월호라는 큰 사건으로 충격에 휩싸여야만 했다. 그리고 난 뒤 방한한 교황 앞에 구름같이 모인 시민들은 또다시 치유의 눈물을 흘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진리와 존재에 대한 물음을 묻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 시인은 “우리 인생에는 각자 원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라고 요약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라는 이 질문들은 이미 오래전 인류로부터 끊임없이 있어왔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삶의 한 형태로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일상생활 가운데 진리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을 나는 부처님 말씀과 종조님 말씀에서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종조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일상생활 가운데 “오 분 실천하면 오 분 부처님이며, 십 분 실천하면 십 분 부처님이며, 한 시간 실천하면 한 시간 부처님”임을 현재 이 몸 이대로 지금 이 순간 제대로 실천할 수만 있다면 성불할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우리 심인당에서는 새해불공 자성일과 뙤약볕 8월 한 달간을 제외하고는 자성일마다 공양간은 점심 공양을 준비하느라 쉴 새 없이 바삐 돌아간다. 보살님들께서 마음을 내어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점심공양 불사가 올해 햇수로 8년째 접어들고 있다. 나는 늘 감사하고 송구한 마음을 담아 점심 공양을 준비하는 보살님들의 자비한 마음이 어쩌면 대중 공양이 곧 제불보살 공양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늘 불사라 여겨왔다. 그런데 자성일마다 설거지하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 때문에 가끔은 골머리를 앓을 때가 있다. 알뜰히 음식을 다 먹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어디서 음식물 쓰레기들이 매번 그렇게 나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생태교육과 빈 그릇 운동이 절실히 필요할 때이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서는 상상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의 몸은 소우주일진데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파괴를 일삼는 행위는 곧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의 공통 가치를 가지는 진리는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일, 인간을 사랑하는 일, 자유와 평화를 살피는 일 등은 매 순간순간 깨어있지 않으면, 탐욕을 멈추지 않으면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밥상에 풍요로움과 빠름은 있을지언정 소박함과 경건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 탐욕의 생산과 풍요로움이 우리의 영혼을 거듭나게 할 수 없음을 시인 박노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의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라는 어떤 경우에도 생명을 살리고 존중하는 인간의 편에 서야 함을 의미하고 있지는 않을까.

수진주 전수/정정심인당 교화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