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34

편집부   
입력 : 2016-03-16  | 수정 :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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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위와 무위

"유위법(有爲法)은 각종 인연 화합하여 조작하고 있는 모든 현상이니 배워 일(事)을 알게 되고, 무위법(無爲法)은 분별조작 하나 없이 일(事)이 자연 이뤄짐을 말함이니 깨쳐 이치 알게 된다."('실행론' 제2편 제9장 제2절 가)

인연 따라… 세월 따라

느긋한 아침이었다. 회사로 출근을 할 때는 종종걸음을 하며 시간이 짧다고 투덜거리기 일쑤였던 아침나절이 여유롭기까지 했다. 정년을 불과 몇 년 남겨두기는 했지만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시책에 떠밀려 호기롭게 명예퇴직 신청을 해서 회사를 떠난 것이다.

그의 명예퇴직 신청을 앞두고 주변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아내부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두 말하면 잔소리라는 투였다. “존버정신이 없어서 어쩌겠느냐”며 눈 딱 감고 몇 년만 더 버티라는 주문을 했다. 가족인 아내는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에서조차 “당신은 명예퇴직을 신청할 군번이 아니라”며 “왜 그렇게 소심하고 성급하게 구느냐”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그가 명예퇴직을 신청할 만큼 회사에서의 위치나 대인관계에 문제될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물려주려는, 구국열사 같은 행동도 결코 아니었다.

“생각 없는 중늙은이들이 문제지 뭐. 그들은 자리 욕심 밖에 다른 생각이 없어….”
“그러게 말이야. 시대가 어는 땐데, 그런 쓰레기들은 강제로 명예퇴직을 시키는 법이 나와야 돼.”
‘불금’이라는 금요일 퇴근길이었지만 식당은 한산했다. 모처럼 회사까지 그를 찾아온 친구와 함께 차지하고 앉은 테이블과 대각선으로 비켜 있는 구석자리에 대여섯 명의 젊은이들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간간이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그와 그의 친구가 조용히 있을 때는 젊은이들의 말소리가 그대로 전달됐다. 한 자리에 앉아 이야기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젊은이들이 젓가락을 휘둘러가면서 쏟아내고 있는 말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대부분 젊은이들의 분노가 토해지는 것 같았다. 그와 마주 한 채 말없이 앉아 있던 친구가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저 친구들 말이 다 맞아. 나 회사 그만 뒀어….”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자기 회사를 그만두다니. 자세히 좀 말해봐."
"물론 내 회사였지. 나는 일찍부터 직원들 회사로 만들어왔네. 사원이 주주고, 주인인 회사로 말이야. 그러면서 언제쯤 물러날까, 생각도 많이 해오다가 이번에 좀 쉴 겸해서 사원총회를 열어 자기네들끼리 새 대표를 뽑도록 하고 나는 물러났다는 말이다. 잘 했지 뭐. 안 그래."
친구는 담담했지만 놀람 반, 환영 반, 충격을 받았던 것은 그였다.
그 날 친구가 했던 말을 듣고 그는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그렇다고 즉흥적이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역시 나름대로 준비해오던 것이 있었다.

새벽같이 잠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가 정송을 마치기 바쁘게 집밖으로 나왔을 때 시끌벅적한 새 소리가,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질 것처럼 믿으며 환호하고는 했던 어린 시절로 그를 데려다 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부모 품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은 내달리고 부딪히며 온몸으로 살던 시기였다. 걱정도, 근심도 없었다. 먹을 것도 있으면 먹고, 없을 때는 참으면 그만이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때를 쓰거나 매달리기도 했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알았기에 일찍 체념하고 돌아서면 그만이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였기 때문에 그 밖의 세상은 있는지 조차 몰랐으니 무엇을 그리워하고 부러워할 것조차 없었다.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인정할 수 있다.

일찍 일어난 그가 안쓰러웠던지 아내가 아침을 차려주었다. 그는 이내 동네 산책이나 갔다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동네 뒷산인 돌산을 향했다. 그 길에서 초등학교에 등교를 하는 학생들을 지나쳤다. 
그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공부라는 것을 해야 했기에 학습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긴장했다. 그때부터 그는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으레 크게 몸살을 앓아야 했다. 긴장감에서 오는 일종의 습관성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선생님의 이름자도 외워야 하고, 다른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의 이름도 기억해야 했다. 머리가 필요한 시기였다. 학교에서 숙제라도 내줄 때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것부터 했다. 숙제를 다하지 않고는 절대로 노는 법이 없었다. 그런 그를 두고 가족들은 늘 칭찬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물론 대학을 마칠 때까지 그의 습관은 변함이 없었다. 그 영향이었던지 학업성적도 좋아 주변 사람들로부터도 칭송이 끊이지 않았다.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은 학습이라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적응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점심 드셔야지요.”
돌산에서 내려와 집안 서재에 앉은 그가 이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내가 차려준 점심을 먹고, 직접 탄 커피 잔을 들고 베란다로 나섰다. 멀리 보이는 도시고속도로 위를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들이 보였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지칠 듯 하면서 지치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군상들의 모습처럼 여겨져 쓴웃음이 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첫 직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벅찼던 감동은 어디로 갔던가. 정년퇴직을 한다 하더라도 고작 30여 년에 지나지 않을 기간 동안 싸늘하게 식어갔던 기억들이 커피 우러난 물처럼 검게 변해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직장생활을 뜨거운 가슴으로 해냈다는 자위를 하며 아무리 먼 훗날에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뉘엿뉘엿 움직이는 차량들을 보다가 다 식은 커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하루가 마냥 길 것이라고, 아침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명예퇴직을 하고 집에 있던 하루는 회사에 있을 때처럼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저녁 드세요. 오늘 정말 삼식이네…. 아, 미안해요. 내가 실수를 했네.”
“틀린 말도 아니네 뭐. 사실인데….”
저녁을 먹은 뒤 서재에 들어서자 아내가 했던 ‘삼식’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동창회 같은 데를 가서 장난삼아 들었을 때는 대수롭잖게 여기며 동감도 하고 너끈히 받아넘겼던 말인데, 씁쓸했다. 아내의 말이 가져다준 무게 때문이 아니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여지면서 실감하게된데 이유가 있었다. 몸으로 부딪혔던 어린 시절도, 머리를 쓰면서 학습하던 학창시절도, 열정적인 가슴으로 내달렸던 직장생활도 벌써 다 지나버렸다. 뒤로 되돌아가는 법 없이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는 세월을 탓할 뿐이다. 이제 다시 몸으로 부딪히고 살아야할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몸보다 앞서 마음부터 어린 시절 응석을 부리던 때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놀라다가도 이제 다시 몸으로 살 수 밖에 없겠구나, 직감했다. 예전에 어른들이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했던 말이 빈말은 아니라는 확신도 하게됐다. 남은 생은 순리에 맡길 따름이다. 지어왔던 인연에 따르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주어진 순리를 좇을 뿐이다. 몸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은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