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제 정사-알기쉬운 교리문답

편집부   
입력 : 2015-12-17  | 수정 : 2015-12-17
+ -

볼수록 싫은 사람이 있어 마음이 괴롭습니다.

안중지정(眼中之釘), 흔히 ‘눈엣가시’라고들 하지요? 정말 꼴도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에게 맞춰야 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스스로를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낍니다.
말 그대로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거지요. 볼 수도, 안 볼 수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원수로 만나 살아가는 원증회고(怨憎會苦)의 기막힌 인연이 이 말에 함축된 겁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예요. 착하게만 보이던 아내의 토끼 눈이 불시에 도끼눈으로 바뀌어 쌍심지를 켜기도 하잖아요. 분노가 치밀어 올라 상대를 찍어 넘어뜨리고 싶은 심정으로 달려들 듯이 노려보는 눈빛이 도끼눈 아닙니까? 심지어는 가슴을 치고 쥐어뜯고, 목을 늘였다 쪼그리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니, 이 도끼눈에 안 다치려면 알아서 기든가, 아니면 최대한 안면에 철판을 까는 수밖에 없다나요, 뭐라나요.

중생세간의 특징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지중하고 가까운 인연일수록 원수로 살기 쉽다는 겁니다. 사랑은 미움의 씨앗이라고 했던가요? 길에서 마주친 사람과는 싸우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가족끼리는 허구한 날 싸우잖아요. 차라리 남이라면 끝을 내든 풀든 해결이 쉬울 텐데 혈연이란 질긴 인연은 애증을 동반하며 갈등의 골을 더 깊이 파게 하거든요. 하루 종일 마주 보아야 하고 밥도 같이 먹어야 하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토록 미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요? 때로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까다롭고 정나미 떨어지는 사람을 다 만났나 싶어 한숨만 푹푹 내쉬는 우리. 무슨 애증의 업이 이리도 두꺼운 걸까요?

옛날에 같은 집에 소실을 두고 살던 차서방이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소실이 밥상을 들고 들어와 밥을 먹는데 김치 맛이 좋더래요. 그래서 본부인을 불러 “앞으로 김치를 담그려면 이렇게 담그라”고 했다네요. 본부인은 하도 어이가 없어 “그것은 내가 담근 것이다”라고 하자, 차서방이 하는 말이 “그래서 뒷맛이 썼군.” 하더랍니다.

사람 중에는 잘난 이도 있고 못난 이도 있으며, 꼴 보기 싫은 이도 있지요.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상대는 잘났는데 내가 밉게 보는 이도 있고, 객관적으로 보면 못났는데 내가 예쁘게 보는 이도 있다는 말이에요. 차서방이 같은 김치를 먹고도 맛을 다르게 느낀 것은 소실의 예쁨과 본댁의 미움이라는 분별 때문이지, 김치 맛 자체가 달랐던 건 결코 아니에요. 이처럼 우리 중생들은 한번 사랑과 친근, 미움과 배타에 가리게 되면 분별심에 끄달려 업을 짓게 됩니다. 그래서 옛 성현의 말씀에 “좋아하되 그 허물을 알아야 하고, 미운 사람도 지금 그가 지은 착한 바를 알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지요. 

진각성존 회당대종사의 말씀에 귀 기울여 봅니다.
“인정이 곧 사정(私情)되고 사정이 곧 외도되어 널리 중생 사랑하는 그 성품(性品)에 도적이라.
 정이 발전하게 되면 모든 사(私)가 일어나고 성품 발전하게 되면 공의(公義)가 곧 일어난다.” (실행론 4-3-1)

호불호(好不好)를 가리는 마음은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싫은 마음이 생겼을 때, 그 일과 사람을 싫어하지 말고 ‘싫다’고 분별하는 내 마음을 참회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