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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고하는 <상소문>

편집부   
입력 : 2015-05-01  | 수정 : 201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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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릎이 아파서 병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소염진통제 처방을 받고 물리치료를 병행하고 있으면 좀 나아지더군요. 그래서 치료를 중단하고 약을 끊으면 다시 무릎이 호소합니다. 아프다고. 아파 죽겠다고 호소합니다.

정말인지 앉았다 일어 설 때마다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결국 다시 병원을 찾게 되지요. 그리고 다시 소염진통제 처방을 받습니다. 속상한 마음에 제가 징징 거리면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고 있는 일(단순 노무직이라 서있는 일)을 그만 두고, 운동 삼아하고 있는 한국무용도 그만 두고, 아무튼 다 그만 두고 무릎을 쓰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무릎을 쓰니까 재발한다고요.

허 참! 야단났습니다. 일을 그만 두면 당장 밥벌이가 힘들 것이고 한국무용을 그만 두면 섭섭하고 서운한 마음에 세상 살 맛이 안 나 우울증에 걸릴 것이 뻔합니다. 암중모색이라 제가 제 무릎을 주무르고 문지르고 쓰다듬고 두들기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무릎아! 그동안 네가 거기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거기에 네가 있었구나. 일을 좀 더 할 욕심에, 무용을 좀 더 배울 욕심에 네가 그렇게 힘든 줄도 몰랐구나. 미안하다. 고생 했다. 이제부터라도 잘할게. 더 내려 놓고, 무리한 욕심 따위 부리지 않을게.”하면서 무릎을 위로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제 욕심이 보였던 겁니다. 결국 무리한 욕심 탓으로 고생하고 아팠던 제 무릎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며칠 전 광화문을 보면서도 그렇게까지 서럽게 울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아픈 것이 내 일이 되고 보니 이렇습니다. 그깟 무릎 좀 아프다고 말입니다. 참 간사하지요?

그 날, 광화문에서도 여기 아픈 우리가 있다고, 아파 죽겠다고, 제발 아픈 우리들을 좀 보아 달라고, 이제는 너무도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소염진통제 처방으로는 나을 수 없는 고통이 또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엠알아이’인지 뭔지 하는 정밀 진단은 고사하고, 어디서부터 금이 간 건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는지, 그도 저도 귀찮아 아예 고민하는 것조차 힘들다면 말입니다.

저처럼 아이고 모르겠다. 그냥 질펀하게 앉아 너나 할 거 없이 아픈 가슴들 부둥켜안고 그동안 얼마나 아팠느냐고, 네가 아파서 나도 아팠다고,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그래도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함께 통곡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픈 곳이 있으면 몸이 제 기능을 상실해 갑니다. 치료가 여의치 않다고 아픈 곳을 소염진통제 처방으로 잠재우거나 잘라 내 버린다면 몸은 망가지겠지요. 망가진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지 할 곳이 없어 마음에 숭숭 구멍이 뚫리고, 먹고 사는 일이 하도 비굴해 그냥 그 자리에서 팍 죽고 싶을 때, 제가 자주 찾아 읽는 상소문이 있습니다.

조선의 학자 조식 선생님의 ‘을묘사직소’인데요. 죽음을 무릅쓰고 던지는 조식 선생님의 섬뜩한 문장들을 읽다 보면 위안을 받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위안을 받다니요. 그런데 위안을 받습니다. 위안을 받은 마음이 잘 구부러지지 않는 아픈 무릎을 끌어안으며 봅니다. 4월을. 그리고 결심합니다. 내일은 꼭 ‘엠알아이’를 찍어 보겠다고 말입니다.

이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