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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호수

편집부   
입력 : 2015-04-16  | 수정 : 201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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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인문학의 자리가 자꾸 좁아지고 있지만 대중을 위한 인문학 강연은 성황이다. 프랑스 작가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강당을 가득 메운 한국의 청중들과 만났다. 그는 ‘개미’와 같은 독특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 생각을 전환하게 만드는 교훈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쌓은 사람이다.

강연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그는 ‘현재를 온전히 살아보는 실험’을 해 보자고 제안했다. 세 가지 활동으로 구성된 체험인데, 첫 번째는 바른 자세로 앉아 코끝을 포함하여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보기, 두 번째는 눈을 감고 옆 사람의 숨소리 등 모든 소리를 듣기, 세 번째는 피부에 닿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느끼기였다. 필요한 것 외에는 모든 것을 차단하고 집중해야 했던 조금 전 상황과는 정반대의 활동이었다. 

일주에 한 번 꼴로 오랜 기간 차로 오가고 있는 28번 국도는 교통과 주변 상황을 꿰고 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어느 한 구간은 유독 집중해서 운전을 해야 한다. 1km가 넘는 내리막길인데 끝나는 지점에 속도 및 신호위반 단속카메라가 달려있다. 규정속도 80km를 맞추기 위해서는 거리와 신호등 주기를 고려하고 신호등 색깔과 계기판을 번갈아 보면서 브레이크로 가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급정거나 노란불에 봉착하는 상황을 피하고, 내리막 가속력을 유지하면서 파란불에 무사히 통과하면 최선이다. 10km 정도의 가속 허용범위까지 고려하다보면 만만치 않은 판단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베르베르의 강연 덕분인지 그날은 멀리 신호등이 보이자 갑자기 감각을 오픈하고 싶었다. 그러자 신호등 바로 위에 하늘호수가 떠 있는 게 아닌가! 웃음이 나왔다. 그 오랜 기간 동안 하늘빛을 품은 멋진 호수가 거기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단속카메라와 씨름을 하는 그 높이에서만 나타나기에, 늘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호수이다. 또 다른 웃음이 나왔다. 그동안 그렇게 열심히 씨름해서 얻은 것은?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 였다.

신재영 위덕대 교육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