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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

편집부   
입력 : 2014-01-29  | 수정 : 201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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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웰던(Joel Weldon)이 소개한 대나무 이야기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자생하는 종류로 모죽(毛竹)이라 부르는 대나무가 있다.

대나무 중에서 최고로 치는 왕대 '모죽'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꾸어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년이라는 긴 숙면기가 지나고 나면 어느 날 손가락 만한 죽순이 돋아난다. 4월이 되면 갑자기 하루에 80cm씩 쑥쑥 자라기 시작해 6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성장해서 30m까지 자란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5년이란 세월동안 자라지 않았던 것일까? 의문에 의문을 더한 학자들이 땅을 파보았더니 대나무의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나가 무려 10리가 넘도록 땅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5년 간 숨죽인 듯 아래로 아래로 뿌리를 내리며 내실을 다지다가 5년 후 당당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른 나무들은 뿌리와 함께 줄기도 자라지만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대나무는 모죽(母竹)으로부터 죽순이 시작되기 전에 뿌리를 내리고 넓히는 데만 2∼5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넓게 퍼진 뿌리에서는 일정한 사이사이마다 죽순이 생겨나 번식하고 무성한 대나무 밭을 형성하며 당당한 모습으로 곧게 뻗은 대나무의 모습으로 탄생하게 된다.

고려의 고승 진각국사는 그 덕성을 부처님의 성품과 같이 보고 '죽존자전'(竹尊者傳)에서 대나무의 미덕을 10가지로 표현하고 있다.

"첫째 나자마자 우뚝 자라나며 둘째 늙을수록 더욱 굳세고 셋째 그 결이 고르고 곧다. 넷째 성품이 맑고 서늘하며 다섯째 소리가 사랑스럽고 여섯째 외모가 볼만하다. 일곱째 마음이 비어 사물에 잘 대응하며 여덟째 절개를 지켜 추위를 잘 참고 아홉째 맛이 좋아 사람의 입맛을 돋운다. 마지막은 재능이 많아 세상을 이롭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부처님의 덕성을 대나무에 비추어 찬탄하고 있다. 

진각성존 회당대종사께서는 이러한 대나무의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진각종단의 법구로 죽비와 법대를 사용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죽비는 스승이 지녀야할 덕목을 묵시적으로 전하시고, 법대는 신교도들이 지녀할 덕목을 소리 없는 소리로 전법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스승과 신교도가 하나 되는 이원진리의 법으로 말이다. 죽비는 불사의 시작과 진행, 그리고 마침을 알리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삐뚤어진 마음을 곧게 바로 펴 나가라는 깨우침의 뜻이 담겨있다. 자기가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모든 죄의 허물을 참회로 고쳐서 실천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교화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교화란 가르쳐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비는 교화와 깨우침, 그리고 변화인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계획은 거창하나 끝까지 가지 못하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변화하고 싶다면 변경될 수 있는 경계점을 반드시 넘어야 한다. 모죽은 5년 동안 질적인 변화를 위해서 충분한 준비기간이 있었으므로 30m까지 자라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 물은 99도에서 100도가 될 때 변화가 있다. 그리고 꽃이 피는 것도 14도에서는 절대 꽃이 피어오르지 않고 15도가 되어야 나무에 꽃이 핀다고 한다. 이처럼 완전히 변화되기 위해서는 정점을 넘어야한다.

그러므로 종조께서는 "내 마음 고치고 용맹정진할 때 무엇이라 정하지 않아도 길은 열린다"(실행론4-9-4)고 하셨다. 이와 같이 갑오년 새해49일불공이 모죽처럼 인내와 하심으로 용맹정진하여 내실을 다지고, 심인을 밝혀 성숙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여 따뜻한 봄날 해탈의 향기 가득하길 희망한다.

증혜 정사·낙산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