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13

편집부   
입력 : 2013-10-15  | 수정 : 201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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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서 행하는 진리"


"심인진리는 다른 종교와 같이 어떤 신(神)을 대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청정한 자기 본심을 대상으로 깨닫고 지혜와 자비로 행하는 진리이며, 깨쳐서 고치고 고쳐서 행하는 진리이다. 그래서 해탈하고 성불하는 진리이다. 법신(法身)은 무상불(無相佛)이며, 무(無)에서 지어 유(有)에서 받고 현세안락이 위주이다. 화신(化身)은 유상불이며, 유에서 지어 무에서 받고 사후열반이 위주이다. 무상진리는 형상이 없는 것으로 바로 눈에는 안 보이나 제도는 잘된다. 법신은 모든 부처의 근본불(根本佛)로서 으뜸가는 부처이니 교리도 으뜸가고 뛰어나며 공덕도 또한 뛰어나다. 하나를 심어 열이 나고 열을 심어 백이 난다. 무상공덕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실행론' 제2편 제2장 제1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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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도원 정사



(콩트)바꾸면 달라진다


우린이의 가슴이 다시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한달 여 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했건만 막상 그 날이 되자 떨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간밤 잠을 설친 탓도 있겠지만 눈앞에 닥친 현실을 그대로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듯 싶었다.

"외삼촌, 거 나가야 됩니꺼? 정말 괜찮은 사람이지예?"

버스를 타고 D시까지 나가려면 족히 1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시간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우린이는 새벽 같이 만반의 준비를 마쳤기에 버스를 탈 시각까지 남은 아침시간 동안 연신 시계를 쳐다보다가 외삼촌의 전화번호를 다섯 번이나 꾹꾹 눌렀다. D시에서 만나기로 했던 외삼촌은 다섯 번째 전화를 할 때까지는 너스레를 떨며 대꾸해주었다. 그러나 우린이가 여섯 번째 전화번호를 눌렀을 때부터 외삼촌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전화하면 그 자리에 나가지 않겠으니 아무 소리말고 K커피점 앞에 도착해서 만나자'는 문자만 보내왔다. 늦지 않게 시간을 잘 맞춰서 나오라는 엄포성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우린이가 외삼촌으로부터 괜찮은 사람이 하나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처음 전화를 받은 것은 두어 달 전이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의 아들이 꼭 시골 사는 처녀와 결혼하겠다고 해서 우린이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이라 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좀 모자란다거나 결격사유가 있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자연적인 환경에서 가정교육을 잘 받은 처녀를 배필로 삼고 싶다는 단 한 가지 열망 때문이라는 말을 할 때 외삼촌의 목소리에는 힘까지 잔뜩 들어 있었다. 이 만남은 천생연분이 될 것이고, 반드시 좋은 배필이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며, 너의 인연인가 싶다는 말을 할 때는 꼭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듯한 간절함까지 목소리에서 배여 나왔다.

외삼촌과는 달리 우린이가 시큰둥해 하며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지 않았던 것은 서울 사는 괜찮은 남자가 굳이 시골 사는 여자를 찾는 이유가 께름칙해서였다. 아무리 친구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외삼촌이 모르는 사연이 있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우린이가 대답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외삼촌은 다시 전화할 때까지 차근차근 생각을 잘 해보라며 전화를 끊었다.

"우린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 쪽에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만나야하겠으니 제발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해달라고 사정사정 하더라."

외삼촌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꼭 한 달 전이었다. 우린이가 외삼촌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소 가볍게 생각하며 잊으려 했던 일을 다시 떠올리게 하자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까지 했다. 사람을 만나 보는 것이 싫을 것까지는 없는 일이지만 괜한 상처만 받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괜한 걱정 하지말고 외삼촌 믿고 한 번 만나봐라. 내가 시간하고 장소를 잡아서 그 쪽과 상의해 연락하마."
우린이의 콩닥거리는 가슴앓이는 그 순간부터 시작됐다. 그 사람을 만나러 나가는 것도 큰일이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안 나가겠다고 하기에는 제대로 찾아온 기회를 놓쳐버릴 듯한 한 가닥의 미련이 똬리를 틀고 마음 속 깊이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가슴은 콩닥거리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언젠가 딱 한 번 청룡열차에 올라타서는 기절을 할 뻔했던 느낌이었다. 속도 메슥거리는 듯 했다.

"이 자리에 왜 안나오려고 했어요?"

K커피점에 있던 그 사람 앞에다 우린이를 앉혀 놓고 외삼촌이 자리를 뜨자마자 가잠나룻을 한 그 사람이 첫 마디를 떼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언뜻 본, 가잠나룻을 한 사람의 얼굴은 몹시 지쳐 보이는 듯 하면서 어두운 그림자까지 드리워져 있어 보였다. 게다가 가잠나룻 탓이기는 하겠지만 나이도 먹을 만큼은 먹었을 것으로 단정짓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가즈럽지는 않아 보였다. 어두운 그림자 뒤로는 만개한 꽃을 피워 올릴 몸 속의 기운마저 느껴졌다. 우린이는 용기를 내 얼굴을 들었다.

"하시는 일이 많이 힘들어예?"

"네? 아, 별로……. 물론 들어서 아시겠지만 쓰레기 치우는 일에 이골이 나서 다른 업종으로 바꾸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참입니다. 시집을 오려는 분들도 없고……."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예. 그쪽이 쓰레기를 치워주지 않으면 천지가 쓰레기 삐까리 될 거 아잉가예. 왜 하찮게 여기예?"

"……."

가잠나룻은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린이가 한 말뜻을 선뜻 못 알아들어 눈만 끔벅끔벅 하다가 하여튼 자기를 두둔하는 말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더 호감이 갔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정식으로 사귀어봅시다. 나는 그 쪽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몰라예"

가잠나룻은 교제를 해 보자고 한 제안이 단칼에 베듯 거절당한 것으로 생각돼 고개를 떨구었다.

"방금 했던 말처럼 그 쪽만 괜찮다면 앞으로 하는 일에 보람과 긍지를 갖고 다른 생각 없이 열심히 해보렵니다. 돈을 버는데 어찌 귀천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돈은 되는 일인데……. 막상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깊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빌고 싶습니다."

"어데예"

가잠나룻은 절망적이었다.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는, 우린이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소신으로 화장실에 가는 척 하며 자리를 피해서는 우린이 외삼촌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애프터신청에 우린이가 '몰라예', '어데예'라는 말로 거절만 한다고 했다.

"자주 전화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겠습니다. 우리는 꼭 만나야 합니다. 그렇게 믿고 오늘은 올라가겠습니다."
외삼촌과 전화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온 가잠나룻은 우린이의 말이 거절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상기된 표정으로 우린이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더 들었다, 놓았다. 그리고는 우린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가잠나룻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릴 태도였다.

"몰라예. 뭘 그리 자꾸 쳐다바예?"

그 때 마침 걸려온 외삼촌의 전화를 받은 우린이는 금새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구었다. 마음을 들켜 버린, 가잠나룻을 더 이상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심코 늘 하던 바대로 했던 '몰라예', '어데예'라는 말 때문에 번번이 놓쳤을 지나간 기회들이 얼마였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가슴은 다시 콩닥거리고 머릿속은 하얘졌다. 이제는 말투를 바꾸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때였다. 가잠나룻과 함께 하고 있는 그 순간이 그렇게도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