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으로 배우는 마음공부 2

편집부   
입력 : 2012-11-02  | 수정 : 201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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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佛心印)은
능히 선(善)을 나게 하고 능히 악(惡)을 막아낸다.
누구라도 악한 일을 안 하려고 작정하면
능지(能持) 능차(能遮) 다라니는 능히 악을 막아낸다.

위의 말씀은 말법시대는 다라니로써 흥왕한다는 대선언에 이어서 다리니로써 새겨진 불심인의 공능과 현현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다라니(陀羅尼)는 범어 dharai의 음역으로 총지(總持), 지(持), 능지(能持), 능차(能遮)라고 번역한다. 능히 모든 사물을 거두어 들여 잊어버리지 않는 염혜(念慧)의 힘을 말한다. 다라니는 '지닌다' '유지한다'라고 하는 의미를 가진 동사의 어근으로부터 온 단어이다. 다라니란 무엇인가를 보존하여 지닌다는 것이다.

반야경 계통의 오래된 경전에서는 다라니를 '지(持)'라든가 '총지(總持)'라 번역하고 있다. 정신을 통일해서 마음을 한군데에 집중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반야경' 등 초기 대승경전에서 다라니는 정신집중을 의미하는 삼매와 함께 거론되고 있다. 초기 대승경전에서 다라니라는 말은 경전을 기억에 담아두고 보존(保存)한다고 하는 억지(憶持), 문지(聞持)의 의미로 쓴 경우가 많다. '화엄경'이라든가 '반야경' 등 초기의 대승경전을 보면 다라니는 불법을 기억에 담아두고 보존한다고 하는 본래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점차 세월이 흘러가면서 다라니를 염송함에 따라 여러 가지 재난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제재(除災)의 기능이 덧붙여지고 주문(vidya)과 동일시되었다. 다라니의 의미가 넓어지면서 '대지도론'을 비롯하여 많은 경전에서 다라니를 기능별로 분류하여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대지도론'에서는 문지(聞持)다라니, 분별지(分別知)다라니, 입음성(入音聲)다라니, 오백다라니문(五百陀羅尼門)으로 분류하고 그 기능으로는 경전을 기억하고, 경전의 의미를 기억하고, 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삼마지를 얻어 괴로움를 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대지도론' 5권에 "다라니라고 하는 것은 능지(能持)라고 하며, 혹은 능차(能遮)라고도 한다. 능지라고 하는 것은 갖가지 선한 법을 모아 능히 지녀서 흩어지거나 잃지 않게 한다. 비유하면 온전한 그릇에는 물을 가득 부어도 물이 새지 않는 것과 같다. 능차라고 하는 것은 불선근(不善根)의 마음이 나는 것을 싫어하여 능히 생하지 않게 막는다. 또한 악한 죄를 짓고자 할 때에는 짓지 못하게끔 한다. 이를 다라니라 이름한다"라고 하였다. 결국 다라니는 선한 법은 모아 지녀서 흩어지거나 잃지 않게 하고 선하지 않는 마음은 생하지 않게 막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당 대종사께서는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은 능히 선을 나게 하고 능히 악을 막아낸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라니 염송을 실제로 실행하고 있을 때 다라니의 공능이 발휘한다고 하는 실천수행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다. 다라니를 마음에 새겨가며 심인을 밝혀갈 때 선한 법은 모아 지녀서 흩어지지 않고 악한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다라니는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을 의미한다.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하는 것은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을 행주좌와 어묵동정으로 항송하여 간다는 뜻이다. 육자관행이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마음에 항상 행해질 때 본래의 내 마음인 본심은 오롯이 밝아진다. 그 본심이 온전히 드러났음을 스스로 깨쳤을 때 그 마음이 곧 심인이며 불심인이다. 또한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이라는 구절은 회당 대종사께서 육자진언 염송을 통하여 불심인을 깨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다. 깨닫기 위한 다른 수행의 요건들이 성숙했을 것이나, 육자진언의 염송이 주된 요소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회당 대종사께서는 진언을 염송하여 밝혀진 심인이 곧 불심인임을 깨치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전하고자 한 말씀이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이라 한 것이다.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기는, 즉 육자진언을 일심으로 염송하는 과정과 그 과정을 통하여 밝혀지는 심인과 그 심인이 불심인 임을 깨치는 그 과정을 모두 드러내고자 한 말씀이 "다라니를 내 마음에 새겨 있는 불심인"인 것이다.

실행론심화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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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도원 정사


(콩트)평상심을 일깨우는 힘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떠한 말로도 단 한마디로 단정해버리기에는 양이 차지 않는다. 혼돈도 이런 혼돈이 없을 것이다. 혼돈이라고 단순하게 치부해버리기에도 너무나 낯선 느낌이다. 어떤 휘들램에 가력돼 앞도, 뒤도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다. 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군대 훈련병시절 화생방훈련장이던 가스실에서 겪었던 바처럼, 몽롱한 상태로 가리사니가 서지 않던 그 순간과도 같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졸아드는 기억이지만, 그 당시 가스실에서 겪었던 그 경험은 딱히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오묘한 경계선상의 일이었다. 정신 줄을 놓지도 않고, 그렇다고 온전하지도 않은 상태의 경계. 실제로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중음신이 처한 입장이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지금이 딱 그렇다. 진이는 얼어붙은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중국여행길에 비림을 구경하고 나와서 길을 잃어버렸다. 비림 앞과 옆으로 늘어선 거리에는 좌판을 놓고 붓과 벼루며 먹 등을 파는 상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진이는 일행들과 좌판을 둘러보며 한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붓 한 자루를 발견했다. 진이는 마음이 동해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얼마냐고 물어보려던 순간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길거리에서 물건을 고르고 살 때는 조심을 해야된다면서 들려준 말이었다. 댓바람에 흥정을 시작하지 말고 어느 정도 뜸을 들이다가 관심 없다는 듯이 지나쳐가면서 설핏 가격을 물어보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진이는 그 말을 좇아 한참이나 딴전을 피다가 어렵게 마음에 들었던 붓을 사서 기분 좋게 일행들이 지나쳐 갔을 길을 따라 천천히 구경을 하며 걸었다. 한참을 가도 일행들은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이 들었다. 잰걸음으로 길을 재촉하다보니 좌판이 늘어선 거리 끝에 굽어진 찻길 터널이 나타났다. 터널 앞으로 다가가자 교통경찰이 가로막았다. 진이는 일행들도 되돌아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는 수 없이 길을 되돌아 나오며 옆으로 난 길이 있는지를 살폈다. 어느새 붓을 샀던 그 좌판 앞이었다. 어리둥절해지기 시작했지만, 마음을 다잡고 비림 입구 쪽으로 내달렸다. 비림 입구에 서서 한참을 망설일 때 왼쪽으로 꺾어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눈에 들어왔다. 진이는 일행들이 그 쪽을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눈을 부릅뜨고 한 사람, 한 사람 뜯어보다시피 하며 한참을 가도 일행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는 붓 때문에 이 지경이 됐지만, 그렇다고 붓이 원망스럽다거나, 버릴 마음은 없었다. 진이는 오히려 붓을 든 손을 더 꽉 거머쥐었다. 그 길 막다른 곳에서 진이는 다시 발길을 되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시 비림 입구에 섰다. 머릿속이 몽롱해지면서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발바닥은 길에 눌어붙어 버렸다.

그 순간에도 진이는 과거 어느 때 이런 일을 겪었던 듯한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길을 잃었던 상황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혼돈의 순간과도 같은, 일종의 늪을 지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순간 아련한 기억 속의 일을 다시 꺼내서 겪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 것이다. 환영과도 같은 사태를 직면하고 있는 기분이기도 했다. 이런 환영에 휩싸여 있다가 시나브로 제자리로 돌아가며 허상에서 놓여지는 찰나는 싱겁기 그지없었다. 잠을 자다가 허깨비에 압도당해 가위눌렸을 때처럼, 중요한 것은 호흡을 가다듬고 가만히 있으면서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사실도 터득했다. 허영에서 벗어나려고 억지로 발버둥을 쳐봐야 헛발질일 수밖에 없다는 경험으로 미루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누누이 겪어봐서 알았던 터다. 진이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혼이 빠져나간 듯 했다. 온 몸이 짓이겨진 것처럼 힘이 없고 정신은 더욱 혼미해져 갔다. 그러는 가운데 일행들이 자기를 얼마나 찾을까 하는 걱정도 덤으로 엄습해왔다. 일행들을 제대로 따라다니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좁은 골목길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자신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면서 오줌까지 지렸다. 게다가 눈썰미조차 없는 창피함도 폐부를 파고들어 감당할 수 없는 황당함에 하늘이 노랗게 보이기까지 했다.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진이는 기력이라고는 하나 없이 주저앉은 자리에서 마음 속으로 '옴마니반메훔'을 외쳤다. 진이는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하염없이 그 자리에 눌러앉아 있을 수가 없어 몸을 일으켰다. 비림을 구경하고 나와서 일행들과 함께 걸어갔던 기억을 더듬으며 후덜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길 가장자리에 늘어서 있는 좌판 사이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문제의 붓을 샀던 좌판까지는 또렷하게 기억됐다. 그곳에서 멈칫하다가 가던 길을 재촉했다. 조금 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사잇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이곳저곳을 다 돌아볼 시간이 없을 듯해 곧장 앞으로만 걸었다. 길 끝에 차들이 다니는 굽은 터널이 다시 나타났다. 막다른 곳에 다다르자 다시 막막해졌다. 그런데 터널 옆으로 나 있는 좁은 인도가 그제야 보였다. 왜 저 길을 미리 보지 못했을까 하는 어리석음을 질타하며 곧장 그 길로 접어들었다. 터널 옆으로는 꾀 넓은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터널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다리이고, 좁은 길은 사람이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망루를 위에 이고 있었기 때문에 터널은 산을 뚫고 낸 길처럼 길고 어두운 굴 같아 보일 뿐이었다. 터널 옆 모퉁이를 돌아서자 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넓은 광장이 나타나면서 일행들이 타고 왔던 관광버스가 보였다. 강과 터널을 경계로 이쪽과 저쪽을 나누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높다랗게 다리 위에 올라앉아 있는 망루 때문에 뒤편의 광장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진이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관광버스가 주차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관광버스 운전기사들이 버스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그늘 아래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일행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진이가 관광버스 앞으로 다가갔을 때 차 문도 닫혀 있었다. 차안에 타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진이는 관광버스 운전기사들이 서 있는 곳에서 좀 떨어진 나무그늘을 찾아 의자에 앉았다. 순간의 현기증 같은 것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놓여 굳었던 얼굴까지 확 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옴마니반메훔……."

진이는 '옴마니반메훔' 염송을 하면서 어이없는 한 때를 되돌려 생각해 보았다. 낙오자가 될 뻔한 아찔한 기억이 생생하다 못해 마치 지독한 악몽을 꾸었던 것처럼 몸서리쳐지게 느껴졌다. 낯선 곳에서 순간적으로 당한 허둥거림이 '감주 먹은 고양이상 같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들면서 길치인 자신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머니의 태중부터 마음 속 깊이 새겨 놓고 늘 염송했던 육자대명왕진언 '옴마니반메훔' 진언의 힘으로 미아위기의 터널을 뚫고 나온 것을 인식하며 안도할 수 있었다. 그 때 오줌을 지렸던 생각에서 바지를 내려다보았다. 어느 새 바지는 말라 있었다. 얼룩도 지지 않아 안심했다. 그제야 혼돈상태에서 벗어나 제법 느긋한 마음으로 붓을 싼 신문종이를 벗겨내자 고양이털로 만들었다는 하얀 붓끝이 햇살을 받아 반짝거렸다. 진이는 문제의 붓을 가슴에 안고 붓 대롱에 가볍게 키스를 날렸다.

정유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