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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것이 본래의 모습

편집부   
입력 : 2012-04-02  | 수정 : 201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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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어디에서 찾을 수 없는 고귀한 모습이고 그 속에서 모든 것들이 완전하게 이루어 질 수가 있다. 개개인이 아무리 훌륭하고 뛰어나도 그것은 고상한 자태이지 결코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다. 조화를 이룰 때 더욱 빛이 난다. 자연도 원래 조화로운 모습이다.

사람들이 산과 들을 찾는 것은 산과 들에 피어 있는 꽃과 나무를 감상하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은 어울려진 그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 속에 어우러져 있다는 생각에 생기가 돌고 기운이 생기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세 가지의 사람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이미 자기가 가진 것을 주위와 조화를 이루며 소중히 알고 옳게 쓰는 사람, 둘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 그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 셋째는 자기가 가진 것을 잃어 버려도 그것이 소중한 줄 모르는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 대다수가 두 번째 경우이다. 무엇인가를 가졌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한 줄 알게 되고 정녕 가지고 있을 때는 그 고마움과 소중함을 잘 모른다.

사람이 더불어 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회당 대종사께서도 부부를 예로 들어 많은 말씀을 하셨다. 부부가 같이 살 때는 좋은 점과 나쁜 점에 의해 어울리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해서 서로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 기회마저 없어지면 그때가 더욱 간절해지고 아쉬워 진다. 사람도 그 사람이 가고 나면 그 사람의 자리가 더욱 커지는 법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서로의 생각, 성격이나 취미 등이 맞지 않아서 대립할 때는 마음에 많이 맺히고 쌓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인과관계를 깨쳐보면 그것도 일시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상대에게 더 잘해주지 못하고 상처 준 것을 후회한다. 어쩌면 나중에는 그럴 사람이 없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고 애절하다.

노자의 '도덕경'에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빛을 줄여 온화함으로 세상과 조화를 이루라'는 가르침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능력을 더 발휘하려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은 더욱 멀어져간다. 자신만의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하심으로 경청하고 배려하여 상대방의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부처님도 세속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고 중생을 받들었다.

세간에서 잘 나가는 사람을 용에 빗대어 말하기도 하는데 주역에는 다양한 종류의 용이 등장한다. 잠룡(潛龍·물 속에 잠겨 때를 기다리는 용), 현룡(見龍·방금 세상 밖으로 나온 용), 척룡( 龍·세상의 두려움을 아는 용), 약룡(躍龍·한껏 도약하는 용), 비룡(飛龍·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용), 항룡(亢龍·끝가지 높이 올라간 용)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최고 단계인 항룡의 경우는 대부분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亢龍有悔) 사람도 최고가 되면 교만해져 그 상은 독이 되어 결국 곤궁해지게 된다. 항룡이 후회하지 않으려면 적정(適正)함 속에서 지족하고, 적극적인 변화를 꾀하지 말며, 따뜻함으로 주위와 조화를 이루어 겸손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회당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온화한 가운데 모든 것이 순조롭게 번영해 나가고 성취할 수 있다. 온화하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을 짓는 습관이 고질 되어 알면서도 고치기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을 수 있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를 수 있듯이, 따뜻함과 부드러움으로 그 동안 훈습돼온 온갖 악습에서 벗어날 때 자신의 의미와 가치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능원 정사/종조법어연구모임 연구위원·대명심인당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