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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침묵

편집부   
입력 : 2011-05-13  | 수정 : 201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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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말에서 비롯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인 듯하다. 그래서 옛 사람들도 시조나 가사(歌辭), 일화를 통해 말 많은 것이 화를 불러옴을 경계했나 보다. 선인들은 입이 한 개고 귀가 두 개임을 들어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라고 가르친다. 돌이켜보면 일상생활에서도 침묵이 문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이 많으면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말과 침묵의 균형이 중요하다. 옳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해서는 안 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될 때'가 있으며, '해서는 안 될 사람'도 있다. 말하기 전 듣는 사람의 입장과 처지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실수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남김없이 말을 쏟고 나면 잘못을 범하지 않았더라도 허탈해진다.

카프카의 짧은 산문 '사이렌의 침묵'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국 이타카로 귀환하던 중 바다에서 조우한 요정 사이렌(Siren)의 유혹으로부터 온전히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가희(歌姬)들의 새된 노래 소리가 아닌, 침묵에 대비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침묵의 중요성을 낯설게 일깨우는 카프카적 언어의 변주요, 레토릭이 아니겠는가.

미국의 남성 듀오 사이먼과 가펑클은 영화 '졸업'에 삽입된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에서 "사람들은 지껄일 뿐 진심을 담아 말하지 않고(People Taking without Speaking)", "흘려들을 뿐 귀담아 듣지 않는다(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고 노래한다. 사물의 겉모습이나 드러난 현상에 혹하지 말고 사물의 본질을 보라는 메시지가 녹아있는 것이다.

말한다고 참으로 말하여지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보인다고 정작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사물의 참모습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거나 들리는 것의 이면에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말하는 '소리를 본다(觀音)'라는 표현도 마찬가지 이치를 말하는 것이 아니랴. 플라톤이 설파한 '이데아(Idea)의 세계'와 칸트가 언급한 '물자체(物自體·Ding-An-Sich)'도 같은 맥락으로 와 닿는다.

김창식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