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종합문화요 예절이며 역사”

편집부   
입력 : 2008-10-29  | 수정 : 200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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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진각다인 생활 삼무외 보살

밀각심인당 다실 연후 진각다회로 발전
(사)진각차문화협회 설립 후배들 지도
차 관련 소장품 등 전시할 공간마련 꿈

“우리 차를 배우고,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우리 한국문화를 아끼고 지켜나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촉촉한 가을비가 내리는 10월의 주말, 30년을 차와 함께 보낸 진각다인(茶人) 박영숙(삼무외․밀각심인당 신교도) 보살을 만났다. 때마침 이날 마련된 사단법인 진각차문화협회의 특강덕분에 약속장소에 들어설 때부터 은은한 차향이 먼저 반겼다. 가을비와 차향이 오늘의 인터뷰를 더욱 설레게 했다.

오늘날 차(茶)라는 것은 식사 후나 여가 시에 즐겨 마시는 기호음료를 말한다. 하지만 단순히 기호음료를 떠나 반평생 차와 함께 살아온 삼무외 보살은 “차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종합문화요, 예절이며, 역사”라고 말했다.

차를 말하는 그의 눈과 입에서 반짝이는 생기가 그가 가진 차에 대한 애정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인 1991년 서울 성동구 도선동 밀각심인당에 처음으로 다실(茶室)을 연 삼무외 보살은 전국 심인당의 모든 신교도들이 차를 배우고,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각다회’를 창립하기에 이른다. 현재 진각다회는 2007년 5월 사단법인으로 전환하고 ‘진각차문화협회’로 명칭을 바꿨다.

진각다회를 20년간 지켜온 삼무외 보살은 올해 3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물러났다. 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난 소감을 묻자 지긋이 웃으며 “차를 2, 3년 배우고 나서 차를 가르치기엔 차의 세계는 너무나도 넓다”면서 “나도 아직 부족함을 느끼지만 후배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매일같이 정진ㆍ수행하는 모습이 감사하기 때문”이라며 후배들을 격려했다.

그와 차의 첫 인연은 평범하지만은 않았다. 문학도였던 그는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이 좋았으며 문학을 공부하면서 차를 알게되었고, 차가 글의 소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차 공부를 시작한 것이 주객이 전도되어 30년을 다인으로 살게 한 것이다. 그만큼 차는 무한한 매력을 갖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각종과 인연을 맺고 사분정진(하루를 4번 나누어서 정진하는 수행방법), 삼정진을 빼놓지않고 수행하면서 많은 묘득을 얻어 진각종에도 더욱 애정이 생겨 심인당에 다실을 마련하기에 이른 그는 1994년 종조열반 30주년 기념행사에서 첫 헌공다례(현재의 육법공양)를 올리면서 진각다회를 이끄는 삶을 시작하게 됐다.

차와 불교를 함께 공부하는 삶을 묻자 “차와 불교의 끝은 같은 것”이라며 “좋은 차를 우려내기 위해 좋은 물ㆍ좋은 불을 구해 맛있는 차를 끓여 내면 그 맛에서 신령스러움이 나타나고 더 나아가면 삼매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그는 이어 “삼매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묘각을 이루는 것이며, 불교도 궁극적으로 각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차와 불교는 수행방법이 조금 다를뿐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결국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예로부터 차를 만들고 물을 끓여서 우려내어 마시는 다례ㆍ다도의 과정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참선(參禪)과 둘이 아니어서, 수행의 하나로 보아 선수행과 마찬가지로 자기완성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인정되었다. 그는 이러한 다도를 진각종의 모든 진언행자가 같은 마음으로 익히길 바라며 육법공양을 정착시키고, 다도교실을 열었던 것이다.

다회를 이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묻자 마냥 좋았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해 그저 가르치는 시간만 기다려졌던 그때의 그 열정이 새삼 그립다며 그때를 회상한 삼무외 보살은 “보통 이름없는 소박한 풀꽃으로 다과상을 꾸미곤 하려고 하루종일 풀꽃을 찾으려 땅만 보고 걸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하찮은 풀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우주와도 같은 깊은 묘미가 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아직도 소녀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후배들의 말을 빌리자면 아직까지도 책 한권을 가슴에 품고 학교 교정을 거닐며 시를 쓰고, 배운다고 한다. 그런 그를 보며 자신들도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그가 이뤄놓은 지금의 다회를 지켜나가야겠다고 전했다.

신라, 고려시대에는 음다(飮茶)풍습이 성행하였으나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위축되기 시작해 임진왜란을 계기로 쇠퇴해가고, 배불숭유(排佛崇儒) 정책의 탓으로 차 문화는 점점 사라져 갔다. 웰빙이라는 말이 생겨나면서 다시금 차 문화에 관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다회를 이끄는 일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다도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이다. 연등회와 팔관회부터 이어져온 육법공양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인데, 전통과 역사가 무너지면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한다”는 삼무외 보살은 찬란한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에 뺏기고 삼국만 남은 역사와 독도를 일본에 뺏길 위험에 처한 지금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나라가 있는 백성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도 차를 가르치면서 아주 무섭게 강조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지키는 것”이라며 “전통문화가 없는 나라는 야만의 나라와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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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무외 보살은 “차만 따른다고 해서 다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차는 종합문화와 같아서 예절과 지식, 전통복식, 문학, 서예, 동양화, 전통무용, 가야금 같은 전통악기 등 어느 하나 빼놓지 않아야 다인다운 다인이 된다”고 했다. “비록 나는 고전무용이나 가야금은 못해 아직 부족함이 많지만 후배들은 더 많이 보고, 듣고, 배우길 바란다”며 “금년에 절실히 느낀 것 가운데 하나가 책 속에 이 모든 것이 들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독서율은 정말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지적했다.

삼무외 보살은 “제대로 보고 배우지 않기 때문에 일반 시중에서 일본차와 중국차가 비싼 값에 널리 팔리고, 한국의 차는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 차를 제대로 배운 다음 올바른 차정신이 밴 몸으로 다른나라 차를 배워야 하는데 요즘은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치중해 일본의 다도문화를 따라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현실이 아쉽다”고 한다. 진각차문화협회가 앞으로 더욱 발전하고, 서울 밀각지부와 수원 유가지부를 이어 전국지부가 발족되면 종단차원에서 다도와 예절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마지막 바람은 반평생 차와 함께 살아온 그의 삶과 소장품을 전시할 수 있는 작은 전시관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한다. 차향 그윽한 삼무외 보살의 인생이 담긴 그 곳을 찾을 날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끝으로 가을에 어울릴만한 차를 추천해달라는 기자에게 “차는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며 “대부분 잎이 펴지지 않은 상태의 여린 새순을 따서 만든 여린차인 세작 중에서도 곡우 전에 따서 가장 여린 고급차를 우전(雨前)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우전차가 가장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막차를 추천하고 싶다”고 한다. “가장 딱딱하고 큰 잎으로 자라난 막차는 숭늉대신 끓여 먹을 만큼 그 맛이 구수한 가장 한국적인 맛인 것 같다”며 “오늘같이 비가 오고 쌀쌀한 날 목이 따끔거릴 때, 평소 마시는 차보다 2배 정도 더 넣고 뜨겁게 우려내 한잔하면 어느새 감기도 훌쩍 달아나 버린다”고 귀뜸해줬다.

11월로 접어드는 요즘 쌀쌀해진 날씨 탓에 따끔거리는 목을 위해 오늘은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해야겠다.

김보배 기자 84bebe@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