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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행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편집부   
입력 : 2008-05-01  | 수정 : 20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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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된 것을 멸하려면 먼저 바른 것을 세워야 한다. 밝음을 세우면 어둠은 스스로 물러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밀교에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 아닌 현정파사(顯正破邪)를 말하는 것이다. 밀교의 구경은 방편이다. 그러나 모든 방편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불보살의 자리에서 하화중생(下化衆生)을 위한 방편이어야 하는 것이다. 파사의 명분을 성취하려면 먼저 현정을 세워야 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서로 상대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성불을 관하는 입장에서 참회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현세계에 있어 중생계의 가장 큰 고통은 불화고(不和苦)이다. 그래서 진각성존 회당대종사께서 이른바 진각종 삼고(三苦) 가운데 가장 중요한 근본 고통을 불화고라 하신 것이다. 불화고가 만연한 지금, 전국의 진언행자들은 어떠한가. 성스러운 스승강공이 열리고 있는 장소에 파사현정의 메아리가 어지럽고, 승속동행의 종풍을 자랑하는 종단에서 신교도와 스승이 등을 돌린 채 막말을 주고 받았다. 종단의 마지막 보루인 총인의 위상을 심각하게 폄하하는 피켓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스승과 교도가 한둘이 아니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누구를 위한 정법수호이고, 무엇을 위한 종법수호인가. 폭력과 폭언, 소송과 배척은 더 이상 방편이 아니다. 마지막 수단은 다 동원되었다.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문제의 원인은 한가지였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생활불교의 종단으로서 가족처럼 오손도손 신행을 하는 이 종단에서, 뒤돌아보면 스승과 교도가 모두 도반이었던 이 종단에서, 신뢰는 신앙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두사람의 아집에서 비롯되었다. 역사는 항상 자기주장, 아집과 법집을 가진 자들이 망친다. 겉으로는 애종심이니, 이타심이니 외쳐도 내심에는 오직 자기중심의 소아병에 걸려 삼마지 허공을 다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을 더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진각종단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은 중앙집권제의 시스템이다. 법인인 유지재단과 행정조직인 통리원을 중심으로 희사금의 헌상이라는 연결고리가 종단을 유지하는 근간인 것이다. 이것이 무너진 자리는 명분을 잃는다. 특히 파당이나 분종형태로 오해될 수 있는 어떤 조직의 확대도 온당하지 않다. 그리고 더 이상 실정법에 매달리는 무의미한 행위도 중단되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과 해결의 수순은 선명해 졌다. 대부분의 실정법송사는 불기소처분이나 무혐의로 일단락 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어느 쪽이든 절차의 문제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실정법적으로 처벌을 받아야 할만큼 중대 범죄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세간의 잣대가 이러한데도 왜 실체를 외면하고 자꾸 벼랑 끝으로 나아가려하는가. 나아가면 그 끝은 자명한 것이다. 나아 갈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진각종단은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다. 개인이 아닌 종단이 먼저이고, 어떤 경우에도 종단의 중심을 호지하려는 것이 법계 법신의 뜻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당체법들은 어느 개인의 유불리가 아닌, 종단의 중심을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법계통합력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봉축의 등불을 밝히는 계절이다. 바른 것을 세우는 현정파사의 계절인 것이다. 등은 지혜를 밝히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등만 밝히고 지혜는 밝히지 못하는 이 칠흑의 무명자리를 벗어나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