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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기명칼럼 수미산정(480호)

편집부   
입력 : 2007-11-02  | 수정 : 200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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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은 체, 세간법은 그림자이다)

진각성존 회당 대종사의 핵심 가르침의 요체는 ‘불법은 체, 세간법은 그림자’라는 법문이다. 왜 회당 대종사께서 이 법문을 설하셨겠는가. 한마디로 종단의 중심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이다. 종단법이 중심일 뿐, 세간의 법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진실로 회당 대종사의 제자요, 진각종도들이라면 이 법문을 무시해서 안 된다. 곡해해서도 안 된다. 문자 그대로 종헌, 종법을 바로 하고 지키되, 세간법으로 달려가지 말라는 것이다. 세간법이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종사(宗事)가 그것을 좇게 되면 그것에 휘말려 모든 것이 더 헝클어지기 때문이다.

현교는 심본색말(心本色末)이요, 밀교는 색심불이(色心不二)이다. 체가 굽으면 그림자도 굽고, 체가 곧으면 그림자도 곧은 것이다. 굽은 그림자로 체를 바룰 수 없는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세간법을 따르게 되면 시시비비를 가려야하고, 가린다 해도 그 인과가 끝이 아니기 때문에 체로 돌아오라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모든 세간법은 접고 체로 돌아와야 한다. 진정 애종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각종단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불법과 종조님의 법이다. 다음은 그 법을 지키기 위해 성문법이든, 불문율이든 세간법의 형태를 빌어 만든 종헌, 종법이다. 작금의 종단 안팎을 우려하게 하는 당체법문들은 창종 60주년을 즈음하여 이 법을 더 확고히 하라는 것이다. 힘이 있다고 법을 무시해서 안 되고, 법이 허술하다고 법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아무리 급해도 법은 지켜야 하고, 남은 안 지켜도 나는 지켜야 법계가 나를 돕는다. 스승이든, 신교도이든 사람의 공명은 무상할 따름이다. 사람을 따르지 말고 법을 따라야 한다.    
  
(무위법(無爲法)에 머무르자)

유무 두 법을 쓸 줄 알면 최고 발전하고 장원하지만, 만약 유위세력으로 널리 증익 못하거던 무위법에 주하여 보리심만 관하라 하였다. 현시대는 물질시대이기 때문에 유무 두가지 법을 모두 쓸 줄 알아야한다. 하지만 유위법으로 증익이 안 될 때는 무위법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유위법도 중요하다. 그러나 ‘증익’이라고 하는 요익중생이 되지 못할 때는 무위법을 쓰라는 것이다. 증익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중생의 증익은 이기심(利己心)에 머물게 되지만 보살의 증익은 이웃과 사회를 위한 이타심(利他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유위법은 삼업(三業)으로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고, 무위법은 삼밀(三密)로 일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일이 어렵다고, 삼밀의 종단에서 삼업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방편도 아니다. 방편은 이타행을 위해서만이 법이 된다. 삼밀은 기도가 되어 공덕이 있지만, 삼업은 마장이 되어 도로 업으로 남을 뿐이다.

무위법에 주하라는 말은 자기를 주체로 보지 말고 객체화하라는 것이다. 현대인은 일반인이든 종교인이든 너무 자신을 미화하거나 자기예찬에 빠져 있다. 무위법에 머무르면 독선과 아집을 벗어나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볼 수 있다. 무상을 본다는 것은 나를 객관화시킨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삼업조차도 신구의로 직접적인 업만 지었지만,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지금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을 통한 간접적인 삼업을 짓는다. 익명성이라하여 지은 업조차 익명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똑 같은 물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는 것처럼, 문명의 이기도 잘못 사용하면 무기가 되거나 흉기가 된다. 업을 업으로써 대항하지 말고, 삼밀로써 대처해야 한다. 지금 삼밀의 종단에서 무위법에 주하기보다는 너무 깊숙이 유위법에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언행자 모두 되돌아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