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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잊혀진 가람탐험

허미정 기자   
입력 : 2005-05-30  | 수정 : 2005-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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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사지 단어를 떠올리면 여기 저기 흩어진 주춧돌과 돌보는 이 없어 무성하게 자라난 풀숲사이로 황량한 벌판이 그려진다. 오천년 역사의 그루터기이건만 폐사지라는 이유로 세월의 어둠 속에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옛 절터, 폐사지는 정확한 조사자료는 없지만 대략 3천2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이 가운데 세상에 알려져 세인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100여 곳 뿐이다. 3천여 개가 넘는 폐사지들 가운데는 오히려 현존하는 사찰보다 규모가 큰 대형 가람에서 스님들과 민중들이 한국불교를 일구었으며, 또 그 시대사상과 정신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몇몇 흔적들로 그 시대를 상상할 뿐이다. 폐사지를 통해 세월의 징검다리를 건너듯 장지현 시인의 전국 폐사지 순례기 '잊혀진 가람탐험'은 한국불교의 과거, 나아가 우리 역사의 한 가운데로 인도하고 있다. '잊혀진 가람탐험'은 시인이자 밀교신문 주필인 저자가 4년 간 동해의 최북단 강원도 양양 진전사지에서부터 제주도 법화사지에 이르기까지 기다리는 이 없는 절터를 수시로 출입하면서 잃어버린 한국불교의 과거를 통해 오늘을 찾고자 노력한 흔적이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불교신문에 연재되고, 불교방송을 통해 다루어졌던 내용을 묶은 이 책에는 양양 진전사지, 여주 고달사지, 충주 미륵대원지, 서산 보원사지, 익산 미륵사지, 제주 법화사지 등 9개 도에 흩어져 있는 35곳의 폐사지를 소개하고 있다. 전국의 폐사지 중 저자는 원주 일원의 정산리 거돈사지와 부론의 법천사지, 지정면의 흥법사지 등 강원도 3대 폐사지를 대표적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거돈사지에 들어서면 수령 1천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3층 석탑(보물 제750호), 화강석 불대좌 등이 조화를 이뤄 거돈사지 특유의 애잔한 모습을 연출한다. 또한 사력(寺歷)을 증언해 주는 각종 석물들이 절터 왼쪽에 즐비하게 누워있어 분명 폐사지이기는 하지만 황량한 느낌보다는 꽉 채워진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 여느 폐사지를 답사할 때와는 사뭇 다르다고 술회한다. 또 400년 만에 위용을 드러낸 조선 국찰 양주 회암사지는 저자의 발길을 한 동안 머무르게 한 곳으로, 명성이 국찰인 만큼 한두 번의 발걸음으로 끝내기는 벅차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수시로 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 곳 중의 또 한곳인 합천의 영암사지는 황매화 같이 신령한 힘과 기상이 분출되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영암사지 건축에 깃든 옛 사람들의 예술적 미학은 금당의 석단 4면에 돋을 새김을 한 여덟 마리 사자, 불대좌 기초석의 팔부중상, 금당계단 소맷돌의 가릉빈가 조각상 등 절터 구석구석 어느 한 곳 빼놓을 것 없이 섬세하고 감미롭다고 극찬하고 있다. 더욱이 시인의 맑고 감성적인 언어와 사진으로 폐사지 곳곳을 정성스레 소개한 이 책은 문두루비법으로 당병을 물리친 밀교성지 경주 낭산 사천왕사지와 신라의 밀교승 혜통이 창건한 밀교사찰로 추정되는 무안 총지사지 등은 밀교 관련 내용으로 눈여겨볼 만하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부도, 탑, 석등, 당간, 당간지주 등 석물 각부의 명칭에 대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역사의 성보를 캐낸 저자의 땀방울이 헛되지 않게 한다. 저자는 "폐사지를 찾고 또 그곳의 자료를 찾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나 자신에게 일종의 탐험이자 구도의 방편이었다"는 말로 힘들었던 여정의 심경을 토로하며 "앞으로는 이번 책자에 수록되지 못한 남한 내의 대표적 폐사지들을 2차로 묶어내며, 머지않아 북녘 땅의 폐사지도 답사할 것"이라고 밝혀두고 있다. 허미정 기자 hapum@milgyo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