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열네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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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조공의 딸

열여섯 소녀의 화두


[회전]7면 자료사진.JPG
인도네시아 보로부드르에서 만난 부처님 둥근 탑 속에서 아침해를 맞이하고 계시다.<사진 김용섭>

 

열여섯 살 소녀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낼까요? 학교 공부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고, 그 밖의 시간이면 친구를 만나 맛있는 것 사 먹고, 외모에 신경 쓰고, 아이돌에 환호하고, 인터넷이나 유튜브 등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화제를 공유하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낼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 당시 인도땅 알라비 나라에 살고 있는 직조공 한 사람에게 열여섯 살 딸이 있었습니다. 소녀는 아버지를 도우며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법문의 내용은 다름아닌 죽음이었지요.

 

사람들이여, 들어 보십시오. 삶이란 것은 참으로 불확실합니다. 반면에 죽음은 확실합니다. 여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죽지 않을 사람 있습니까? 산다는 것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됩니다. 삶은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죽음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죽음에 대해 늘 

인지하며 지내십시오. 죽음에 대해 새기지 않는 사람은 삶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 독사를 보고 겁에 질려 떨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합니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늘 새기며 지내는 사람은 담담하게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마치 아무리 맹독을 가진 뱀이라 하더라도 몽둥이를 가지고 몰아내는 것처럼 두려움에 떨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부처님의 이 법문을 듣고 아무런 공감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시큰둥하였지요. 하지만 딱 한 사람, 직조공의 열여섯 살짜리 딸은 전율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부처님 말씀대로 이제부터 나는 죽음에 대한 새김을 닦으리라.”

 

부처님은 알라비국에서 법문을 마친 뒤 코살라국 기원정사로 돌아가셨고, 소녀는 그날 이후 밤낮으로 죽음에 대해 사색했습니다. ‘나는 죽는다. 삶이란 불확실하고 결정되어 있지 않지만 죽음은 확실하고 결정되어 있다라는 새김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냈지요.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웬만큼 구도심이 굳센 수행자가 아니라면 한 가지 화두를 들고서 3년을 지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여섯 살 소녀는 3년을 내내 죽음에 대한 새김으로 일관했습니다. 부처님은 비록 소녀가 살고 있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냈지만 당신의 법문 한 자락에 온 인생을 걸고 사유하고 있는 소녀를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다시 알라비국을 찾았습니다. 온 나라 사람들이 부처님 계신 승원으로 모여들었지요. 소녀도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3년 동안 내게 숙제를 안겨 주신 부처님께서 오셨다. 황금처럼 반짝이는 분, 그 분을 뵈러 가야겠다.’

 

소녀가 외출할 준비를 하는데 직조공인 아버지가 딸을 불렀습니다.

 

얘야, 내가 지금 급히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심부름을 좀 해야겠구나. 베틀의 북을 채워서 가지고 오너라.”

 

예전에는 자식들에게 매질도 서슴지 않았기에 소녀는 아버지 심부름을 미루거나 어기면 자신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은 부처님 계신 승원으로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심부름부터 마치기로 했습니다.

 

마침 아버지의 베틀의 북을 채우려고 가는 길에 부처님 법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일찌감치 모여서 부처님께서 한 말씀 하시기만을 기다렸지만 부처님은 침묵한 채 자리에 앉아 있었지요. 부처님이 이곳에 온 이유는 3년 동안 죽음의 새김을 이어온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이니 바로 그 주인공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신 겁니다. 그런 사연을 모른 채 소녀는 지나가다가 멀리서 부처님을 바라보았는데 부처님은 고개를 들어 소녀와 눈을 마주쳤습니다. 소녀는 부처님 광채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갔지요. 그러자 부처님은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지?”

 

소녀가 대답합니다.

 

알지 못합니다.”

 

어디로 가는 길이지?”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감히 부처님에게 저렇게 무례한 대답을 하다니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여자애라는 비난이 조용히 일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다시 소녀에게 물었지요.

 

그대는 알지 못하는가?”

 

저는 압니다.”

 

그대는 아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알지 못합니다.”

 

부처님 질문도 아리송했지만 그 질문을 대하는 소녀의 자세는 사람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사람들의 수런거림이 점점 높아지자 부처님께서 다시 물었습니다.

 

소녀여,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왜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아버지 집에서 온 줄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질문을 하신 것은 틀림없이 제가 태어날 때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잘 알지 못하기에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는 왜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지?”

 

세존께서는 제가 아버지 심부름을 하러 가는 줄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그리 물으신 것은 분명 제가 죽은 뒤 어디로 갈 것이냐는 질문이라 생각해서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알지 못하느냐고 물었을 때 왜 안다고 대답했지?”

 

저는 틀림없이 죽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느냐고 물었을 때는 왜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지?”

 

세존이시여, 저는 틀림없이 죽을 것임은 알지만 그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를 모르기에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님은 소녀의 대답이 정확했다고 인정하시며 이런 이치를 간파하지 못한 대중을 향해 그물을 벗어난 새처럼 하늘로 날아가는 자는 드물다고 찬탄했습니다.(법구경174번째 게송의 인연이야기)

 

소녀는 부처님의 찬탄이 끝나자 성자의 첫 번째 단계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소녀는 서둘러 아버지 심부름을 마치려고 부랴부랴 작업장으로 달려갔는데 그만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부처님은 소녀의 그 날이 이승의 마지막임을 알고 찾아오신 것만 같습니다.

 

애초 부처님의 법문처럼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죽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나이 순서로 오지 않습니다. 속절없이 삶을 마치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그렇기에 살아가는 이승에서 진리의 한 대목을 깊이 사색하여 성자의 대열에 들어간다면(예류과) 수명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그 삶은 복된 삶이요, 결코 헛되지 않은 시간이라 합니다.

 

열여섯 살에 우연히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삶과 죽음을 3년 동안 사색한 소녀. 너무나 짧은 일생이지만 소녀는 성자로서 삶을 마쳤습니다. 이따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가 있는데 소녀의 일생은 늘 본보기가 됩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