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만난 사람, 붓다가 만난 사람-열세 번째 인물

밀교신문   
입력 : 202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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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의 수행

할머니 수행자의 오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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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살라국 싸밧티(사위성)의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여인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해서 자식을 열 명 낳자 그 여인에게는 바후뿌띠까란 별명이 붙었습니다. 자식이 아주 많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출가했습니다. 그녀 홀로 자식들을 길렀지만 재산이 넉넉했던 터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요.(일설에는 아들이 일곱, 딸이 일곱이고, 남편과는 사별했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장성하자 바후뿌띠까는 아들딸에게 골고루 재산을 나눠주었습니다. 자신 몫은 한 푼도 남겨놓지 않아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자식들이 재산을 물려받으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저희가 돌아가면서 잘 모실 테니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믿었기에 바후뿌띠까는 빈털터리인 자신의 미래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나눠준 뒤에 약속대로 자식들 집을 차례로 다니며 생활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의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늙은 어머니가 집을 찾아오면 따뜻하게 맞이하지도 않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서 가버렸으면 하는 기색이 역력했지요.

 

우리만 재산을 받은 게 아닌데, 왜 우리 집에 이렇게 오래 계시는 거야?”

 

열 명의 자식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귀찮게 여겼고, 믿었던 자식들에게서 푸대접을 받자 바후뿌띠까는 사는 재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자식들의 약속을 믿고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주었지만 결국 그녀는 눈칫밥을 얻어먹는 군식구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지요.

 

자식을 많이 낳고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노년을 보내리라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렇게 멸시를 받으면서까지 지내야 할 일이 뭐 있을까!’

 

바후뿌띠까는 미련 없이 세속 생활을 접고 비구니승가를 찾아갔습니다. 비구니승가에서는 바후뿌띠까의 사정을 듣고 출가를 허락합니다. 출가해서는 원래 이름대로 소나(soṇā)비구니라 불렸습니다.

 

비구니 승가는 그녀에게 자식의 불효를 비난하며 달래주거나, 팔자소관이니 포기하라는 둥의 말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그건 출가하기 이전까지의 삶이었을 뿐, 이제 관심사는 달라져야 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 그 끝은 무엇인지, 보다 나은 삶은 어떤 것인지를 진지하게 들려주었지요.

소나는 스님이 되고서 결심합니다.

 

나이가 들어 출가했으니 수행에 전념할 시간이 많지 않다. 게으름 피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리라.’

 

마음을 굳게 먹은 소나 비구니는 잠자는 시간마저 아꼈습니다. 캄캄한 밤에 승방을 나와 거닐면서 스승에게서 받은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기며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스승의 말이니 그저 믿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 가르침 하나하나가 자신의 육신과 정신에서 어떤 부분을 가리키는지, 그 가르침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일깨워주는지를 보고 또 보려고 노력하였지요.

 

칠흑 같은 어둔 밤에 잠들지 않고 경행하려니 머리가 이곳저곳에 자꾸 부딪쳤습니다. 나무에 부딪쳤고 건물 기둥에도 부딪쳤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잖아도 늙은 몸입니다. 밤눈이 어둡고 몸은 자꾸 균형을 잃어 비틀거립니다. 삶이란 것이 원래 그런 법이니 늙은 몸을 탓할 수 없습니다. 늙었으면 늙은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그만입니다. 소나 비구니는 손으로 기둥을 잘 짚고 경행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행여 머리가 나무 같은 것에 부딪히지 않도록 손을 조심스레 내밀어 더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밤중에도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수행해 나갔습니다.

 

내가 다 늙어서 이게 무엇 하는 짓일까. 자식들 부양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고 있구나.’

 

이런 한탄은 없습니다. 자식 집에서 존경과 보살핌을 받고 사는 노후의 삶도 아름답지만, 인생이란 흘러가는 것이지요. 자식도 늙어가고, 제 살기 바쁘니 나이 든 부모님을 대하는 것이 한결같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식의 효도를 받아도 노쇠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견디며 하루하루 죽음 앞으로 걸어가는 부모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정진할 시간이고, 늙었기 때문에 조금도 머뭇거릴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 소나비구니의 정진하는 모습이 비구니들 눈에 자주 띄었고, 그 소문이 승가에 널리 퍼졌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삼매에 들어서 한밤중에 승방 밖에서 경행하는 늙은 비구니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터라 스승은 그에게 환하게 빛을 보냈습니다. 그 빛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이렇게 일러주었지요.

 

백 년을 살면서 진리를 알지도 보지도 못하며 사는 삶보다

 

한 순간을 살더라도 진리를 알고 보는 것이 훌륭하다.”(‘법구경’ 115게송)

 

캄캄한 밤중에 느닷없이 찬란한 빛 속에서 스승을 만난 할머니 비구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스승의 게송을 듣고서 쉬지 않고 마음을 살피며 솟아나고 꺼지는 번뇌를 관찰하면서 몸과 마음을 바르게 잡으려 애를 쓴 결과, 마침내 최고의 성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비구니 가운데 열심히 노력하기로 으뜸가는 이가 바로 바후뿌띠까이다.”

 

훗날 스승에게서 이런 찬탄을 받은 이 비구니 스님은 자신의 삶과 수행을 돌아보면서 오도송을 남겼습니다.

 

육신의 덧없는 몸으로 자식 열 명을 낳았고

 

늙고 허약해진 몸으로 나는 비구니 승가를 찾았네.

 

그곳에서 만난 비구니 스님은 내게

 

인간이 어떤 것인지, 무엇으로 이뤄졌고,

 

어떻게 번뇌를 일으키며 괴로워하는지를

 

차근차근 일러주었네.

 

나는 그 가르침을 듣고

 

머리를 깎고 출가하였지.

 

그 후로 열심히 정진하였고,

 

마침내 집착을 모두 떠나 열반에 이르렀네.

 

이로써 이 몸과 정신을 이루고 있는

 

다섯 가지 근간(오온)을 완전히 파악했고 뿌리 뽑혔네.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으리.(‘테리가타’)

 

쏘나 비구니에게 세속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을까요? 불효한 자식을 향한 원한이 남아 있을까요? 자신을 두고 떠난 남편을 향한 원망이 남아 있을까요? 늙어버린 자신의 심신을 향한 아쉬움이 남아 있을까요?

 

그녀에게는 그저 번뇌를 말끔하게 제거해버린 뒤 찾아오는 기쁨과 즐거움, 그 담담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행복만이 가득합니다. 열심히 살아왔다면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은 생을 알차고 행복하게 매일을 축복 속에서 지내는 일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쏘나 비구니는 수행의 길을 택했습니다. 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잠을 줄여가며 참선을 했지요. 스승이신 부처님은 어둠 속에서 더듬어가며 경행하는 그런 쏘나 비구니에게 빛을 보내주었습니다. 바후부띠까라 불리며 세속의 삶을 열심히 살아온 그녀는 인생 말년에는 수행처에서 가장 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이미령/불교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