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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적답사를 다녀와서

밀교신문   
입력 :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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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6일 이른 아침, 불적답사를 위하여 인천공항에 모였다. 코로나로 그동안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은 엄두를 못냈는데 다들 들뜬 마음으로 수속을 마쳤다. 1시간 40여분 비행기 타고 일본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첫 목적지인 고야산은 9세기 중국 밀교를 배우고 돌아온 홍법대사 구카이(공해, 空海)가 개창한 진언종이 태동한 곳으로, 진언종의 총본산인 곤고부지(금강봉사, 金剛峯寺) 등 불교 사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곤고부지로 들어가는 돌계단이 나온다. 삼나무와 계단의 조화가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가 힘들다. 이 풍광을 잊지 않으려고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는다. 곤고부지를 나와 우측으로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고야산의 상징인 단조가란(곤폰다이토, 根本大塔)이 있는 단상가람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오는데 홍법대사 구카이가 진언밀교에 대한 상상을 현실화한 성지라고 일컬어진다. 그리고 차량으로 10여분 이동하면 고야산 일대에서 가장 동쪽에 있는 오쿠노인이 나온다. 홍법대사 구카이의 묘가 있는 곳으로 구카이 신앙의 중심지다. 

 

2일차가 되었다. 일본 고대의 모습과 다양한 문화유산을 간직한 일본 최초 국가의 수도로 영화를 누렸던 도시 ‘나라’로 이동한다. 그 가운데 일본불교 화엄종의 대본산 도다이지(동대사)로 향하였다. 동대사는 745년에 쇼무왕의 발원으로 로벤[良弁]이 창건하였다. 본존은 비로자나불로 앉은키 16m, 얼굴 길이가 5m나 되어 속칭 ‘나라 대불’이라고 한다. 대불의 크기가 너무나 웅장하였다. 

 

이어서 교토로 이동했다. 청수사, 산넨자카, 동사를 방문 할 예정이다. 현재 교토에 남아있는 사찰 중에서도 드물게 교토가 수도가 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청수사이다. 사찰 안에는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지슈진자(地主神社)와 오토와 폭포가 있다. 오토와 폭포는 물이 3갈래로 갈라져 나오는 데 각각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하며, 이 물을 마시면 건강, 사랑, 학문이 좋아진다고 한다. 나도 물을 한잔 마시면서 나름 서원을 해보았다. 비가 왔다. 우리들은 서둘러 청수사를 빠져나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좁은 골목 산넨자카 거리를 내려와 동사(東寺, 도지)로 향했다. 

 

794년 일본의 수도를 나라에서 교토로 옮기고 그 동쪽과 서쪽에 거대한 절이 세워졌다. 서쪽의 절은 현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동쪽의 절인 도지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여러 번의 지진과 낙뢰 등에 의해 소실이 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수리와 재건을 해왔기 때문에 처음 창건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3일차인 9월 28일, 우리는 천룡사로 향하기 위해 교토로 이동하였다. 천룡사(天龍寺, 덴류사)는 무로마치 막부의 정원 모습을 볼 수 있다. 천룡사에서의 기억에 많이 남는 건 대방장 입구에 있는 달마도이다. 일본 최초의 선종 사찰이니 선종의 창시자 달마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이곳 달마도는 얼마 전에 그린 것처럼 아주 현대적인 느낌이다. 

 

이어서 금각사로 향하였다. 킨카쿠지(금각사, 金閣寺)는 선종 불교의 일파인 임제종 쇼코쿠지(상국사, 相国寺)의 탑두사원(塔頭寺院) 가운데 하나로, 사리전인 금각(金閣)이 유명하며, 199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래서 일까? 여기도 경치 맛집이었다. 일본에 도착 이후로 참 많이도 걸었다. 여기 금각사에서도 풍경을 만끽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시간적 여유 있어서 후시미 이나리 신사와 교토 타워를 방문했다. 교토타워는 지진과 태풍을 대비한 최첨단 건축기술로 1964년에 건설되어 그간의 숱한 자연 재해에도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일본 기술력에 놀라웠다. 교토타워 전망대에 올라 360도 파노라마 전망으로 어제 방문한 청수사를 비롯하여 산넨자카, 동사를 그리고 오늘 방문한 천룡사, 금각사를 망원경으로 보았다.

 

4일차인 9월 29일에는 연력사로 이동하였다. 엔라쿠지(연력사, 延曆寺)로 이동하는 길은 무척이나 험하였다. 그 동안 방문한 사찰들과는 다르게 깊은 산속에 위치했다. 이번 불적답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이다. 신비스럽고 웅장하며 수행하기 딱 좋은 장소인 듯하였다. 연력사는 사이초(최징, 最澄)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개창한 천태종의 본산이자 토착화된 일본 불교의 요람이다. 822년 그가 입멸한 후부터 100여 년 사이에 곤폰주도(根本中堂), 홋케산마이도(法華三昧堂), 다이코도(大講堂) 등 모든 건물들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곤폰주도 불상 앞에 기름등잔을 놓고 등불을 밝혔는데, 이 등불은 어떤 전란에도 꺼지는 일 없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불멸의 법등’이라고 불렸으며 연력사가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총무부장스님의 설명을 듣고 수행 스님의 안내로 참배 후 연력사의 주요 건물의 안내를 받았다. 

 

그 중 단연코 압도하는 건물은 근본중당이다. 근본중당은 2016년부터 10년에 걸쳐 대보수 공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찰의 보수공사 중 이런 튼튼한 비계를 설치한 경우는 미륵사지 석탑 복원할 때 정도만 본 것 같은데 일본의 경우 조금 규모가 큰 법당들은 대부분 이렇게 철저한 조치를 취한다고 한다. 3층 높이의 비계 위를 걸으며 복원 공사의 현장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일본 전통사찰의 모습을 비로서 이해 할 수 있는 현장 이었다.

 

또 기억에 남는 한 곳은 동료 정사님이 찾아낸 장보고 비석이다. 신라시대 장보고 장군의 일대기가 적혀 있었다. 책에도 등장하는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쓴 엔닌이 일본 천태종의 3대 좌주였고, 장보고의 도움을 받았으며 그의 책에 장보고와의 기록을 남겨놓았다고 한다.

 

연력사의 여운을 남기고 우리들은 다음 답사지인 오사카성, 사천왕사로 향하였다. 

오사카 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한 후인 1583년에 대단히 화려하게 지어졌다. 권력이 얼마나 거대하면 이런 거대한 바위로 지어진 성벽성을 만들 수 있을까? 성을 축조하면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갔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한 사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크고 화려한 유적이 정말 대단한 것인지? 성을 보면서 아픈 과거인 임진왜란을 생각해 보게 된다. 

 

일본 오사카에 위치한 사천왕사(四天王寺, 시텐노지)는 백제의 군수리사지와 같은 배치를 가지고 있다. 백제의 건축가 유씨에 의해 지어진 절로 특히 당시 백제기술자들이 세운 오층목탑이 남아 있다.

 

오늘의 일정을 마치면 내일은 귀국하는 날이다. 우리가 그동안 일본 불적답사를 해온 목적은 그것을 즐기기 위함과 공부하기 위함이 뒤엉켜 있었다. 즐기기란, 우선 일본 답사는 해외여행이어서 새로운 문화를 구경한다는 재미를 말하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문화는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 다르면서도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여행과 달리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낯설지 않은 이질감을 자연스럽게 우리와 비교하면서 되묻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우리의 고대사는 일본을 언급하지 않고도 서술할 수 있지만 일본의 고대사는 한반도와의 연관을 말하지 않고는 전개해나갈 수가 없다. 일본인의 반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공부한 것은 역사, 문화를 지키려는 일본인의 자세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며 새로운 것을 하기 전에 먼저 옛 것의 조화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이다. 일본의 신사는 대부분 무료입장인데 사찰에서는 ‘순례(巡禮)료’라는 것을 받는다. 보통 300~700엔 정도로, 나는 너무 비쌌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인은 당연하게 받아드린 점이다. 하지만 근본중당 대보수 불사 현장을 보면서 뒤늦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느 곳을 가나 한두 군데는 지속적으로 공사를 하고 이었다. 순례료는 끊임없이 보수 관리를 위해서 쓰이고, 다시 순례료를 받고, 다시 그 돈으로 수리를 하고... 

 

미관을 잠시 해치더라도 더 길게 보고 참아내는 것, 우리나라의 사찰들도 참고해야 될 듯하다.

 

관행심인당 범강 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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