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의 세계를 열다

밀교신문   
입력 : 2021-06-22 
+ -

5. 교법의 정비와 종조의 열반

6) 종조의 열반과 종제의 재정비

 
(2) 종단체제의 재정비
종단은 종조열반 후 유교를 받들어 종제개편을 시작하였다. 초기 헌법을 폐기하고 금강회칙으로 운영하던 종단의 체제를 재정비하기 위해 임시강공과 금강회(190회)를 개최하고 종헌 및 종법의 기초를 위한 위원회를 선출하였다(17,12.26). 종제의 개편은 종조 재세시에 이미 착수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종헌 및 종법 위원회는 손대련 외 위원 5명과 이용규(李容奎) 감사 1명으로 구성하였다. 위원회는 종헌 및 종법 기초를 위한 강도를 하고 종헌 및 종법의 기초를 시작하여(18,1.27), 6주간의 걸친 작업 끝에 완료하였다(18,3.21). 종헌 및 종법의 초안은 금강회(인회)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심의 의결되었다(18,3.23).
 
임시총회에서 심의 의결된 종헌(제15장 105조)은 “본종은 대한불교진각종(大韓佛敎眞覺宗)이라 칭하며 총인원(總印院)을 총본산으로 하고…”라고 하여 종명을 확정하고 총본산으로 총인원을 정하였다. 그리고 헌법은 “종조회당대사의 입교개종의 서원에 쫓아 그 실현에 정진하는 교단이다”라고 대종사를 종조(宗祖)로 추존하였다. 그리고 종단은 종조의 입교개종의 서원을 실현하기 위해 정진한다고 결의하였다. 또한 소의경전은 양부의 대경과 삼학 소재(所載)의 경률론 및 종조찬술의 장소(章疏)라고 규정하였다. 여기서 삼학소재는 진언종의 삼학록 소재를 잘못 이해한 술어였다.
 
종헌은 종단의 항례법요로서 신정불사, 월례불사, 자성일불사, 열반절, 성탄절, 종조탄생회, 해탈절, 창교기념회, 종조멸도제, 해인절(성도절)을 두었다. 그리고 행정체계로서 종정을 통괄하기 위하여 총인 1인을 두었다. 또한 종헌은 결의기관으로 원의회 종의회, 집행기관으로 통리원(統理院), 감찰기관으로 사감원을 두고, 기타기관으로 기로원, 격시위원회, 법제위원회, 전당 신설을 두었다. 전당 신설은 외지선교회를 변경하여 정하였다. 나아가 종헌은 지방 종정을 위해 관구청(管區廳), 관구사감부, 관구의회를 두었다. 종단은 종헌 종법을 제정하면서 통리(統理)라는 술어를 새롭게 사용하였다. 통리라는 술어를 사용한 까닭은 밝혀져 있지 않다. 통리는 대중(大衆), 세간법(世間法), 민사(民事), 민물(民物) 등을 통리(統理)하는 의미로 경전에 쓰이고 있다. 대중 세상의 일들을 통괄하고 불편(不偏)없이 다스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종단의 세간 행정을 다스리는 기구에 어울리는 명칭이었다.
 
통리원(統理院)은 종단의 집행기관이고 원의회(院議會)는 통리원의 의결기관인 동시에 상설의회에 해당하였다. 조직은 총인, 기로원장, 통리원장, 종의회의장과 부의장, 사감원장, 격시위원장, 법제위원장, 통리원 4부장의 12인으로 구성하였다. 의장은 총인이 되고 부의장은 통리원장과 종의회 의장이 되게 하였다. 종헌에 이어서 임시총회는 경과규정(經過規程), 종의회법, 종의회의원선거법, 통리원법, 사감원법, 총인추대조례, 원의회법, 법제위원회법을 심의 결의하였다. 그리고 서남법 및 종조탄생회 행사를 결의하고 종의회의원선거법에 의하여 종의회 의원 37인을 선출하였다. 종의회 37인은 금강계만다라의 중앙 37존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관구의회는 16인으로 하여 16대 보살을 상징하였다. 그리고 심인당의 책임 스승을 주교(住敎)라고 칭하였다.
 
이튿날 새로운 종단체제에 의해 구성된 종의회 의원은 종의회(제1회, 통합 195회)를 열고 의원선서를 시작으로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하고 종의회를 개원하였다. 초대 종의회 의장단은 의장 박을수, 부의장 선태식으로 구성하였다. 이어서 종의회는 총인을 추대하고 사감원장과 위원 선거(선서), 통리원장 및 4부장을 인준하였다. 선임된 임원은 총인 손대련, 통리원장 김경순(金璟淳), 사감원장 김철, 부원장 윤극수, 법제위원장 구봉회(具奉會), 격시위원장 박대준, 그리고 총연(總演)부장 김희봉, 홍교부장 최호석, 재무부장 김병국, 사회부장 정인서 등이었다(18,3.24). 종의회는 승려법을 비롯하여 교육법, 교도법, 계단법, 기로원칙, 수로원칙, 우용사법(佑勇社法) 등을 결의하였다. 또한 심인당 명칭을 역리에 맞추어 개칭하는 방안의 결의(17,12.26)에 의해서 개칭한 종단의 명칭을 인준하고 대한불교진각종 금강회 분회회칙 준칙을 결의하는 등 여러 법규를 처리하고 폐회하였다(18,3.26).
 
이때 제정한 승려법은 교화승과 수도승의 제도를 도입하였다. 금강회 분회준칙은 종단의 조직 명칭이던 금강회를 신교도 조직의 명칭으로 바꾸어서 실시하였다. 종단의 체제 개편으로 신설된 원의회의 의장 손대련 총인, 부의장 김경순(통리원장), 박을수(종의회 의장)와 의원 8명이 참석한 가운데 원의회를 개회하고 의안을 심의하였다. 원의회의 의원은 종의회 부의장, 사감원장, 법제위원장, 격시위원장, 통리원 4부장이 당연직으로 맡았다. 원의회는 서울에 총인원 건설과 종비생 제도를 확정하였다(18,3.27). 종단체제의 재정비로 교화와 행정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교화스승의 행계제도를 실시하기로 하고(18,5.27) 스승의 행계사정을 하여 발령 시행하였다(18,5.27).
 
(3) 심인당 고유명칭 작명
종단이 교리를 세우고 종조의 열반과 종제를 재정비하면서 교화의 활력은 더욱 높아갔다. 심인당의 신개축과 신설 심인당의 개설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심인당의 신설 중에서 너무 근접한 심인당은 폐지하고 통합하였다. 대구에는 심인불교가 열렬히 일어나서 교세는 나날이 신장되어 갔다.
 
스승이 자기 사택에서 교화하던 신천동에 대지를 매입하여 심인당을 건축하였다(13,11.25). 대구 대명동 4구에 심인당을 개설하고 건물신축을 착공하였다(14,8.5). 중동에도 심인당을 개설하고 신축공사를 착수하였다(15,11.3). 그리고 달성심인당을 개설하고 대지를 매수하여 심인당 건축공사를 시작하였다(16,10.19). 그리고, 원력심인당(16,11.29), 이정심인당(16,12.15), 복현동심인당(16,12.26), 시복심인당(17,12.20)을 개설하여 교화를 시작하였다. 남산동심인당 앞의 원력심인당은 종무원들이 심공하는 심인당으로 개설하였다. 대구 인근의 경북지역에도 교화의 물결은 넘쳐났다.
 
달성군 비안면에 비안심인당은 주택을 매수하여 개설하였다(15,10.20). 왜관심인당을 폐지하여 칠곡 북산면에 주택을 매수하여 오평심인당을 짓고 공부하게 하였다(16,2.1). 고령군 다사면에 다사심인당을 개설하고 신교도에게 관리하게 하였다(16,2.26). 그리고 영천군 임고면에 고천(16,7.21), 수성(17,10.28), 언하(17,11.21)심인당을 개설하여 심공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고천과 언하 심인당은 곧 폐지하고 수성심인당에서 공부하게 하였다. 그 사이에 영천읍 문외동에 대지를 매입하여 심인당을 개설하고 신축 착공하였다(17,4.26). 또한 이주호에게 매수한 김천심인당 건물에 다시 심인당을 개설하였다(16,10.17). 경주의 교화는 동리마다 넓혀갔다. 강동면에 공정동(16,9.10), 오야(15,9.12)에 심인당을 개설하고 심인당 건축을 시작하였다. 나아가 양북면에 원당심인당(16,4.30)은 주택을 매수하여 심공을 시작하고, 어일리에 광명심인당을 개설하고 건물을 신축하였다(18,10.19). 교화의 활력은 영일에도 계속되었다. 영일군 대송면에 동촌심인당은 주택을 매수하고 개수하여 심인당을 개설하였다(16,10.19). 지행면 학곡리에 대지를 매입하여 명등심인당을 개설하여 건물을 신축하였다(18,8.28). 교화발전은 계속하여 부산, 경남에도 심인당 개설이 이어졌다. 경남 창녕에 의창심인당을 신축하여 심공을 하였다(15,6.3). 김해 진영에도 대지를 매수하여 삼학심인당을 건축하여 심공을 시작하였다(18,10.29). 부산시 진구에 대지를 매수하고 대지상의 기존 건물을 심인당으로 개수하여 정제(정정)심인당을 개설하고 박을수 정사가 교화하게 하였다(18,7.18). 충청지역의 심인공부도 신교도가 밀려들어서 심인당을 개설하여 심공하게 하였다. 논산군 은율면에 건물을 신축하여 논산심인당을 개설하고(15,10.20), 이어 전북 익산군 춘포면에 대지를 구입하고 건물을 지어서 묘향(妙香)심인당을 개설하고(18,4.28) 충청 남부와 전라 북부의 교화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대전의 교세가 커지면서 건물을 신축하여 대동심인당을 개설하고(16,10.12), 오류동에 주택을 매수하여 득도(得度)심인당을 개설하여(16,11.23) 대전 교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교세가 전국 각지로 확충되어 심인당을 개설하면서 그동안 지명에 따라 지은 심인당의 명칭을 역리 및 수리에 계합되게 일괄 개칭하였다(18,7.16). 심인당의 명칭 변경은 역리에 맞추어 개칭하는 방안을 결의하고(17,12.26) 종의회의 인준을 거쳐(18,3.26) 실행하였다.

4면 자료사진 (2).jpg

-진각종 역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