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육자진언 염송을 왜 하는가?

밀교신문   
입력 : 2019-10-28  | 수정 : 2019-11-11
+ -

thumb-20191004094901_9428c4737f0126d2e5a1318db18bee1c_cbkt_220x.png

 
문 : 옴마니반메훔을 어찌 이렇게 외웁니까?
답 : 법신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되어서 이전에 잘못한 것을 알게 되고 마음이 곧 고쳐지게 됩니다.
 
진각성존은 농림촌에서 법신불로부터 옴마니반메훔(AUM MA NI BHAN ME HŪṀ)을 계시받아 100일 정진하여 1946년 5월 16일 진언의 묘미를 깨달아 대각(大覺)을 이루었습니다. 다시 중생제도의 원을 세우고 49일간 보림[保任]을 거쳐 오로지 육자진언만을 수행하는 종문을 열었습니다. 육자진언은 법계 만사만리의 진리를 갖추었으며, 팔만사천 경전(經典)이 이를 의지하여 있으므로 진언을 염송하면 곧 부처 세계로 귀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부처였는데 어느 때부터인지는 중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생 세계는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많은 세상입니다. 이것은 잘한 것보다 못하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고통의 세상을 벗어나려면 먼저 그 잘못을 찾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잘못을 찾는 법 가운데 하나가 진언 염송입니다. 답의 말씀을 나누면,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면 첫째 법신부처님의 설법을 듣게 되고, 둘째 이전에 잘못한 것을 알게 되며, 셋째 마음을 고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법신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는 것은, 당체설법(當體說法)을 듣는 것으로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인과를 깨닫게 되는 법이며, 둘째 이전에 잘못을 알게 된다는 것은, 과거 현재의 인과를 알게 되는 법이며, 셋째 마음이 고쳐지게 된다는 것은, 현재의 인과를 깨달아 미래의 삶을 알게 된다는 법입니다. 이것이 “깨달아 보라.” “참회해 보라.” “실천해 보라.” 하신 말씀으로 진각성존이 주신 화두(話頭)와도 같은 당체설법입니다.
 
중생은 육도를 윤회하면서 익힌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잘못 익힌 습관을 고치려면 먼저 당체설법을 잘 듣고 그 잘못이 무엇이며, 고치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지를 알고 법대로 실천하여야 합니다. 당체설법은 수행자가 묻고 부처님이 답하는 법입니다. 이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하는 법이므로 부처와 중생이 하나가 되지 않고는 묻고 답할 수가 없습니다. 당체설법의 내용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잘 잘못을 알려주는 법입니다. 당체설법 가운데는 잘못된 법을 지적받을 때가 많습니다. 지적받은 것을 고치는 방법도 염송하는 가운데 알 수 있고, 실천하는 법도 항송(恒誦) 하는 가운데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법을 같은 자리에서 같이 수행하여도 근기 낮은 사람은 귀가 먹고 눈이 어두워서 듣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낮은 근기를 높이는 방법 중에 제일 좋은 법이 항송(恒誦)입니다. 근기는 순간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상생활에서 무시 항송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항송 하는 법은 남과 대화하지 않을 때도 옴마니반메훔, 앉거나 누울 때도 옴마니반메훔, 길을 가거나 넘어져도 옴마니반메훔, 놀라는 순간에도 옴마니반메훔, 꿈속에서도 옴마니반메훔, 이같이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생각 생각에 항상 입속으로 옴마니반메훔을 부르는 것입니다. 진언을 부르면서 오매불망이 되는 순간, 부처님과 동체가 되어 당체설법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육자진언은 비로자나불의 불가사의한 힘을 지닌 심인(心印)을 인가받아 대 자유의 주인공이 되는 법입니다. ‘옴’은 법신불의 작용으로 우주 법계의 자연의 뜻을 담은 소리이며, 법계의 언어를 담은 소리이며, 법계의 몸을 담은 소리로 법신의 신구의(身口意)와 중생의 신구의를 하나로 상응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훔’은 보신의 불가사의한 힘인 ‘마니반메’와 합하여 중생에게 되돌리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옴마니반메훔의 소리 울림에 의하여 내 몸과 마음이 법신의 몸과 하나로 합일되어 이 몸이 곧 법신이 되고, 이 마음이 곧 법신의 마음이 되는 경지에 이르면 몸 안의 세포가 모두 보살 위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진언을 부를 때는 옴마니반메훔의 소리를 분명하여야 합니다. 진언의 발음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것은 그 나라의 풍토성과 합일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풍토성으로 옴마니반메훔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거나, 고통받을 때나, 고통이 들어 올 때는 ‘옴’과 ‘훔’의 발음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옴’의 발음을 음, 움, 운, 온, 등으로, ‘훔’의 발음은 흠, 홈, 훈, 혼, 등으로 발음하기도 합니다. 본인에게 물어보면 자신은 바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는 진언의 소리가 자기 귀에 들리도록 하게 하여 분명한 발음을 하도록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옴마니반메훔 여섯 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생을 네 단계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옴’은 출생의 뜻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서 성장하는 과정이요, ‘마니’는 성장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뜻하며, ‘반메’는 자기성취를 하면서 결실의 과정을 뜻하며, ‘훔’은 다음의 출생을 준비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옴’과 ‘훔’은 다 같이 출생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옴’은 부처의 경지에서 출생하는 것이요, ‘훔’은 중생의 자리에서 출생하는 것입니다. 부처의 출생이 중생의 자리로 윤회를 시작하는 출생이라면, 중생의 출생은 윤회를 벗어나는 해탈하는 출생입니다. 법신부처님로부터 출생을 받고 다시 진언법을 만나 서원대로 살다가 회향의 해탈로 돌아간다면 다음 생은 현생보다 나은 곳에 태어날 것입니다. 이 네 단계는 일생만 나누는 것이 아니요, 하루를 새벽과 오전과 오후와 저녁으로도 나눌 수도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로 1년으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은 새벽 정진에 있고, 일 년의 시작은 봄에 있습니다. 봄에 좋은 씨를 뿌려 좋은 촉이 난다면, 튼튼한 나뭇잎과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성실해지는 여름이 될 것이며, 오곡백과가 제대로 영글어 풍성한 가을 맞아 추수할 것이요, 편안하게 겨울을 보내면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봄은 봄답게 보내야 하고, 여름은 여름답게 보내야 하고, 가을은 가을답게 보내야 하고, 겨울은 겨울답게 보내야 합니다. 싹이 날 때는 옳은 싹이 나야 하고, 잎이 필 때는 옳은 잎이 피어야 하며, 열매를 맺어야 할 때는 옳은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만약에 여름에 된서리와 우박이 내리고, 겨울에 소낙비가 쏟아진다면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자연의 현상에서 일어나는 법문을 보고 진리를 깨닫는 불공을 해야 합니다. 자연의 현실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진리적 해탈을 얻을 수 없습니다.
 
불공을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가난한 사람이 재물을 구하기를 바라며, 헐벗은 자가 옷을 얻기를 바라고, 병든 자가 건강하기를 바라면서 화목한 가정과 행복한 삶을 서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같은 시대 같은 곳에 태어나서 같은 기능을 배우고 익힙니다. 심지어 같은 부모를 만나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같거나 비슷하여야 할 것인데, 몸과 생각과 언어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며, 생활의 습관도 다르게 나타납니다. 넉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건강한 사람과 병든 사람, 화목한 사람과 불화(不和)한 사람,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의 차별이 있습니다. 때로는 순간적으로도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배탈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는 반드시 그 어떤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막히고 무너지고 사라지고 부서지고 더디게 되는 것은 좋지 못한 인연과 화합하였기 때문입니다. 좋지 못한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는 바라는 것은 이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유하면,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채우고자 하고, 좁은 그릇에 큰 것을 넣고자 하고, 작은 그릇에 많이 담으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복 그릇과 능력의 한계를 생각하지 않고 분에 넘는 것을 구하고, 맞지 않는 것을 넣으려 하고, 오를 수 없는 높은 곳에 오르려 하고,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는 생각은 원래 그릇된 생각이며 행위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하늘이나 땅이나 자연이나 부모나 시간이 주는 것이 아니며, 모두 과거 나 자신이 지은 인(因)으로 나타나는 업의 현상들입니다. 모든 현상은 자신이 제공한 원인에 의한 것인데도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늘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하고 시대를 탓하면서 가족과 이웃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진언 수행자는 기복불공(祈福佛供)에 마음 두지 말고, 먼저 원인을 깨달아서 삼계에 주인공으로서 뜻하는 바를 모두 이루면서 살아가도록 마음 닦는 수행을 합시다.

4면 자료.jpg

 

혜정 정사/기로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