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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밀교신문   
입력 :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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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신라 제48대 임금인 경문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갑자기 귀가 커져 당나귀 귀처럼 길었다. 왕은 왕관 속에 귀를 숨겨 아무도 모르게 했다. 왕후도 궁 안의 사람들마저도 몰랐지만, 오직 한 사람 왕관을 만드는 복두장인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복두장인은 왕의 비밀을 발설하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속 시원히 한 번도 그 누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평생토록 혼자 간직한 이 비밀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 때문에 병까지 얻게 되었다. 그 사이 많은 세월이 흘러 죽음이 임박할 무렵 복두장인은 도림사 대숲 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구덩이를 파고 이렇게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마음껏 외치고 나니 마음의 병이 씻은 듯  낫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바람이 불면 도림사 대숲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왕은 바람만 불면 대나무 숲에서 그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너무 싫었다. 왕은 대나무들을 베어 내고 대신 산수유나무를 심었다. 그 후 바람이 불면 이렇게 소리가 났다. “임금님 귀는 길기도 하다.”   

 

설화 내용의 핵심은 말과 귀(허물, 결함)에 있다. 귀가 크다는 것은 중생의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여 잘 듣고 헤아리라는 수용의 뜻으로 들린다. 귀가 두 개인 것은 작은 고통의 소리까지도 포착하여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라는 의미로 읽힌다. 소리는 파동이며 귀는 소리를 느끼는 감각기관이다. 사람의 마음에 깃든 생각은 얼마만큼 무르익으면 밖으로 나와 말과 글로 표현된다. 마음속에 맺힌 바를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면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말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어찌 살겠는가. 말이 많으면 망어가 되기 쉽고 그래서 종조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설법은 적게 하고 염송을 많이 하라”고 하신 까닭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임금님 귀의 상징적 의미는 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무의식속에 타인의 불행과 고통을 은근히 즐기려는 심지어 약점과 허물을 들추어 깎아내리는 심리를 자신의 욕구불만을 욕구만족으로 치환하여 잘못 착각하고 있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개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드러내더라도 적어도 철저하고 명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할 때에만이 말에 힘이 실리고 감동을 줄 수 있다. 팩트는 개인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돌이킬 수 없는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다. 그래서 귀는 남에게 알리기 두려운 약점이나 허물일 수 도 있다. 만약 이 중대한 결함이 세상에 알려지면 왕으로서의 권위와 위계가 하루아침에 추락하게 된다. 이 부끄러운 사실을 누군가가 알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알게 되는 사람마다 족족 죽이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이 존재하기란 어려운 법, 진실을 숨기고 살아가기란 더더욱 어렵다. 마침내 감추어 왔던 진실이 드러나 온 세상이 알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허물과 결함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 이다. 사람마다 허물과 결함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인간의 취약점을 빌미삼아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파렴치한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한동안 미투 운동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아들가진 부모가 무슨 죄인이라도 된 듯 불편했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쓸어내려야 했다. 애꿎은 남자 아이들만 보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시 재교육을 시켜야했다. 한때 “누가 ~~카더라”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했다. 정확한 정보와 사실에 입각한 것인지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허위 사실들을 유포한 죄들을 다 어찌한다 말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번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두 번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분노의 기준 또한 불분명하니 어디까지 분노해야만 하는가.     

 

오랜만에 동네 책방에 들렀다. 책 한 권이 내 시선을 끌었다.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여든을 앞 둔 할머니들의 가슴속 고요히 담아 두었던 생각과 말을 그림일기로 써 내려간 이야기다. 꾸밈없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써 내려간 사랑과 감동의 이야기는 차라리 잔잔하여 깊고 고요했다. 그녀들이 글을 몰랐지 감정과 감수성까지 메말랐겠는가.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지 사랑과 인생까지 몰랐겠는가. 그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말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그리고 미디어가 재앙처럼 느껴진다.  

 

수진주 전수/홍원심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