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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칠존이야기 11- 금강왕보살

밀교신문   
입력 : 2018-07-02  | 수정 : 201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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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들을 이끄는 데에 왕과 같이 자재한 보살

한 나라의 임금을 왕이라 한다. 왕은 모든 권한과 책임의 최고봉으로서 그 나라의 온갖 판단의 근원은 왕으로부터 나온다. 마치 사자가 뭇 짐승들 속에서 자재한 것처럼 왕은 그 나라 어디에서든 자재롭다. 그러나 자재롭다 하여서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왕이 지닌 자재함이 어떻게 전개되는 가에 따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현명한 왕이 나라를 통치하면 온 백성이 잘사는 나라가 되지만 왕이 제멋대로 통치할 경우에 그 나라는 도탄에 빠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오랜 역사에서 성군과 폭군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런데 왕은 옛날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자재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누구에게나 있으며, 그 영역 안에서 우리는 왕이 된다. 가정이든 직장이든 대외적인 대인관계이든 우리의 자주력이 발휘되어야 할 무대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의외로 왕이 되어야 할 자리에서 자주력을 상실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더욱 큰 문제는 인생이라는 무대의 왕이 자주력을 상실하는 경우의 비참함이다.

얼마전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환자를 대상으로 설문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후회를 남겼다고 한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둘째, 일만 너무 열심히 했다. 셋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대신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염려하였다.”

그 결과 의뢰적인 삶을 이루었고 그것이 습이 되어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자신으로 하여금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게 했던 남들은 내가 이러한 삶을 살았다고 해서 기뻐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남들은 사실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자신들의 이익에 관련될 때에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남들이 어떻게 살든 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머무는 이 자리에서 나는 왕이고 자재하게 자주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외부의 모든 존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자신만 위하는 것이 왕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왕이란 모든 것을 자재롭게 한다고 해서 자기중심이라고 볼 수 있으나 그 중심은 모든 존재들과의 조화에서 나오는 중심이다.